AI, 변호사까지 대체할까...한국 리걸 테크 시장 기지개

입력 2019.08.26 06:00 | 수정 2019.09.04 19:21

인공지능(AI)이 변호사를 대신할 수 있을까. 세계 법조계의 뜨거운 논쟁감이다. 기술적으로 AI변호사가 사람 변호사를 대체할 단계에 이미 도달했다는 주장이 있지만 아직 소수다. 시키는 대로 하는 ‘사자(使者)’라면 모를까, 의사결정을 하는 ‘대리인(代理人)’은 될 수 없다는 주장이 대부분이다. 문제는 AI변호사 능력이 심부름꾼이나 비서 단계를 넘을 정도로 출중하다는 점이다.

AI변호사의 등장이 법률시장 판도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 IT조선 DB
인공지능 변호사를 고용한 미국 로펌

‘로스'는 스타트업인 로스인텔리전스의 인공지능 변호사다. 2016년 뉴욕 대형 로펌 베이커앤드호스테틀러(Baker & Hostetler)와 고용 계약을 맺었다. 로스는 파산 분야 판례를 수집·분석하고 자문한다. IBM의 AI ‘왓슨’을 기반으로 수천 건의 판례를 검색해 사건과 관련 있는 정보를 골라 법안을 추천한다.

기존 법률 검색 서비스는 사용자가 키워드를 입력하면 관련 법률 데이터를 모두 제시하는 방식이다. 그 결과를 본 사용자가 원하는 정보를 고른다. 데이터가 너무 많아 선별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로스는 다르다. 일상 언어를 이해할 수 있는 자연어 처리 방식이다. 정보 검색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였다. 더욱이 새 판례와 법률을 학습까지 한다.

로스인텔리전스는 로스를 통해 확보한 빅데이터를 갖고 2019년 서비스를 본격화했다. 덴튼스(Dentons), 레이섬앤왓킨스(Latham&Watkins)와 같은 유명 로펌이 로스를 도입했다.

영국에는 ‘두낫페이’라는 인공지능 변호사가 있다. 챗봇 형식의 법률 질의응답 시스템이다.

사용자가 주차위반 고지서를 받았다. 억울하다고 생각해 고지 철회를 요청하고자 한다. 주차 당시 상황을 입력하면 두낫페이가 철회 요건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판단한다. 철회요청서까지 자동으로 생성해 작성과 요청을 돕는다.

두낫페이는 미국 스탠퍼드 대학생 조슈아 브라우더가 19세 때 만들었다. 주차위반 고지서를 받은 그는 변호사를 통해 고지 철회 요청을 하려고 했으나 막대한 비용과 시간이 들자 포기했다. 이런 법률서비스의 비효율을 개선하려고 개발한 것이 두낫페이다. 그는 주차위반뿐만 아니라 항공권 취소 환불이나 집 계약 문제 등으로 서비스를 확대할 예정이다.

비밀유지계약서를 15분 안에 작성해주는 ‘리사’라는 기업도 있다. 리사가 제시한 계약서 관련 질문에 소비자가 답변하면 계약서를 완성한다. 계약서를 받은 사용자는 리사의 온라인 시스템으로 그 내용을 검토하고 수정하며, 관련 법률 정보도 받는다.

법조계에 커지는 ‘AI 공포’

어렵기만 한 용어와 지루하고 까다로운 절차로 가득한 법률 세상이다. 송사라도 한번 걸리면 일반인은 막대한 시간과 돈을 써야 한다. 이 법률 시장에 법과 기술이 결합한 이른바 리걸테크(LegalTech)가 뜬다.

리걸테크는 법률(legal)과 기술(technology)의 합성어다. 기술을 활용해 법적 문제 해결을 돕는 서비스다.

완전히 새로운 서비스는 아니다. 인터넷 등장 이후 나왔다. 법률과 변호사를 검색하는 서비스부터 소송정보 관리, 법률 자문 시스템까지 다양하다. 인터넷이 없던 시절보다 훨씬 편리해졌다. 하지만 여전히 사람 손을 거쳐야 한다. 법률 소비자와 대리인의 정보격차와 공급자 중심 시장 구조는 달라진 게 없다.

AI가 본격화하자 상황이 달라졌다. 법률 소비자와 대리인 사이 정보 비대칭이 급격히 해소될 것이라는 기대가 고조됐다. 리걸테크가 날아올랐다.

현대경제연구소가 낸 ‘리걸테크 산업 현황과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리걸테크 시장은 급성장할 전망이다. 2015년 약 38억2800만달러(약 4조6050억원)에서 2019년 57억6300만달러(약 6조9328억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예측됐다.

미국 온라인 법률 자문 서비스 분야 1위 기업은 ‘리걸줌’이다. 창업 당시 직원 11명으로 시작한 이 기업은 15년이 지난 2016년 1100여명 규모의 회사로 커졌다. 이 회사 서비스 가입자도 400만명을 돌파했다. 2007년부터 2018년까지 4차례에 걸쳐 8억1100만달러(약 9756억원)의 투자를 받았다.

보스턴컨설팅 그룹과 독일 부세리우스 로스쿨이 발행한 보고서에 따르면 리걸테크 적용 분야는 크게 세 가지로 구분된다. ▲법률 관련 종이 문서를 디지털화하는 분야 ▲법조인을 조력하는 분야 ▲실제 법조인의 역할을 맡는 분야다. 리걸테크는 조력 단계를 넘어 실제 법조인의 역할까지 넘본다.

AI가 변호사 일자리를 대거 잃게 할 것이라는 전망에 세계 법조계가 긴장한다. / IT조선 DB
변호사와 로펌들이 긴장한다. 기득권을 잃을 수 있다는 위기감이 고조됐다. 변호사 일자리가 대거 사라질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미 변호사 단체와 로펌이 리걸줌에 소송을 건 것이 이러한 우려가 얼마나 큰지를 그대로 방증한다.

로펌들은 전문 법조인이 아닌 기술을 활용해 법률 자문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이유로 소송을 걸었다. 하지만 졌다. 법원은 AI가 법조인을 대신한 것이 아니라 자문에 그쳤다며 이같이 판단했다. AI변호사가 법률대리인이 될 수 없다는 점을 새삼 인정받았지만 사업 자체를 막을 길은 없어졌다.

우리나라도 AI변호사를 법률대리인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변호사법을 바꾸지 않는 한 불가능하다. 법조인들은 AI를 어디까지나 법조인의 업무 효율을 높이는 ‘수단’일 뿐이라고 본다.

다만 변호사 업무를 돕는 ‘용역’ 계약은 가능하다. 미국 로스가 로펌과 맺은 게 ‘고용 계약’이지만 사실상 용역 계약이다. ‘고용'은 홍보 수식어였다.

이상용 한국인공지능법학회장은 "법조인이 3~4일 걸릴 일을 3~4시간 만에 처리하도록 돕는 기술이 리걸테크"라며 "더 많은 개인에게 자문할 기회가 열리는 동시에 더 많은 개인이 보호를 받게 된다"라고 말했다.

걸음마 뗀 한국 리걸 테크 시장

우리나라 리걸테크는 어디쯤 왔을까. 2016년 리걸테크 기업이 1000개 이상으로 추정되는 미국과 비교하면 걸음마 수준이다.

업체 수도 손가락으로 꼽는다. ▲판례와 법령을 찾는 지능형 검색기와 근로계약서를 분석하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인텔리콘연구소’ ▲각종 법률문서를 자동으로 작성·첨삭해주는 온라인 법률 상담 서비스 ‘로폼’ ▲온라인 변호사 중개 서비스 ‘헬프미’와 ‘로톡’ ▲고소장 자동작성 서비스 ‘리걸인사이트’ 등이다. 아직 이익단체를 만들 단계도 아니다.

숫자는 미미하지만 수준은 상당하다. 인텔리콘연구소만 해도 세계법률인공지능경진대회(COLIEE)에 참여해 2016년(도쿄)과 2017년(런던) 2년 연속 우승했다.

기업도 늘어날 전망이다. 법률 시장이 개방됐으며, 기업 인수합병(M&A)을 비롯한 법률 시장도 지속적으로 커진다. 로펌 업계도 재편 중이다. 대형화와 동시에 전문화가 진행된다. 모두 리걸테크 수요 및 기업 증가 요인으로 작용한다.

산업 기반은 여전히 취약하다. 가장 필요한 빅데이터가 너무 없다. 기초 연구개발과 관련해 사람도, 투자도 부족하다.

임영익 인텔리콘연구소 대표 변호사는 "리걸테크가 힘을 받으려면 빅데이터 확보가 절실하다. 우리만 해도 근로계약서가 많이 쌓일수록 서비스 정교함이 올라간다"고 설명했다. 그는 "많은 법조인이 리걸테크에 관심을 두고 참여해야 가능한 일"이라면서 ‘학술적 교류를 통한 교육 인프라도 구축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상용 학회장은 학계와 산업계, 정부와 법조계가 맞물려 움직이는 리걸테크 생태계 조성을 주문했다. 이 학회장은 "기업 연구개발(R&D)은 수익을 낼 분야를 기준으로 이뤄지는데 리걸테크가 어떤 수익을 낼 수 있는지 판단할 시장 기반조차 없는 상태"라며 "공학 쪽의 기초 기술연구에 마중물이 될 정부 지원이 있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한국AI변호사는 지금 어디에

사람이 아닌 기술이 재판에 관여하면 문제가 없나. 전문가들은 최종 판단을 전문 법조인이 내리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판례도 있다. 이른바 ‘루미스 사건’이다.

사람보다 AI가 더 객관적으로 판단할 것이라는 믿음까지 나올 정도로 사법 불신이 팽배하다. / IT조선 DB
2013년 미국 위스콘신주에 사는 에릭 루미스는 총격 사건에 쓰인 차량을 몰다가 경찰 검문에 불응하고 도주 후 잡혔다. 판사는 그에게 6년형을 선고했다. 그 형량을 판단할 때 리걸테크 스타트업 노스포인트가 개발한 ‘컴퍼스’라는 형량 판단기의 도움을 받았다. 컴퍼스는 범죄자의 성향이나 태도, 생활 방식, 범죄 전력 등을 분석해 재범 가능성까지 예측한다.

루미스는 컴퍼스 인공지능 알고리즘의 판단 과정을 확인할 수 없다며 항소했다. 하지만, 2017년 위스콘신주 법원은 컴퍼스가 유용한 정보를 제공했다며 항소를 기각했다.

사법 파동, 전관예우 논란, 잦은 판결 불복, 법과 공권력 경시 풍조까지 법에 대한 신뢰가 전반적으로 낮은 우리나라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법보다 주먹’과 같은 말이 여전히 통용된다. ‘사람이 아니라 AI가 판결한 것이라면 믿겠다’는 말이 더는 농담으로 들리지 않을 정도로 사법 불신이 팽배하다.

법조계가 이를 극복하기 위해 배심원제를 비롯한 다양한 제도를 운용했다. 하지만 효과가 기대에 못 미쳤다. AI라면 다르다. 실질적이면서 효과적인 수단이다. 스포츠 경기의 비디오판독(VAR: video assistant referee)이 심판 판정의 정확성과 신뢰성을 높여놓았듯이 AI변호사가 땅에 떨어진 사법 신뢰를 단번에 끌어올릴 수 있다.

한국AI변호사는 과연 어느 수준까지 왔는가. 우리 법조계는 AI를 얼마나 표용할 준비가 돼 있는가.

이를 알고 싶으면 오는 29일 오후 서초동 서울지방변호사회관에 가보면 된다. 제1회 ‘법률인공지능경진대회(알파로경진대회:Alpha Law competition)’가 이곳에서 열릴 예정이다. AI 기반 리걸테크로 법무 수행 능력을 겨루는 행사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아시아 첫 행사다.

‘변호사팀’과 ‘일반인+AI 혼합팀’ 등 다양한 팀이 실력을 겨룰 예정이다. 대회 사무국은 26일 세부 일정과 계획을 공개한다. 단순 대결을 넘어 인간과 AI의 협업 가능성을 진단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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