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최양희 전 장관, "AI는 시대적 큰 변화를 추진하는 동력"

세계가 인공지능(AI) 인재 확보에 열을 올린 가운데 한국은 이제 막 첫발을 뗐다. 가까운 중국, 일본과 비교해 한참 뒤진다. 중국은 이미 AI 인재 글로벌 2위 자리를 꿰찼다. 일본은 매년 25만명씩 AI 인재를 양성한다. 한국도 2023년까지 20만명 확보를 목표로 내걸었지만 이것조차 쉽지 않다.

한국에서 AI 바람이 분 것은 지난 2016년이다. 이세돌 9단과 구글 알파고 간 바둑 대결 이후다. 알파고 충격과 함께 뜨거웠던 AI에 대한 국민적 관심은 이내 곧 시들해졌다. 몇 안 되는 개발자들만이 묵묵히 제 갈 길을 갔다.

3년이 흐른 2019년, 비로소 AI 붐이 다시 인다. 그 사이 외국과의 격차는 더 벌어졌다. 경각심과 절박감이 한꺼번에 작용한 덕분일까. 정부, 대학, 기업 할 것 없이 AI 기술과 서비스 개발에 경쟁적으로 나섰다.

알파고 충격 당시 AI 주무부처인 미래창조과학부(현 과학기술정보통신부)를 이끈 최양희 전 장관을 만났다. 서울대 컴퓨터공학과로 복귀한 그는 지난 5월 서울대 AI 관련 마스터 플랜을 짜는 AI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최양희 서울대학교 AI위원회 위원장. / 이광영 기자
최양희 서울대학교 AI위원회 위원장. / 이광영 기자
AI위원회는 비상근 위원들로 구성됐다. 기본 전략을 구상해 집행 조직에 넘겨주는 역할을 한다. 짧은 시간 집중적으로 정책을 발굴하고 의견을 청취하고 실행계획을 만든다. AI 전략 초안을 거의 완성해 곧 공개할 예정이다.

최 위원장은 "AI위원회는 서울대 교수는 물론 넓은 시야를 가진 외부 인사 등이 참여해 전체적인 그림을 그린다"며 "석달 사이에 미팅만 수십차례 하며 다양한 이슈를 논의했고, 150명이 넘는 교수들을 만나 대화를 나누며 실행계획을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최 위원장은 장관 재임 때 AI 인재 양성의 중요성을 자주 언급했다. 그는 AI를 ‘시대적 변화를 추진하는 가장 큰 동력’이라고 표현했다. 다양한 정책도 내놨다. 하지만 법과 제도가 미흡했다. 그는 특히 시급한 AI 인재 양성이 미흡했던 것에 아쉬움을 내비쳤다.

최 위원장은 "AI의 중요성을 알지만, 제도를 이끌고 갈 모멘텀은 사실 기대보다 부족하다"라면서 "가장 중요한 이유는 AI 관련 인재양성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AI 관련 연구개발이 본격적인 수준에 도달하지 못하다보니 AI 관련 창업이나 세계 시장 진출 기업 수 등이 주변국과 대비해 분발해야 할 수준"이라며 "정부와 기업이 각각 할 일이 있겠지만, 대학이 앞장서 해야할 일이 굉장히 많다는 생각을 오래 전부터 했다"고 말했다. 그가 AI위원장을 맡은 것도 이 때문이다.

서울대만의 차별성: ‘다양한 교육’, ‘지리적 위치’, ‘대규모 인재 양성’

대학마다 특성에 맞는 AI 교육이 필요하다. 최 위원장은 서울대만이 잘 할 수 있는 것을 찾는다. 서울대만의 차별성은 뭘까. 그는 세가지를 꼽았다. 먼저 다양한 교육이 가능하다.

그는 AI 교육이 필요한 사람을 크게 세 그룹으로 나눴다. 첫 그룹은 AI 관련 알고리즘, 빅데이터 등 AI 자체를 연구하고 발전시키려는 전공자들이다. 두번째 그룹은 AI를 활용해 기존 영역을 확장하고, 신산업을 일으키는 등 학문을 발전시키고자 하는 사람들이다. 세번째는 현대사회 시민으로서 AI를 상식적인 교양 수준으로 알기 위해 배우고자 하는 이들이다.

최 위원장은 "대학은 세 그룹을 모두 만족시켜야 한다"며 "서울대는 종합대학이며, 학생 수만 3만명에 달한다. 시간강사까지 합치면 5000명의 교수가 있다. 1년 예산만 해도 1조원인 큰 대학인만큼 이것(다양한 교육)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범위를 넓게 잡더라도 AI 교육을 원하는 사람 모두를 가르칠 여건이 되는 것이 바로 서울대의 차별성이라는 것이다.

최양희 전 미래창조과학부(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 이광영 기자
최양희 전 미래창조과학부(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 이광영 기자
두 번째 차별성은 지리적 위치다.

최 위원장은 "1970년대만해도 서울대 관악캠퍼스는 나무만 우거졌지 건물도 거의 없는 곳이었고, 수업을 들으려면 멀미가 날 정도로 멀게 느껴질 정도였다"며 "지금은 이른바 ‘강남'이 됐고, 이미 주변에 타운이 형성되는 등 요지가 됐다"고 말했다.

그는 서울대를 중심으로 생태계를 잘 만들면 세계에 내놓을 AI 허브가 될 수 있다고 자신했다.

최 위원장은 "실리콘밸리에는 스탠포드 대학이 중심에 있고, 중국의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중관춘의 중심에는 칭화대학이 있다"며 "한국은 서울대를 중심으로 한 낙성대 AI 밸리를 만들고자 한다"고 말했다.

마지막 차별성은 대규모 인재 양성이다. 최 위원장은 "아시다시피 서울대 정원은 본질적으로 제한돼 배출 인력 역시 제한적이다"며 "하지만 이것을 극복해야 새로운 단계로 나아갈 수 있기에 적어도 1년에 수백명 이상의 AI 전문가를 배출할 방법을 찾는다"고 말했다.

AI 강국 도약하려면 교육부터 바꿔야

최 위원장은 중국이 AI 강국으로 큰 이유로 인재양성 노력을 꼽았다. 인도가 SW 개발인재 확보로 많은 돈을 벌어들이는 것을 본 중국은 이를 바로 벤치마킹해 성공했다는 것이다.

중국은 이미 상당한 AI 인재를 확보했다. 칭화대가 2018년 발표한 ‘중국 AI 발전보고서 2018’에 따르면 중국의 AI 인재는 1만8232명으로 미국 다음으로 가장 많다. 중국 AI 관련 논문 수 세계 1위, AI 기업 수 세계 2위 국가다. 일본과 한국은 각각 3117명, 2664명으로 하위권이다.

일본도 뒤늦게 AI 인력 양성에 드라이브를 건다. 일본 정부는 3월 인공지능(AI) 관련 전문 인력을 매년 25만명씩 양성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이에 질세라 한국도 AI 대학원 설립을 지원하는 등 정책을 펼친다. 주무부처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2018년 목표로 제시한 4차 산업혁명 인재는 향후 5년 간 1만명에 불과하다.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지난 21일 발표한 ‘혁신성장 확산 가속화 전략'을 통해 밝힌 인력 양성 목표는 2023년까지 20만명이다. 하지만 이 가운데 AI 핵심 인재는 여전히 수요에 비해 턱없이 모자란다.

최 위원장은 "중국이 SW 전문교육기관을 만들어 배출한 인재들이 산업 발전의 역군이 됐다"며 "2015년 장관 재임 시절 도입한 SW중심대학도 사실 중국 사례를 참고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제 SW중심대학 졸업자들이 나오기 시작한다.

그는 AI 인재양성을 위해 정부가 세 가지를 고민해줄 것을 주문했다. 먼저 20년 넘게 묶인 서울대 정원을 탄력적으로 푸는 것이다. 최 위원장은 "영문학과 정원을 줄이고 AI 관련 학과 정원을 늘리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외국 대학 수준에 버금갈 규모로 AI 관련 학과 정원을 확장하는 것이 필요하고, 만약 이것을 성공한다면 현 정부의 획기적인 업적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하나는 재교육이다. 최 위원장은 "AI 관련 과목을 이수한 사람은 아마 10만명도 안 될 것이다"며 "하지만 AI에 대해 알면 좋을 사람은 300만명을 넘는다"고 지적했다.

취 위원장은 "기존 취업자에 대한 재교육이 매우 중요한데, 현실은 학원 교육에 의존한다"며 "일부 공공기관 교육도 3시간부터 3개월짜리의 단기 과정이 대부분"이라고 지적했다.

재교육을 받으면 어느 정도의 전문성을 지닌 AI 인력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근본적은 대책은 대학 자체 정원 확대지만, 재교육 프로그램을 늘리는 것도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최 위원장은 "대학 정원을 늘리면 졸업할 때까지 5~7년이 걸리지만 재교육 기간은 5~7개월 정도면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초·중·고등학교에서 컴퓨터 교육을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 위원장은 "전산, 코딩 과목 등에 대한 노출이 지금보다 훨씬 많이 이뤄져야 한다"며 "신입생이 전산 기초를 알면 대학에서 고급 전산을 바로 가르칠 수 있는데, 지금은 대학교에서 기초부터 다시 배우니 정작 졸업했을 때 실력이 없다는 얘기가 나온다"고 말했다.

AI를 가르칠 고급인재 확보도 쉽지 않다. AI를 교육할 인재풀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 이 해결책으로 최 위원장은 공공이나 사기업이 채택한 ‘겸업금지’ 조항을 손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 위원장은 "겸업을 허용할 때 나타날 부작용도 분명히 있다. 하지만 작은 문제가 두려워 시작도 하지 않았다가는 큰 실리를 놓친다"며 "훌륭한 교수가 기업에 가서 연구개발 직책을 겸직할 수 있어야 하고, 또 반대로 기업의 AI인재도 대학에 와서 학생지도, 연구를 할 수 있도록 제한 조치를 완화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