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망할 뻔 했다. ‘카카오니까 되겠지’ 싶었다. 시장 변화는 읽지 못했으면서 세상 모든 것을 사업 기회로 봤다. 이것저것 다 하다보니 킬러 콘텐츠가 없었다. 조직원만 번아웃(Burn out) 됐다."

카카오페이지 얘기다. 카카오페이지는 이진수 대표가 2010년 김범수 카카오 의장 투자를 받고 설립한 회사다. 설립 당시 이름은 포도트리다. 카카오는 2015년 포도트리를 자회사로 인수했다. 2018년 사명을 카카오페이지로 변경했다.

차상훈 카카오페이지 부사장은 29일 전남 여수에서 열린 2019 벤처썸머포럼에서 이 같이 말했다. 현재 카카오페이지 행보를 보면 좀처럼 이해가 가지 않는다. 카카오페이지는 모바일 콘텐츠 시장에서 승승장구하고 있어서다.

카카오페이지는 카카오 자회사로 웹툰과 웹소설, 주문형 비디오(VOD) 등 모바일 콘텐츠를 제공한다. 80개가 넘는 카카오 계열사 중 매출 성장세는 단연 1등이다. 2013년 매출 21억원에서 2018년 기준 매출액은 1875억원을 기록했다. 2017년 대비 매출은 58.3%, 영업이익은 무려 281.8% 증가했다. 국내 모바일 콘텐츠 시장 60%를 카카오페이지가 차지한다.

차상훈 카카오페이지 부사장이 29일 전남 여수에서 열린 벤처썸머포럼에서 카카오페이지의 성공 사례를 공유하고있다./ 벤처기업협회 제공
차상훈 카카오페이지 부사장이 29일 전남 여수에서 열린 벤처썸머포럼에서 카카오페이지의 성공 사례를 공유하고있다./ 벤처기업협회 제공
그의 말처럼 카카오페이지가 처음부터 잘 나간 건 아니다. 카카오페이지는 창업 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총 세 번의 구조조정이라는 아픔을 겪었다.

카카오페이지 전신인 포도트리는 2011년 애플 앱스토어 전용 모바일 영단어 교육 앱을 출시했다. 1달러 짜리 앱을 만들어 1억명에게 팔면 1억달러 수익을 이룰 수 있다는 단순한 목표를 세웠다. 출시하자마자 국내 앱스토어 다운로드 순위 1등을 차지했다. 자신감이 붙자 어린이용 위인전 앱도 내놨다.

욕심이 나니 이것저것 많이 출시했다. 정작 ‘한 방'이 없었다. 영단어 앱도 이용자 재방문율이 떨어졌다. 계속 다른 서비스를 시도하다보니 킬러콘텐츠는 없고 조직원만 지쳐갔다. 글로벌 앱 개발사를 표방하던 포도트리가 모바일 콘텐츠 전문 플랫폼으로 업종을 전환한 이유다.

그렇다고 당장 매출이 늘어나지도 않았다. 조직원도 환영하지 않았다. 차 부사장은 "글로벌 앱 개발사가 아닌 카카오를 통한 모바일 콘텐츠 오픈 마켓 플랫폼을 만들겠다고 했더니 십 여명의 직원이 퇴사했다"며 "플랫폼을 만든 이후에도 매출이 늘지 않아 파트너사 1000여명 앞에서 사과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매출 신장 방법을 고민하다 눈에 띈 건 당시 잘 나가던 스마트폰 게임 ‘애니팡’이었다. 이 게임을 즐기려면 일종의 캐시인 하트가 필요하다. 하트를 모으려면 30분을 기다리거나 친구에게 게임을 추천하면 된다. 유료 결제로 하트를 채우는 방법도 있다.

차 부사장은 "소비자가 기다려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시스템을 도입하면 콘텐츠를 게임처럼 즐길 수 있다고 생각했다"며 기다리면 무료 시스템을 도입한 배경을 말했다.

카카오페이지는 당시 이 시스템을 도입해 콘텐츠를 무료로 보고 싶어하는 소비자에게 하루를 기다리게 했다. 새로운 회차가 업로드 되면 하루가 지난 후 무료로 볼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물론 돈만 내면 바로 볼 수 있다. 이를 위해 카카오페이지는 다른 유료 콘텐츠 서비스와 달리 콘텐츠 발간 주기를 하루 단위로 바꿨다. 다른 서비스는 대체로 한 번에 한 권의 책을 모두 결제하는 방식으로 운영됐다.

카카오페이지는 2014년 10월 이 시스템을 도입한 이후 급격한 성장세를 보였다. 월간 조회수와 주간 매출이 모두 늘어났다. 카카오페이지의 연간 거래액은 도입 전 2014년 130억 원에서 2018년 2200억원으로 17배쯤 뛰었다.

차 부사장은 "기존 유료 콘텐츠 비즈니스 모델은 이용자가 결제할 시점을 사업자가 결정한 셈이다"라며 "반면 기다리면 무료 시스템은 이용자가 자기가 원하는 시점에 결제할 수 있도록 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한 번에 모든 콘텐츠 이용 비용을 결제했던 기존 모델과 달리, 기다리면 무료 모델은 매일매일 이용자를 계산대 앞에 세우는 효과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물론 ‘기다리면 무료’ 시스템 도입 전 우려도 있었다. 차 부사장은 "내부에서는 모든 이용자가 하루를 기다렸다 무료로 이용할 경우 조회수만 늘고 매출은 떨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많았다"며 "작가들을 일일이 찾아가서 설득하는데만 10개월이 걸렸다"고 말했다.

차 부사장은 비즈니스 성공 전략으로 3P를 꼽았다. 3P는 열정(Passion), 인재(Person), 방향(Path)이다. 그는 "비즈니스를 성공하려면 (기다리면 무료 서비스처럼) 사업 모델이 단순 명료하고 언제 어디서나 반복할 수 있어야 한다"며 "이 모델이 옳다고 믿었으면 꾸준히 밀고 나가는 것도 성공 전략이다"라고 말했다.

카카오페이지는 올해를 글로벌 시장 진출 원년으로 삼는다. 차 부사장은 "아시아 모든 국가에 진출해 한국 콘텐츠를 잘 유통하는게 목적이다"라며 "현재 1300여개 이상 콘텐츠 파트너가 좋은 콘텐츠로 이용자 유치 경쟁을 하고 있어 더 좋은 케이팝, 케이드라마, 케이스토리 등이 등장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