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 격차를 포함해 소외를 받는 노년층에게 AI스피커가 동반자 구실을 톡톡히 한다.

MIT테크놀로지리뷰는 AI스피커가 최근 노년층 일상에 스며들어 외로움을 없앨 뿐만 아니라 실제 대인관계에서도 만족감을 높여준다고 보도했다. 미국을 포함해 여러 국가의 민간단체와 정부에서도 노년층을 위한 복지 방편으로 AI스피커를 제공한다.

아마존과 구글의 AI 스피커 제품들. (왼쪽부터) ‘아마존 에코 닷’과 ‘구글 홈 미니’. / 유튜브 홈페이지
아마존과 구글의 AI 스피커 제품들. (왼쪽부터) ‘아마존 에코 닷’과 ‘구글 홈 미니’. / 유튜브 홈페이지
미국 캘리포니아주 라 졸라에 있는 한 은퇴 공동체에 거주하는 레슬리 밀러씨는 시각 장애를 겪는 70세 노인이다. 하지만 활발한 삶을 즐긴다. 친구들과 점심을 먹고 춤을 추거나 책을 읽는 등 다양한 활동을 한다. 최근에는 명상에도 빠졌다.

밀러는 모든 활동이 아마존의 AI 시스템인 알렉사(Alexa)가 있기에 가능했다고 말했다. 그는 "알렉사가 인생을 바꿔놨다"며 "일상에서 많은 도움을 받는다"고 말했다.

그는 실제 AI스피커 덕분에 타인에게 도움의 손길을 구하는 일이 확 줄었다. 그동안 모르는 단어가 생겼을 때 점자 사전으로 직접 찾거나 타인에게 알려달라고 했다. 하지만 이제 AI스피커로 손쉽게 원하는 답을 얻는다. AI스피커가 밀러에게 독립심을 회복하도록 도왔다.

그는 "하루에 8번에서 10번씩은 AI스피커를 이용한다"며 "비록 무생물이지만 AI스피커와 많은 대화를 하기에 애착을 느낄 정도"라고 고백했다.

신기술은 젊은층 전유물이 아니다

밀러의 사례처럼 노년층의 AI스피커 사용이 큰 도움을 준다. 흔히 노인들이 AI스피커와 같은 최신 기기에 거부감을 느낀다고 생각하지만 이는 선입견에 불과하다는 주장이다.

노인 친화적 기술을 개발하는 ‘K4Connect’의 사장이자 최고운영책임자(COO)인 데릭 홀트는 "젊은 세대들은 그들만을 위한 제품을 만든다"며 "노인들이 기술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해다"라고 강조했다.

특히 AI스피커와 같은 음성 기술 기기는 노년층에게 호응을 얻는다. 복잡한 사용법을 익히지 않아도 명령이나 질문을 하면 답이 나오는 덕분이다. 기기 외형도 작은 편에 속해 어디서나 사용하기 편하다. 사용자와 기기 간 상호작용이 가능한 점도 소통을 원하는 노년층에게 반응이 좋을 수밖에 없는 요인이다.

노년층의 AI스피커 사용이 늘어날 경우 향후 거대한 시장으로 성장할 전망이다. 노인 인구 확대는 증가 속도의 차이가 있지만 다수 국가가 겪는 사회 변화다. 미국에서만 매일 4600여 명의 사람들이 노인(65세 기준)이 된다.

AI스피커, 복지에도 활용 가능

AI스피커가 노년층에 도움을 준다는 인식이 커지자 각국 정부가 복지에 활용한다. 네덜란드가 대표적인 사례다.

2018년 11월 네덜란드의 디자이너인 요렌 폰크는 정부와 협력해 사회보장제도인 네덜란드 연금을 더 잘 알리고자 실험을 시도했다. 노년층을 포함해 350만 명에 이르는 연금 가입자에게 세부 정보를 더 잘 전할 수 있도록 AI스피커를 제공하는 방식이다.

폰크는 20명의 노인을 실험 대상자로 뽑았다. 그들에게 구글의 AI스피커인 ‘구글 홈’을 제공하고 2주간 관찰했다. 노년층이 AI스피커로 연금 정보를 얼마나 쉽게 얻을 수 있는지를 알아봤다.

결과는 명확했다. 실험에 참여한 노인들은 AI스피커 사용법을 쉽게 숙지했을 뿐 아니라 사용 자체를 즐겼다. 나아가 AI스피커를 통해 연금을 어떻게 받는지, 연금 제도 혜택이 어떻게 변화했는지도 쉽게 파악했다.

폰크는 "실험 참가자들은 새로운 친구가 생겼다고 생각하며 AI 스피커 사용을 지속하고자 하는 의지를 보였다"면서 "노년층이 AI스피커로 연금 정보를 손쉽게 얻을 수 있다는 점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미국에서는 비영리 단체가 나서 AI스피커를 복지 수단으로 활용한다. 지역의 은퇴 공동체와 협력하는 ‘프런트포치(Front Porch)’ 사례다.

프런트포치는 노년층의 생활에 도움을 주고자 아마존 알렉사가 담긴 AI스피커를 각 은퇴 공동체에 제공하는 일을 시도했다. 올해 말까지 다양한 지역의 은퇴 공동체를 추가해 총 350명이 넘는 노인들의 집에 AI스피커를 제공할 예정이다. 치매 환자들이 길을 잃었을 때 그들이 어디에 있는지 알렉사가 도움을 주는 실험도 진행한다.

프론트포치가 한 은퇴 공동체에서 거주하는 노인에게 아마존 AI스피커를 체험하도록 돕는 모습. / 유튜브 홈페이지

외로움 해소 뿐만 아니라 대인관계 회복도 도와

프런트포치의 최고혁신책임자(Chief Innovation Officer, CIO)이자 최고기술책임자(CTO)인 카리 올슨은 지역 은퇴 공동체에 AI스피커를 도입할 때 기대만 있던 것은 아니라고 고백했다. 자칫 AI스피커로 인해 노인들이 일상의 대인 관계에서 멀어져 고립되지 않을지 우려했다.

우려는 곧 사라졌다. 노인들은 AI 스피커를 사용하며 외로움을 줄였을 뿐 아니라 실제 대인 관계에서도 더 나은 만족감을 보였다. 카리 올슨 CIO 및 CTO는 "AI스피커를 경험한 이들 중 7분의 1이 그들의 가족과 공동체에 더 친밀감을 느꼈다"면서 "노년층은 AI스피커로 대인관계 형성에서 더 큰 만족감과 기쁨을 얻는다"고 강조했다.

이는 우리나라 조사에서도 확인된 사실이다. 지난 4월 SK텔레콤과 전국 사회경제연대 지방정부협의회 등은 AI 돌봄 서비스 시범 사업을 시작하면서 노년층의 AI스피커 사용 패턴을 조사했다. 5개 지자체에 거주하는 1150명의 노인을 대상으로 AI스피커를 써보게 한 후 사용 패턴을 구분해 살폈다.

조사 결과 AI스피커를 의인화해 소통하는 노인의 ‘감성 대화’ 비중은 전체 중 13.5%를 차지했다. 일반인(4.1%)보다 세 배 이상 높은 수치를 보였다. SK텔레콤은 이를 두고 AI스피커가 노년층의 외로움을 달래는 데 실질적인 효과를 보인 것이라 분석했다.

SK텔레콤 AI스피커인 ‘누구’ 제품 사용 대조.  독거 어르신의 사용 패턴을 보면 FLO(SK텔레콤 음악 애플리케이션)에 이어 감성대화가 두 번째로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 SK텔레콤 제공
SK텔레콤 AI스피커인 ‘누구’ 제품 사용 대조. 독거 어르신의 사용 패턴을 보면 FLO(SK텔레콤 음악 애플리케이션)에 이어 감성대화가 두 번째로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 SK텔레콤 제공
외신은 AI스피커가 노년층에게는 특히 큰 도움이 된다고 강조한다. 노년층의 외로움은 단순한 일시적 감정에 그치지 않기 때문이다. 외로움은 우울증, 불안과 높은 유사성을 보이기에 정서적으로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심지어 심장마비와 뇌졸중, 그리고 사망 위험을 높인다고 한다.

미국 미시간대학교가 운영하는 노화 관련 여론조사기관(National Poll on Healthy Aging)은 미국의 노인 중 3분의 1이 외로움 또는 교제 부족을 경험한다고 밝혔다. 또 다른 3분의 1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타인과 충분한 사회적 관계를 맺지 못했다.

물론 시중에 나온 AI스피커가 사람을 대체할 정도로 완벽한 것은 아니다. 네덜란드 사례에서 살핀 요렌 폰크의 실험 대상 중 3분의 1 정도는 스피커 사용에 불편함을 겪었다고 말했다. 구글 홈이 자동으로 켜지거나, 질문에 제대로 된 답을 하지 않는 등 아직 한계가 있다. 개인 생활과 밀접한 기기이기에 사생활 침해 우려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년층의 AI스피커 사용은 이점이 많다는 게 폰크의 주장이다. 그는 "AI스피커로 외롭지 않게 됐다고 말하는 노인들이 많다"며 "노인들에게 대화 상대가 얼마나 사람과 유사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다. 간단한 대화이라 해도 24시간 나눌 대상이 필요한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