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여러 논란에도 불구하고 안면인식 기술 선두주자로 나선 사이 미국에서는 해당 기술의 규제 움직임이 활발하다. 주 의회를 중심으로 경찰의 안면인식 기술 사용 금지가 확산된다. 특히 기술기업의 산실인 실리콘밸리가 있는 캘리포니아주가 규제에 앞장섰다. 경찰측의 집단 반발 움직임도 있어 시행까지 진통을 예고했다. 기술기업간 이해관계도 엇갈려 업계내 갈등도 예상됐다.

워싱턴포스트(WP)와 CNN 등 다수 외신은 지난 12일(현지시각) 캘리포니아 주의회 상원이 안면인식 기술을 경찰 바디카메라에 이용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안(AB 1215)을 통과시켰다고 보도했다. 2020년 1월 법을 정식 발효해 3년간 유예기간을 둔 후 전격 시행할 예정이다.

경찰관 가슴팍에 부착된 바디카메라 모습. 직사각형 모양의 외관이며 형광색으로 테를 두른 카메라 렌즈가 보인다. / 유튜브 홈페이지 갈무리
경찰관 가슴팍에 부착된 바디카메라 모습. 직사각형 모양의 외관이며 형광색으로 테를 두른 카메라 렌즈가 보인다. / 유튜브 홈페이지 갈무리
이번 법안을 제시한 필 팅 캘리포니아주 의원은 WP에 "경찰관 몸에 카메라를 부착해 안면인식 기술을 이용하는 것은 지역사회와 법 집행기관 사이의 신뢰를 무너뜨린다"며 법안 취지를 설명했다. CNN과의 인터뷰에서는 "이번 법안이 사후 대응이기보다 사전 예방의 성격이 강하다"고 덧붙였다.

해당 법안은 ‘바디카메라 책임에 관한 법(Body Camera Accountability Act)’으로도 불린다.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의 서명을 앞두고 있으며 기한은 10월 13일까지이다. 주지사 서명까지 마치면 내년 1월 정식 발효될 예정이다. 캘리포니아 주의회 상원은 "서명까지 무리 없이 통과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법안은 본래 유예기간이 7년이었지만 상원에서 수정돼 3년으로 대폭 짧아진 상태다. 팅 의원은 "유예기간 동안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이 안면인식 기술을 개선하도록 이끌 것"이라고 말했다.

향후 안면인식 기술이 보안성을 높인다 해도 금지 법안이 철회될지 여부는 알 수 없다. 팅 의원은 "3년 동안 다양한 이해관계자들과 논의를 지속하겠다"는 계획만 내놓았다.

이같은 금지 법안에 경찰 관계자들은 반대의 목소리를 높인다. 경찰노조(Police unions)는 "안면인식 기술에 장벽을 두는 것은 공공안전을 위협한다"면서 "2028년 개최하는 로스앤젤레스(LA) 올림픽과 같은 큰 행사 보안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음악 페스티벌 같은 지역의 연례행사 보안에도 영향을 준다"고 주장했다.

캘리포니아주 남부 도시인 리버사이드의 보안관협회(Riverside Sheriffs' Association)도 성명을 내고 "미 사법당국이 시민을 적절히 보호하도록 돕는 도구(tool)를 사용하지 않겠다는 것을 전 세계에 말한 것과 같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앞서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시의회 격인 감독위원회는 5월 경찰과 교통국 등 법 집행기관이 안면인식 기술을 사용해 범죄 수사를 하지 못하도록 막는 조례를 대도시 처음으로 통과시켰다.

당시 조례안을 낸 아론 페스킨 감독관은 "감시 기술을 안전하고 책임 있게 사용하기 위한 방안을 내놓은 것"이라 말하며 "기술에 반대하려는 게 아니다"고 취지를 설명했다.

미국 사회에서 안면인식 기술 논란이 끊이질 않는 이유는 해당 기술의 광범위한 사용에 있다. 녹화된 비디오 스틸 사진으로부터 특정인의 얼굴 특징을 따내 사진 데이터베이스와 비교한 후 신원을 식별할 수 있다보니 다수 장소에서 쓰인다. 상점과 공연장뿐 아니라 공항 등의 국가기반시설에도 사용할 수 있다.

 안면인식 기술 활용 예. / 유튜브 홈페이지 갈무리
안면인식 기술 활용 예. / 유튜브 홈페이지 갈무리
일각에서는 안면인식 기술이 범죄 해결을 돕는 등 이점이 많지만 부작용도 클 수 있다고 우려한다. 시민의 일상 감시가 생활화돼 사생활 침해를 낳고 개인정보까지 유출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브래드 스미스 마이크로소프트(MS) 사장은 "안면인식 기술이 남용돼 사회 파장을 낳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하며 "기술기업들이 해당 기술을 정부기관에 넘겨서는 안 된다"고 의회에 촉구하기도 했다. MS는 캘리포니아주 법 집행 당국뿐 아니라 해외 여러 정부기관의 안면인식 기술 공급 협조를 거절한 상태다.

7월에는 연방수사국(FBI)과 이민세관단속국(ICE)이 범죄 수사와 불법체류자 단속을 위해 미국 운전면허증 발급 때 사용된 사진을 안면인식 조회에 활용한 사실이 드러나 논란을 키웠다. WP에 따르면 미 조지타운 대학 연구진은 FBI와 ICE에서 받은 5년 치 내부 문서와 이메일을 살펴 미국민 사진 수억 장이 두 기관의 안면인식 조회 목적으로 사용됐음을 밝혔다.

안면인식 기술에 결함이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8월 아마존의 안면인식 소프트웨어 ‘레코그니션(Rekohnition)’은 캘리포니아 주의회 의원을 범죄자로 인식하는 오류를 범했다. CNN에 따르면 레코그니션은 의원들 사진을 경찰 데이터베이스에 있는 범죄자 얼굴 사진과 대조해 80명의 의원 중 26명을 범죄자로 지목했다. 특히 여성이나 유색인종을 잘못 인식하는 비율이 높아 각종 차별을 조장한다는 우려까지 키웠다.

플로리다주 올랜도시 경찰 당국도 7월 레코그니션을 시범 운영했으나 여러 기술 한계가 보인다는 이유로 안면인식 기술을 도입하지 않았다.

캘리포니아주에서는 샌프란시스코를 포함해 오클랜드 등 다수 도시에서 경찰의 안면인식 기술 사용을 금지한 상태다. 오리건주와 뉴햄프셔주 등 2개 주도 해당 기술을 금지했다. 매사추세츠주 서머빌도 마찬가지다.

미 연방법 차원에서 안면인식 기술을 규제하는 법안은 없다. 위에서 언급한 곳을 뺀 나머지 지역에서는 경찰이 범죄 용의자를 찾거나 특정인 신원 확인을 위해 안면인식 기술을 사용한다.

영국에서는 경찰의 안면인식 기술 사용이 인권침해라는 주장이 일며 금지 소송 논란이 떠오른 상태다. 유럽연합(EU)은 시민의 사생활을 보호하고자 안면인식 기술 사용을 엄격히 제한하는 규제안을 검토하는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