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노창현 와이즈패션 대표

모두가 잠든 새벽시간. 북적대는 동대문 상가 복도를 쉼없이 활보하는 이들이 있다. 원하는 물건을 찾기 위해 돌아다니는 일명 ‘사입삼촌(구매대행자)' 들이다. 하지만 빅데이터와 인공지능(AI) 기술 덕분에 더는 발품팔이 없이 원하는 물건을 찾을 수 있다. ‘와이즈패션’이 개발한 ‘MD렌즈' 덕분이다. 설립 3년 차 스타트업 와이즈패션은 아날로그 방식의 동대문 사입 문화를 혁신하는 원동력이다.

16일 서울시 중구 흥인동 사무실에서 IT조선과 만난 노창현 와이즈패션 대표는 아날로그 동대문 패션시장을 데이터화 하면 새로운 경쟁력을 갖출 것이라고 자신했다. 그 일환 중 하나가 와이즈패션이 8월 선보인 ‘MD렌즈'다. ‘MD렌즈'는 패션 소매 업체들이 자신이 원하는 상품을 사진 검색만으로 쉽게 찾을 수 있는 서비스다. 앱 방식 서비스여서 손쉽게 스마트폰에 내려받아 쓸 수 있다.

노창현 와이즈패션 대표. / 류은주 기자
노창현 와이즈패션 대표. / 류은주 기자
노 대표는 "동대문에서는 아무리 발품을 팔고 사람을 동원해도 원하는 상품을 찾기가 쉽지 않다"며 "하지만 도매업체들의 데이터를 모은 MD렌즈를 활용하면 내가 원하는 콘셉트에 맞춘 상품을 10초 안에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인플루언서가 입은 흰색 꽃무늬 블라우스 이미지를 검색하면 비슷한 옷들을 파는 도매업체 리스트가 나온다. 지금은 무료로 서비스를 제공하며, 향후 특화 기능을 품은 프리미엄 서비스가 나온다.

"K-팝아닌 K-패션도 얼마든지 가능"

노 대표는 "패션시장은 빅데이터 기반 4차산업 혁명 시대 기술과 결합해 새로운 시장으로 탈바꿈했다"며 "기존처럼 폐쇄적으로 내가 가진 자그마한 노하우에 의존해 사업을 하면 글로벌 경쟁력 확보로 이어질 수 없지만, 기술과 데이터를 빨리 받아들이면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K-팝과 달리 K-패션은 아직 실체가 없지만, 한국은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한 곳(동대문)에서 기획·제작·생산이 며칠 만에 가능한 시스템을 갖췄다"며 "여기에 기술 경쟁력이 더해지면 글로벌 패션시장도 충분히 넘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향후 북한의 제조 노동력을 확보할 기회가 열리면 더욱 그 가능성은 높아질 것으로 내다봤다.

노 대표는 "플랫폼 개발은 저희가 도와줄 수 있는 부분이지만, 생산비와 인건비 이슈는 운이 따라 줘야 한다"며 "만약 저렴한 가격에 북한의 봉제 노동력을 쓸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된다면 동대문의 세계화 시기도 앞당겨질 것이다"라고 말했다.

원자력 공부하던 공대생이 패션 스타트업 창업한 사연

노 대표의 이력은 독특하다. 패션사업과 거리가 먼 원자력 공학도다. 카이스트에서 원자력 공학 박사 학위까지 받았다.

노창현 와이즈패션 대표. / 류은주 기자
노창현 와이즈패션 대표. / 류은주 기자
하지만 그는 원자력 연구가 아닌 IT 벤처기업인의 길을 택했다. 그 이유는 IT시장의 역동성에 미래가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노 대표는 "전공을 살려 다양한 시도를 해보고 싶어도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킨스(KINS)나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 등의 기준 안에서 연구를 해야 해 제약이 많았다"며 "그대로 있었으면 보수적인 연구문화에 내 연구의 실 적용을 눈으로 확인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IT 분야에서 일을 하면서 내가 만든 서비스를 사람이 사용하는 것을 바로 보고 느낄 수 있었다"며 "IT분야 역동성 때문에 창업의 길을 택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벤처인의 길은 순탄치 않았다. 2000년 인터넷 유아교육 업체 ‘에스포라'로 첫 창업에 도전했지만 실패했다. 그는 포기하지 않고 2008년 게임 개발업체 드리밍텍을 설립해 재기를 도모했다. 드리밍텍도 만족스러운 마무리를 짓지 못했다. 다른 사람에게 매각했지만, 제값을 받을 순 없었다.

두 번의 경험 후 세 번째 도전이 바로 와이즈패션이다. 그는 드리밍텍 매각 후 시간적인 여유가 있을 때 우연치 않게 패션 시장을 살폈고 여기서 성공의 기회를 발견했다. 지인과 리테일(유통) 사업에서 새로운 부가가치를 만드는 방법을 고민하다 패션 시장이 대단한 규모라는 점에 주목했다.

노 대표는 "동대문 패션 시장을 알고 싶어 새벽에 사입삼촌들을 따라다니며 시장을 파악했다"며 "굉장히 아날로그적인 유통 과정에 충격을 받았고, 더 쉽게 일처리를 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게 됐다"고 말했다.

"인재 영입 위해 삼고초려 마다않겠다"

그는 인재를 영입하기 위해 직접 발로 뛴다. 창업할 당시 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이와 동업하기 위해 삼고초려도 마다하지 않는다.

노창현 와이즈패션 대표. / 류은주 기자
노창현 와이즈패션 대표. / 류은주 기자
노 대표는 "패션분야 소프트웨어를 만들기 위해서는 단순히 개발만 할 수 있는 공돌이(공대출신 남학생을 빗대는 말) 뿐만 아니라 패션분야를 잘 아는 사람이 필요했다"며 "동대문 패션 쪽에서 유명한 분과 한 번 대화하기 위해 3주를 기다리기도 하고, 집에 찾아가 1시간 넘게 기다려 설득을 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노 대표는 직원을 뽑을 때도 신중을 기한다. 인터뷰 시간은 기본 2시간 이상이다. 팀장급 이상의 직원을 뽑을 때도 노 대표가 직접 면접을 본다.

그는 "아무리 경력이 10년이 넘는 사람이라도 테스트를 보고 기본이 안 돼 있으면 뽑지 않는다"며 "특히 경력 개발 직군을 뽑을 때 직접 다 전화해서 회사의 비전을 얘기해서 설득하고, 그다음에 테스트를 보게 한다"고 말했다.

현재 와이즈패션의 개발업무를 총괄하고 있는 송준이 전무를 스카우트한 것 역시 노 대표다. 송준이 전무는 포항공대 출신으로 삼성SDS에서 빅데이터 관련 업무를 맡았던 인물이다. 크몽에서 최고기술책임자(CTO)를 맡는 등 업계에 잘 알려진 유능한 개발자이자 데이터 전문가다.

노 대표의 노력이 쌓인 결과, 2명이 시작한 와이즈패션은 지금 비정규직 포함 40명이 넘는 회사로 빠르게 성장 중이다. 노 대표의 비전처럼 4차 산업혁명시대 혁신적 패션 시장의 강자로 거듭날 것이라는 기대를 한몸에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