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건 비바리퍼블리카 대표의 금융 당국을 향한 작심 발언을 계기로 스타트업 자본 안정성 판단 기준을 둘러싼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금융권서 가장 높은 관심을 받는 토스는 금감원 금융투자업 인가 심사 지연에 불만을 표출했고, 금감원은 토스 측이 금융 제도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다고 맞받아쳤다. 토스에 높은 기대를 거는 금융위는 중간에서 난감하다.

업계 일각에서는 5월 인터넷전문은행 상황이 재현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를 낸다. 당시 금감원은 인터넷전문은행 예비인가 심사에서 토스를 탈락시켜 금융위를 당혹스럽게 했다. 향후 정부 입장 변화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토스를 운영하는 비바리퍼블리카 이승건 대표는 18일 금융위원회 주최로 열린 핀테크 스케일업 현장 간담회 현장에서 작심 발언을 했다. 비바리퍼블리카가 인터넷은행과 증권업을 추진하려다 금융당국이 내건 자본 안정성 조건을 달성하지 못해 사업 무산 위기에 처했다는 것이다.

이 대표는 이날 "금융당국이 내건 조건 때문에 증권업 진출 포기를 고려하고 있다"며 "인터넷은행 진출을 포기하게 되면 이 역시 증권업 포기를 하게 된 계기와 연결된다"고 말했다.

윤석헌 금융감독원 원장은 정면으로 맞받아쳤다. 윤 원장은 19일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에서 열린 은성수 금융위원장과 면담 자리에서 "지금 일어난 문제는 공대생과 상대생이 서로 (관점이 달라) 커뮤니케이션이 잘 안 되는 상황과 비슷하다"며 "(이 대표가) 금융 제도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것 아닌가 싶다"며 꼬집었다.

이어 "금감원은 말이 안 되는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며 "규정대로 입장을 고수했을 것으로 보인다"라고 덧붙였다.

은성수(왼쪽에서 세번째) 금융위원장과 윤석헌(왼쪽에서 네번째) 금융감독원장이 19일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민원센터에서 금감원 직원들과 간담회를 진행하고 있다./금융위원회 제공
은성수(왼쪽에서 세번째) 금융위원장과 윤석헌(왼쪽에서 네번째) 금융감독원장이 19일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민원센터에서 금감원 직원들과 간담회를 진행하고 있다./금융위원회 제공
‘인터넷은행 포기’ 시사 발언 배경은 자본 안정성 평가

이번 사태는 비바리퍼블리카 자본 구조를 둘러싼 엇갈린 평가에서 비롯됐다는 분석이다. 금감원은 토스 대주주인 비바리퍼블리카 자본금 대다수가 안정적 자본이 아닌 채권이라며 금융업을 하기에 불안정하다는 평가를 내놓는다. 비바리퍼블리카가 투자유치를 통해 확보한 자본금 다수가 상환전환우선주(RCPS)라는 점에서다.

RCPS는 일정 기간이 지나면 투자자가 투자금 상환을 요청할 수 있는 권리가 포함된 주식이다. 2018년 말 기준 비바리퍼블리카 자본금에서 75%는 RCPS다.

금융당국은 이를 이유로 인터넷전문은행과 금융회사를 자회사로 두게 될 비바리퍼블리카의 대주주 자격에 의문을 표한다. 투자자가 상환을 요구하면 자본금을 돌려줘야 한다는 점에서 안정성이 담보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현행 상장기업에 적용하는 한국채택국제회계기준(K-IFRS)에 따르면 RCPS는 부채가 맞다. 다만 비상장기업이나 스타트업에 적용하는 회계기준인 K-GAAP(한국회계기준)에 따르면 RCPS는 자본으로 분류된다. 비바리퍼블리카는 현재 K-GAAP를 적용받는다.

이 대표가 언급한 "금융당국이 규정에도 없는 내용을 심사에 적용하려 한다"는 내용은 금융당국이 비바리퍼블리카 자회사가 될 증권사와 인터넷은행뿐 아니라 비바리퍼블리카에도 IFRS 기준 준수를 요구했다는 의미다.

현행 법상 증권사와 은행은 비상장기업이어도 IFRS를 적용받는다. 금융당국은 이를 운영할 비바리퍼블리카도 IFRS 기준에 따를 것을 요구한다.

하지만 비바리퍼블리카는 현재 자사에 적용되는 기준으로는 RCPS가 부채가 아닌 자본이라는 입장이다.

다만 비바리퍼블리카 관계자는 "우리가 설립할 증권사에 적용할 기준을 바꿔달라고 요구하는 것도 아니며 적격성 검증은 감독 당국의 고유 권한이라는 것도 명확히 인식하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이승건 비바리퍼블리카 대표./ IT조선 DB
이승건 비바리퍼블리카 대표./ IT조선 DB
"금융업 특성상 안정 추구" vs "스타트업 특성 반영해야"

반응은 엇갈린다. 금융업 진출을 희망하는 만큼 기존 금융사와 같은 기준을 적용해 안정을 추구해야 한다는 의견과 스타트업 특성을 반영해야 한다는 입장으로 나뉜다.

한 스타트업 업계 관계자는 "금융당국은 당연히 기존 금융사 판단 기준에 따라 비바리퍼블리카에도 안정적인 자본 구조를 갖추길 요구하는 것이다"라며 "이는 합리적이다"라고 전했다.

반면 핀테크 스타트업을 중심으로 금융혁신을 꾀하려면 정부 당국이 업계 생태계 특성을 정책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RCPS는 벤처캐피탈로부터 투자를 유치하려는 국내 대다수 스타트업들이 감수해야 하는 조건이라서다.

스타트업 업계 또 다른 관계자는 "실제 많은 벤처캐피탈들이 스타트업에 투자를 단행할 때 관행적으로 RCPS를 요구한다"며 "이는 스타트업이 망했을 때를 대비한 안전장치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투자를 유치하는 입장에서 투자자가 이 조건을 내걸면 거부하기 힘들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비바리퍼블리카는 이미 2조 이상 기업가치를 인정받았고, 인터넷은행과 증권사를 설립하면 기업가치는 더 성장할 것이다"라며 "상환을 요구할 투자자는 없을 것이다"라고 평가했다. 또 "RCPS 비율이 높다고 해당 스타트업이 부실하다고 보긴 어렵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