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RS "암호화폐는 유형 아닌 무형자산"
업계, 최소한의 자산성 공인에 안도
거래소 아닌 암호화폐 관련 과세기준은 여전히 모호
시세 차익 소득세 물게되나

비트코인을 비롯한 암호화폐(가상화폐)가 화폐나 금융상품은 아니라는 국제회계기준이 나왔다. 대신 무형·재고자산으로 볼 수 있다는 해석이다. 관련업계는 국제적으로 최소한의 자산성은 인정받았다며 안도하는 눈치다. 제대로 된 정의 및 규제가 공백인 국내 상황에서 최소한의 법적 울타리가 그어졌다는 평가다.

./픽사베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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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RS 해석위 "암호화폐, 돈 아냐"

최근 한국회계기준원과 금융감독원 등에 따르면 국제회계기준위원회(IASB·130개국 가량이 사용하는 회계기준 ‘IFRS’ 제정 기구) 산하 국제회계기준(IFRS) 해석위원회는 6월 영국 런던에서 회의를 열고 암호화폐를 금융자산으로 분류할 수 없다는 결론을 냈다.

IFRS 해석위원회는 일부 암호화폐가 재화, 용역과 교환 수단으로 사용될 수 있지만 현금처럼 재무제표에 모든 거래를 인식하고 측정하는 기준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아울러 다른 기업의 지분상품이나 거래 상대방에 현금 등 금융자산을 수취할 계약상 권리와 같은 금융자산 정의에도 충족하지 못한다고 봤다. 암호화폐는 현금도 아니고, 은행 예금이나 주식, 채권, 보험, 신탁 등 금융 상품과도 다르다고 평가한 셈이다.

IFRS 해석위원회는 대신 암호화폐를 무형자산이나 재고자산으로 분류했다. 위원회는 통상적인 영업 과정에서 판매를 위해 보유하거나 중개기업으로서 매매하는 경우 재고자산으로 보지만 그 외에는 모두 무형자산으로 해당한다고 해석했다.

무형자산은 물리적 실체는 없지만 식별할 수 있는 비화폐성 자산을 뜻한다. 영업권과 특허권, 상표권 등이 해당된다. 재고자산은 팔기 위해 보유하는 상품이나 제품, 원재료 등을 지칭한다.

업계 "최소한의 자산성은 공인됐다"

해석위의 이같은 판단에 국내 암호화폐 업계는 최소한의 자산성이 공인됐다며 안도하는 눈치다. 과세 기준이 명확해지면 거래소 사업이 더 투명할 수 있는 기반이 세워질 수 있다는 평가다.

업계는 해석위의 ‘암호화폐=돈이 아니다’라는 점에 주목하기 보다는 암호화폐가 무형 및 재고자산으로 분류될 수 있다는 점에 관심을 기울인다. 여태까지 국내 암호화폐 산업은 아무런 분류에 포함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금융상품은 아니더라도 암호자산 또는 디지털 자산으로서 암호화폐 정의가 점차 정리되고 있다"며 "그간 많은 기업들은 암호화폐를 어떻게 보유해야 하고 처분해야 하는지에 기준이 없어 전전긍긍해왔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번에 기준이 정해진 만큼 암호화폐 관련 사업이 보다 투명해질 수 있는 초석이 마련됐다고 본다"고 밝혔다.

실제 국내 4대 암호화폐 거래소인 빗썸과 업비트, 코인원, 코빗 등은 그간 감사보고서에 "현행 기업회계기준에는 암호화폐에 적용할 수 있는 구체적 규정이 없어 일반기업회계기준 제5장에 따라 회계정책을 개발해 적용하고 있다"는 내용을 실어왔다.

대형 거래소 한 관계자는 이번 해석위 판단에 "이번 해석은 국제적으로 암호화폐를 거래하고 사용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에 대한 국제기구의 답변이나 마찬가지다"라며 "특히 시세 조작 의혹을 받는 중소형 거래소 등 다소 불투명한 암호화폐 산업에 투명성을 불러올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거래소 아닌 암호화폐 취급업소에는 같은 모형 적용할 수 없어

업계 관계자들은 국제회계기준이 나왔다 하더라도 아직 정리해야 하는 부분은 남아 있다고 입을 모은다. 거래소 외 암호화폐 공개(ICO)를 한 암호화폐 취급업소 등은 거래소와 다른 재평가 모형을 적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업계 한 전문가는 "이번 결정으로 암호화폐는 무형자산으로 인정될 가능성이 높다"면서도 "거래소 외 코인 관련 서비스를 하는 업체 과세 문제는 회계법인이 세부 항목별로 좀더 고민이 필요한 사항이다"라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채굴을 주 수익으로 하는 기업은 채굴을 통해 암호화폐를 획득한다. 이는 회계 처리 방안이 모호하다.

이 업계 관계자는 "채굴로 획득한 암호화폐를 재고자산으로 처리할지, 무형자산으로 처리할지에 따라 최초 원가 인정 여부에 상당한 논쟁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이번 결정으로 암호화폐가 무형자산으로 분류될 경우, 암호화폐 파생상품과 같은 금융 상품은 만들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이는 무형자산을 기반으로 하는 파생상품이 상대방에게 계약의무를 부과하지 않아 안정성과 신뢰성 문제가 발생할 여지가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파생상품을 만든다고 해도 리스크가 매우 높다"며 "2차 파생상품 전략이 매우 힘들어 글로벌 투자은행(IB, Investment Bank) 관심이 떨어질 것이다"고 말했다.

명확해진 과세기준, 소득세로 이어지나

업계 일각에서는 암호화폐 회계 기준이 제시된 만큼 이를 계기로 과세 기준이 명확해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실제 정부는 부가세가 아닌 소득세 적용을 고려 중으로 알려졌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기업에는 암호화폐 보유에 따른 법인세를 부과할 수 있으며, 개인의 경우 암호화폐 거래로 인한 소득에 세금을 매길 수 있다"며 "내년 세법 개정안에 암호화폐 소득세를 반영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다만 현재 국내 소득법상 양도소득세 과세대상은 유형자산에 해당한다. 부동산과 주식, 특정 파생상품 등 기타자산 등이 과세대상이다. 그 동안 암호화폐는 양도소득세를 물지 않았다. 때문에 이번 IFRS 유권해석으로 향후 소득세법 개정에도 적잖은 영향을 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업계 한 관계자는 "이론상 소득세 부과는 가능해 보인다"며 "다만 암호화폐간 거래는 확인이 어려워 과세가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현금 거래시에는 은행을 통해야 하기 때문에 혹시라도 큰 금액이 움직일 경우 이상거래로 판단돼 양도차액이 많은 이들을 상대로 집중적으로 과세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