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 없는 SW공급사에 수요자 갑질하기 딱 좋은 토양
한달에 10건 이상, 연 150여건 불공정 사례 발생
SW산업진흥법 개정하면 웬만한 문제 한꺼번에 개선

소프트웨어(SW) 산업 성장을 막는 불공정 관행을 단번에 해소할 ‘SW산업진흥법 개정안’의 조속한 국회 통과가 촉구됐다.

SW 관련 산학연 관계자들은 24일 국회의사당 의원회관에서 ‘SW사업 페어플레이(Fair Play)를 통한 성장방안 모색 토론회’에서 불공정 계약부터 갑질까지 해묵은 문제점을 성토했다. 참석자들은 지난해부터 국회 계류 중인 SW산업진흥법만 통과하면 모두는 아니나 상당수의 문제를 일시에 해결할 수 있다며 조속한 법 통과를 요청했다.

이날 토론회는 고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성일종 자유한국당 의원이 SW 업계 현안 해결을 위해 마련한 자리로 한국SW산업협회가 주관했다. 업계, 학계, 연구계는 물론 정치인까지 그간 SW산업을 짓누른 그릇된 관행에 대한 비판을 쏟아냈다.

토론회 참여 인사. (왼쪽 6번째부터) 오재인 단국대 경영학부 교수와 성일종 자유한국당 의원, 고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 / 한국SW산업협회 제공
토론회 참여 인사. (왼쪽 6번째부터) 오재인 단국대 경영학부 교수와 성일종 자유한국당 의원, 고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 / 한국SW산업협회 제공
이날 발제를 맡은 신영수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SW 업계가 중요도에 비해 성장에 어려움을 겪는 핵심 이유에는 불공정 계약에 있다"고 강조했다.

신 교수는 "우수한 인력이 들어와 양질의 교육을 받고 산업 현장 적재적소에 투입돼 이익을 낳는 선순환 구조가 이뤄져야 하는데 여러 불공정 관행으로 동맥경화가 생겼다"면서 "한국 SW 산업이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높이는 데에도 걸림돌이 된다"고 지적했다.

SW 시장에서의 계약은 계약자 간 교섭력 격차가 크다는 평가를 받는다. SW 판매 업체는 주로 규모가 작은 편이다. SW 구입 업체는 공공기관과 금융사 등 규모가 큰 곳이다. 이렇다 보니 여러 갑질이 용이한 환경이다. 30대 70, 심하면 20대 80까지 이익 배분이 극단적인 경우도 있다.

대표적인 갑질 사례는 ▲인력관리(특정 인력만을 요구하는 행태) ▲일방적인 과업 범위 해석 ▲계약서 외 추가로 발생한 시간과 비용 외면 ▲일방적인 계약 해지 등이다.

성일종 의원은 SW 시장의 큰손인 금융권을 비판했다. 공공기관이 공정거래법 등 다수 규제로 갑질 문제를 해결했지만 금융권은 민간 영역에서 규제 없이 갑질을 지속했다는 설명이다. 성 의원은 "은행과 증권, 보험사 등 금융권이 SW 구매 과정 중에 갑질을 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SW 업계 불공정 사례가 한 달에만 10여 건 이상 들린다. 연평균 150건 넘게 문제가 발생하기에 이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토론회 진행 모습. / 김평화 기자
토론회 진행 모습. / 김평화 기자
금융사보다 금융사의 IT 자회사가 문제의 핵심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업계 대표로 토론에 참여한 조준희 유라클 대표는 "SW 회사가 실제로 계약을 하는 곳은 은행이 아닌 은행의 SI(시스템 통합) 자회사"라며 "은행권 3분의 2가 IT 자회사를 통해 SW 업체와 계약한다"고 지적했다.

조 대표는 이어 "차라리 은행과 직접 SW 계약을 맺으면 상황이 나은 편"이라며 "은행의 IT 자회사와 계약하면 같은 SW 업종끼리의 싸움이 되기에 갑질 강도가 더 높다"고 설명했다.

이에 성일종 의원은 "금융권이 IT 자회사를 두지 말아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도 제시했지만 금융위원회는 구조 자체의 문제는 아니라고 설명했다.

이한진 금융위원회 전자금융과장은 "금융지주회사법이 나오면서 금융지주가 별도로 IT 자회사를 둘 수 있게 됐다"면서 "(이는) 금융권이 대량의 데이터를 처리, 관리해야 하는 업계 특성상 별도로 회사를 두는 것이 효율적인 탓에 만들어진 법"이라고 설명했다.

채효근 한국IT서비스산업협회 전무도 "중간에 자회사가 있어 생기는 문제이기보다는 SW 업계의 관행 자체가 핵심 문제"라면서 "여러 가지의 계약 문서가 난무하다보니 계약서 해석 중에 갑질이 생긴다. 특정 계약 문서만을 인정하면 모호한 해석에서 발생하는 문제가 해소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신영수 교수가 내놓은 대안도 SW 업계의 표준계약서 정착이다. 표준계약서만 체결해도 계약 이행 과정에서 벌어지는 여러 불공정 거래를 막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모두가 한목소리로 내놓은 불공정 관행 해결 대안으로 ‘SW산업진흥법’ 개정안 통과를 제시했다. 지난해부터 국회에서 계류 중인 SW산업진흥법만 통과되면 지금까지 제시된 다수의 문제가 일시에 해소된다는 설명이다.

박준국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소프트웨어산업과장은 "국가경쟁력 제고를 위해 AI나 블록체인 등의 기술이 언급되지만 이 기술이 실제 도입되도록 돕는 곳이 SW 산업"이라며 "SW 산업 뿌리가 잘 조성토록 SW산업진흥법이 통과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근본적인 개선을 위해 SW산업진흥법을 처리해야 한다"고 거들었다.

토론 좌장을 맡은 오재인 단국대 경영학부 교수는 "우리나라가 세계 11위의 경제 대국이지만 국가경쟁력은 하위에 있다"면서 "여러 후진적인 관행을 개선하기 위해서라도 법·제도적인 지원이 필요할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