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슬라·폭스바겐AG 등 멀티 소싱 전략으로 선회
자동차 업계 "전기차 배터리도 원가 경쟁 필요"

전기차 상품성을 배터리 브랜드로 설명하는 시대가 저문다. 전동화(electrification)가 미래 자동차 대세로 굳어지며 자동차 제조사들의 구매력도 한층 강해졌다. 배터리 분야에서 여러 공급사와 계약해 원가를 줄이는 ‘멀티소싱' 전략이 현실화되는 모습이다.

27일 업계에 따르면 자동차 제조사의 ‘멀티소싱’ 전략이 글로벌 시장으로 확산된다. 테슬라가 파나소닉과 독점계약을 깨겠다고 선언한 가운데 LG화학이 유력한 추가 공급사로 거론된다.

폭스바겐그룹은 이례적으로 중국 대형 배터리사 CATL외에도 LG화학, SK이노베이션, 삼성 SDI 등 국내 유력 배터리 제조사 3사를 모두 품었다. 메르세데스-벤츠의 모기업 다임러 역시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를 동시에 납품 받는다.

 쉐보레 배터리전기차 볼트 EV. LG화학 배터리를 탑재했다. / GM 제공
쉐보레 배터리전기차 볼트 EV. LG화학 배터리를 탑재했다. / GM 제공
자동차 업체들이 직접 배터리 제조에 뛰어드는 사례도 늘어난다. 폭스바겐은 전기차용 차세대 배터리 셀 개발을 마치고 독일 잘츠기터에서 시험 생산에 돌입했다. 스위스 배터리 팩커 노스볼트와 전기차 배터리 생산을 위한 합작사 설립도 발표했다. 2023년부터 배터리를 생산할 것으로 알려졌다.

폭스바겐그룹은 전통 내연기관 자동차 제조사에서 전기차 및 배터리 제조사로의 변신을 강조한다.

미하엘 요스트 폭스바겐그룹 제품 전략 총괄은 최근 2019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서 기자와 만나 "우리가 필요한 수량의 배터리를 공급할 수 있는 파트너사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소수의 업체에 의존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자동차 제조사는 여러 배터리 제조사가 경쟁을 통해 비용을 낮추고 제조기술을 높이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요헨 헤르만 다임러 AG CASE & e드라이브 개발 부사장 역시 "이전부터 다양한 배터리 공급선을 확보하는 전략을 취했다"며 "업체 한두곳만 선별해 파트너십을 맺는 것은 지양한다. 공급선 다변화는 기술 발전과 원가 경쟁에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2020년 출시 예정인 폭스바겐 전기차 ID.3. 대량생산을 염두해 전기차 전용 플랫폼 MEB를 적용했다. / 안효문 기자
2020년 출시 예정인 폭스바겐 전기차 ID.3. 대량생산을 염두해 전기차 전용 플랫폼 MEB를 적용했다. / 안효문 기자
자동차 업체들이 ‘멀티소싱'에 힘을 실을 수 있는 것은 그만큼 전기차 시장 전망이 밝아서다. 전기차 보급 초기엔 다품종 소량 방식으로 접근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 업계 설명이다. 하나의 프로젝트에 소수의 배터리 제조사가 참여, 일괄공급하는 방식이 주를 이뤘던 것.

그러나, 전기차가 일반화되면 내연기관차와 마찬가지로 배터리의 규모의 경제를 기대할 수 있게 된다. 이 과정에서 다수의 배터리 제조사들이 비용 경쟁하는 구조로 전환될 것으로 업계 관계자들은 전망한다.

전기차·배터리 시장조사기업 SNE리서치에 따르면 글로벌 자동차 시장에서 배터리전기차와 하이브리드 등 전동화차량의 시장 점유율은 2018년 5%에서 2025년 21%를 넘어설 전망이다.

이에 따라 2025년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수주금액은 1600억달러(190조원)까지 성장, 반도체 시장 규모를 넘어설 것으로 추산된다.

배터리 업계 역시 자동차 제조사들의 멀티소싱 전략이 이미 현실화됐다고 본다. 한국 배터리 업계 한 관계자는 "폭스바겐이 전기차 전용 플랫폼 MEB를 선보이면서, 하나의 플랫폼으로 다수의 전기차를 생산하는 시대를 열었다"고 밝혔다.

이어 "기업이 공개한 스펙과 물량을 맞출 수 있는 배터리 제조사라면 누구나 참여 가능한 구조다. 특정 브랜드에 대한 독점적 지위를 누리는 배터리 제조사는 점차 사라질 것이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