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같은 원천기술이지만 소외받는 양자정보통신

입력 2019.09.27 18:23

4차 산업혁명시대 핵심 기반 기술로 꼽히는 양자정보통신이 기구한 운명을 겪는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주도하는 양자정보통신 기술개발 사업은 번번이 무산됐고, 최근 기업과 지자체가 직접 나서 사업을 추진 중이지만 정부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한국은 원천기술 확보가 우선이라는 명분에 차세대 핵심기술 경쟁력 확보에 나섰지만, 소재와 부품과 달리 양자통신 분야는 뒷걸음질 치는 실정이다.

양자정보통신은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물리량의 최소단위인 ‘양자’의 물리학적 특성을 정보통신기술(ICT)에 적용해 데이터의 초고속처리, 정밀 수집, 안전 전송이 가능한 차세대 기술을 뜻한다. 5G 시대 신성장 동력이자 경제, 산업 패러다임을 바꿀 핵심 ICT 기술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과기정통부에 따르면 양자 산업 시장 규모는 2035년 400조원이다. 현재 반도체 시장 규모에 근접하는 수준이 될 전망이다.

미국, 유럽, 중국, 일본 등 경쟁국은 양자정보통신 주도권 확보를 위해 조단위 예산을 투입한다. 국가차원의 제도 개선에도 나선다. 반면 과기정통부가 추진한 기술개발 사업의 경우 2017년 R&D 예비타당성 조사에서 기획재정부로부터 퇴짜를 맞았다. 경제성이 낮다는 이유에서다. 2018년에는 R&D 예타 조사 접수마저 실패했다. 관련 분야 예산은 2018년 146억원, 2019년에는 260억원이었다.

6월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 회관에서 열린 국회 양자정보통신포럼 창립식 및 대담 모습. 왼쪽부터 박정호 SK텔레콤 사장·통역사·아서 허먼 허드슨 연구소 박사·이영상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 김성태 자유한국당 의원, 김명준 한국전자통신연구원장. / 이광영기자
이번에는 기업과 지자체가 직접 나섰다. 광주광역시는 SK텔레콤이 2013년 설립을 주도한 퀀텀정보통신연구조합 명의로 한국정보화진흥원(NIA)과 함께 양자정보통신 상용화 기술개발 플랫폼 구축을 추진한다. 인공지능(AI) 창업 단지 조성에 나선 광주광역시는 양자정보통신 기술 고도화 및 상용화를 원하는 SK텔레콤과 힘을 합쳤다. 2020년부터 2023년까지 총예산 400억원(국비 290억원·시비 110억원)을 투입할 계획이다.

그런데 이들이 예산 400억원 중 290억원을 국비로 충당하고, 110억원을 시 예산으로 끌어다쓰려는 사연이 기구하다. 예타 통과의 부담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다. 예타는 총사업비 500억원 이상, 국가 재정지원 규모 300억원 이상인 사업의 취지와 경제성 등을 판단하는 제도다. 예산권을 쥔 기재부가 실시한다. 이보다 적은 예산 규모는 과기정통부 연구개발투자심의국에서 지원을 한다.

하지만 과기정통부는 이를 위한 예산 편성 시점을 차일피일 미룬다. 최근 소재·부품·장비 등 R&D가 우선이니 기다려달라는 답변만 반복한다. 정부는 소재·부품·장비의 국산화 연구개발(R&D)을 위한 예산으로 2020년부터 2022년까지 3년간 5조원을 투자한다. 일본 수출규제 대응에 대규모 투자를 집중하면서 양자정보통신이 상대적으로 소외받은 셈이다.

과기정통부는 원천기술 확보를 위한 R&D 투자 완료 후 광주시의 사업을 지원하겠다는 입장이다. 연내 수립할 양자정보통신 종합계획에 이를 반영한다. 하지만 종합계획이 연내 수립될 가능성은 낮다. 소재·부품·장비 R&D에 쏠린 관심 영향으로 종합계획 수립 역시 2020년을 넘길 것으로 보인다. 실제 양자정보통신 기술개발 플랫폼 구축은 2021년은 돼야 이뤄진다. 광주시가 이 사업의 추진동력을 그대로 이어가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국회, 정부, 산업계, 학계는 6월 17일 양자정보통신 분야 글로벌 경쟁력 확보를 위해 국회 양자정보통신포럼을 만들고 머리를 맞댔다. 당시 박정호 SK텔레콤 사장은 2017년 기준 최고 기술 보유국인 미국과 비교할 때 한국은 4년쯤 뒤쳐졌다. 유영민 전 과기정통부장관도 양자분야 정부 예산 규모가 미미하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포럼을 창립한지 100일이나 됐지만, 기대했던 관심과 지원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미래 글로벌 양자 생태계를 주도하겠다고 다짐했던 수많은 목소리는 온데간데 없다.

최기영 과기정통부 장관은 2일 인사청문회에서 양자정보통신 기술개발을 위한 예타를 재추진해 미래 산업에 대한 투자 및 대비를 하겠다고 약속했다. 약속이 헛되지 않으려면 말뿐이 아닌 정책과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 급한 분야 원천기술 확보라는 명분에 치우쳐 미래 산업 핵심기술 개발에 소홀히 하는 우(愚)를 범하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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