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장까지 나서 인재 영입에 적극적인 LG그룹이 정작 연구원을 비롯한 직원들의 적잖은 이탈로 골머리를 앓는다. 동종업계와 비교해 낮은 급여와 성과급, 그리고 임원과의 큰 격차 등 상대적 박탈감이 주 요인으로 꼽힌다. 이 글로벌 기업이 한 단계 더 도약할 출발점은 이 문제의 해결을 포함한 인사관리 혁신이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핵심 인재 모시기 여념 없는 총수

LG그룹은 인공지능(AI),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신소재 재료, 자동차 부품, 바이오 등 차세대 먹거리 분야에서 외부 인재 영입에 적극적이다. 구광모 회장이 직접 뛴다.

LG 테크 컨퍼런스가 대표적이다. 우수 연구개발(R&D) 인력을 유치하기 위해 최고경영진을 비롯한 LG 임직원이 직접 LG 기술 혁신과 비전을 설명하는 자리다. 구 회장은 올해 초 서울 마곡에 위치한 LG사이언스파크에서 열린 행사에 직접 참가해 참석자들과 일일이 인사를 나누고 토론한 것으로 알려졌다.

4월에는 LG전자, LG디스플레이, LG이노텍, LG화학, LG하우시스, LG유플러스, LG CNS 등 7개 계열사 최고경영진과 함께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LG 테크 컨퍼런스에도 참석헀다.

LG는 특히 9월부터 통합 채용포털 사이트 LG커리어스에서 10개 계열사 채용공고를 내고 하반기 대졸 신입 채용을 진행했다. LG는 지원자에게 더 많은 입사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최대 3개 회사까지 중복 지원을 허용한다.


 여의도 LG 트윈타워 전경 . / 조선DB
여의도 LG 트윈타워 전경 . / 조선DB
임원 대우는 최고…직원 대우는?

이렇게 외부 인재 영입에 적극적인 가운데 정작 연구원을 비롯한 기존 직원들은 하나둘 LG를 떠난다. 기업 명성에 걸맞지 않는 대우와 상대적 박탈감이 주 요인으로 분석됐다. LG 임원 대우는 업계에서 가장 좋은 편인 반면에 일반 직원 대우는 박하다.

기업평가사이트 CEO스코어에 따르면 LG그룹사 14곳의 미등기임원 779명의 평균 연간 급여액은 4억1800만원이다. 30대그룹 중 미등기임원 1인당 평균급여가 4억원을 초과하는 곳은 LG 뿐이다.

지주사 LG 미등기임원 평균 급여액이 8억8400만원으로 가장 높다. LG디스플레이 미등기임원은 평균 4억7500만원으로 2위다. LG화학 미등기임원 평균급여액은 4억6700만원, LG유플러스 4억5400만원, LG전자 4억4500만원, LG생활건강 4억3000만원순이다.

지난해 LG 14개 계열사 직원 평균 급여액은 8250만원이다. 30대그룹 중 10번째다. 미등기임원 급여수준 1위와 대조된다.

어느 직장에나 상사에 대한 불만이 있기 마련이다. 잡코리아가 지난 5월 직장인 1322명을 대상으로 이직을 결심한 이유를 설문조사해 발표했다. ▲연봉 불만(47.0%) ▲상사에 대한 불만 또는 불화(28.0%) ▲복지제도 불만(27.0%) 순이다. 상사에 대한 불만은 특히 30대 직장인에서 높았다. LG처럼 임원과 직원 간의 평균급여 차이가 큰 회사에서는 이 불만이 더욱 커질 가능성이 높다.

계열사 가릴 것 없이 동종업계보다 낮은 대우…"대리운전이라도 할랍니다"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이 소송전을 벌인다. 인력 유출이 발단이 됐다. LG화학 주장대로 SK이노베이션이 그간 무리하게 사람을 빼간 정황도 없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그 뿌리에 양사의 대우 차이도 있다.

두 회사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두 회사 직원 급여 차이는 약 1.5배"라며 "성과급 차이까지 고려하면 격차는 더욱 커진다"고 설명했다. LG화학 전지부문 성과급은 기본급의 100~200%로 알려졌다. SK이노베이션은 올 초 기본급의 850%, 지난해에는 1000%를 지급했다.

LG화학 직원 대우가 경쟁사보다 약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인력이 경쟁사보다 많다. 그간 막대한 설비 투자를 지속했다. 회사가 직원 연봉을 올려주려 해도 쉽지 않은 형편이다. 그렇다고 직장만 옮기면 훨씬 더 좋은 대우를 받을 수 있는데 회사가 연구원들에게 충성만 요구할 수 없는 노릇이다. 경쟁사 인력 유출이 꼭 경쟁사 탓만은 아니라는 얘기다.

비난 LG화학만의 문제가 아니다. 다른 핵심 계열사에서 두루 나타나는 현상이다.

LG전자의 경우 2018년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직원 평균 연봉은 8300만원이다. 경쟁사인 삼성전자가 1억1900만원을 받는 것과 비교하면 낮다.

LG유플러스 직원들도 경쟁사에 비해 연봉이 적다. 금융감독원에 제출한 상반기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6월 30일까지 SK텔레콤 직원이 받은 급여액은 1인당 평균 7300만원이다. LG유플러스는 4200만원이다. SK텔레콤이 LG유플러스 직원보다 173%의 연봉을 더 받는 셈이다.

IT서비스 3사 중에서도 LG CNS 직원의 연봉이 가장 낮다. 각 사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말일 기준 직원 평균 연봉은 삼성SDS가 9800만원을 기록한 가운데, LG CNS는 8000만원으로 나타났다. 이는 SK C&C 평균 연봉 8700만원과 비교해도 가장 낮다.

LG 직원들의 연봉에 대한 불만은 익명 앱 블라인드의 단골 소재다. 대리운전, 배달 등 아르바이트 경험을 공유하는 글이 곧잘 올라온다. 겸직을 허용해달라는 성토도 있다. LG 계열사에서 최근 퇴사한 한 직원은 "내부에서는 낮은 연봉을 이유로 불만이 높아 이직을 하거나 부업거리를 찾는 경우가 있다"고 전했다.

LG전자 한 관계자는 "블라인드는 워낙 익명성이 강하기 때문에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있다"며 "블라인드 글을 100% 믿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연봉을 이유로 퇴사한 직원이 얼마나 있는지에 대한 정확한 수치가 없다"고 설명했다.

블라인드는 회사 뒷담화가 난무하는 곳이다. 온갖 소설과 비방이 판친다. 그런데 LG 블라인드에는 자조적인 불평불만이 많은 편이다. 회사에 대한 애증 교차와 좌절감의 반영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LG전자 지속경영가능보고서. / LG전자 지속경영가능보고서 갈무리
LG전자 지속경영가능보고서. / LG전자 지속경영가능보고서 갈무리
핵심 인력 이탈과 높아진 이직률 위험 경고 신호

LG전자 사무직 이직률은 2018년 8%대에 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회사의 미래먹거리로 각광받는 전장부품사업에서는 10%가 넘는 인력이 이탈한 것으로 전해진다.

LG전자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이직한 인력은 30세 미만이 4827명이다. 전년도 4835명보다 근소하게 줄어들었지만 허리인 30~50세 직원은 같은 기간 5455명에서 5691명으로 늘어났다. 실제 일을 할 인력이 퇴사했다는 의미로 풀이할 수 있다.

LG디스플레이도 이직률이 2018년 11.7%다. 이는 2016년과 2017년 3%대를 기록한 것과 비교해 크게 높아졌다. LG화학 이탈률도 2018년 4.1%에 이른다. 2015년 2.7%에서 2016년 3.1%, 2017년부터 4%대를 넘어섰다.

전자, 화학, 디스플레이 등 LG 제조업체의 이직률 상승은 그냥 지나칠 문제가 아니다. 특정 기업을 넘어 핵심 국가 산업에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LG 연구원들을 중국 기업들이 노린다. 사실상 영입 1순위다. 중국업체들은 LG 연구원들이 우수한 역량에도 불구하고 삼성 등에 비해 대우가 낮아 영입 유혹에 더 쉽게 넘어갈 수 있다고 판단한다고 한다. 대우가 최상급인 삼성 연구원들도 중국 업체의 훨씬 더 높은 연봉 제시에 흔들리는 마당이다. 삼성은 인사관리에서 자사 연구원의 중국업체 이직을 늘 경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연구개발 역량이 갈수록 높아진 중국업체들이다. 당장은 한국 연구원을 데려오려 하지만 머잖아 영입이 줄어들 가능성도 있다. ‘이왕 옮길 거라면 하루라도 빨리 이직하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한국 연구원들이 적지 않다. LG 제조 계열사의 최근 높아진 이직률도 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물론 직장인들이 연봉이나 복지만으로 이직을 결정하지 않는다. 조직내 분위기와 의사소통구조, 미래 비전 등 다양한 요인이 작용한다. 연봉 외 요인을 개선하면 인재를 조금이나마 더 붙잡아 둘 수 있다.

구광모 회장 취임 이후 젊어지려 애를 쓰는 LG다. 이참에 기업문화를 더 혁신할 기회다. 문제는 이러한 혁신 노력도 경쟁사보다 낮은 연봉과 대우라는 큰 장벽에 결국 부닥칠 수 밖에 없다는 게 LG가 당면한 고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