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양국이 11일(이하 현지시각) 스위스 제네바에서 일본측의 소재수출 제한조치를 다루는 WTO 분쟁 양자협의에 나선다.

일본은 7월 1일 반도체 혹은 디스플레이 소재 ‘플루오린 폴리이미드·포토레지스트·불화수소’ 수출 포괄허가를 개별허가로 바꾸는 수출제한 조치를 내렸다. 우리 정부는 9월 11일 WTO에 이를 제소(양자협의 요청)했다.

WTO 일본 제소를 설명하는 유명희 산업부 통상교섭본부장. / 산업부 제공
WTO 일본 제소를 설명하는 유명희 산업부 통상교섭본부장. / 산업부 제공
이번 양자협의는 WTO 분쟁해결양해규정 DSU 제 4.3조에 따른 것이다. 양자협의 요청 접수 후 30일 이내 혹은 양국이 합의한 기간 내에 양자협의를 시작해야 한다는 규정이다.

일본측이 9월 20일 제안을 수락한 후, 양국은 외교 채널을 통해 일시와 장소를 논의했다. 이후 11일 양국 국장급을 수석대표로 WTO 양자협의를 진행하기로 했다.

앞서 정부는 세계 보호무역주의 확산과 통상규범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2018년 통상교섭본부 조직과 인력을 늘렸다. 이 때 산업통상자원부 신통상질서전략실이 만들어졌다. 이번 양자협의에서 우리측 수석대표로 신통상질서협력관이 나선다.

우리 정부, 日측 소재수출 제한 부당함 WTO 협정 근거로 반박

산업통상자원부는 WTO 협정 근거를 들어 일본 소재수출 제한이 부당하다고 반박했다. WTO 상품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 제1·10·11조와 무역관련 투자조치에 관현 협정(TRIMs) 제2조, 무역관련 지식재산권에 관한 협정(TRIPS) 제3·4·28조가 주요 근거다.

GATT 제1조에는 원산지 관계 없이 상품을 동등하게 대우하는 ‘최혜국대우원칙’이 담긴다. 이 혜택은 WTO 회원국 모두에게 즉시 부여되며 조건부로 다룰 수 없다. 일본측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 수출 안전 국가에서 제외한 것이 이 협정을 위반한다는 지적이다.

GATT 제10조는 WTO 회원국이 무역 규칙을 일관·공정·합리적으로 시행해야 한다는 의무를 다룬다. 이 협정에 따르면, 일본은 한국에 적용한 수출 개별허가를 다른 나라에도 일관되게 적용해야 한다.

GATT 제11조는 수출 수량 제한 금지를 의무화한다. WTO 회원국은 수출을 무역제한 무기로 쓰는 것을 막기 위해 수출 수량을 제한하는 것을 엄격히 금지한다. TRIMs 제2조도 유사한 내용을 다룬다. GATT 제11조, 수출 수량 제한 금지 의무를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협약이다.

TRIPS 위반 여지도 있다. WTO 회원국의 국민(제3조) 및 최혜국(제4조)의 지식재산권, 이익과 혜택 등을 불리하게 대우하면 안된다는 조항이다. 일본측의 소재수출 제한이 한국의 반도체·디스플레이 생산에 악영향을 준다는 점에서다.

분쟁 해결에 최소 1년…3년 이상 장기화 가능성 커

우리 정부는 일본 소재수출 규제가 부당하다는 근거를 들고 증명할 전망이다. 하지만, 문제가 해결되기까지는 최소 10개월, 장기화될 경우 3년 이상이 소요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한·일 양자합의가 이뤄질 경우 WTO 분쟁은 바로 합의·타결된다. 하지만, 일본이 합의에 나설 가능성은 극히 적다. 양국이 합의에 실패할 경우 한국은 분쟁을 다룰 ‘패널’ 설치를 요청할 수 있다. 패널은 양자협의 요청을 일본이 수락한 9월 20일 이후 60일 이내 설치할 수 있으나, 일본측은 이를 한차례 거부할 수 있다.

일본측이 패널 설치를 거부하더라도, 우리 정부가 두번째 요청하면 자동 설치된다. 이후 패널 구성, 위임사항 결정에 최소 35일이 소요된다.

패널은 분쟁 당사국·제3자국이 참여한 가운데 심리를 거쳐 분쟁 내용을 정리한 패널보고서를 제출한다. 여기까지 최소 3개월, 일반적으로 6개월, 최대 9개월이 소요된다. 패널보고서는 WTO 회원국이 회람 후 채택 여부를 결정한다. 채택 시 분쟁 패소국은 패널보고서의 권고·결정에 따른 이행계획을 보고해야 한다.

하지만, 패널보고서 회람 시 분쟁 당사국은 상소를 신청할 수 있다. 이 경우 상소보고서 제출, 채택 등 절차에 최소 180일 이상 소요된다.

패널절차가 신속히 이뤄지고 분쟁 당사국의 상소가 없을 경우 해결에는 최소 4개월이 걸린다. 하지만, 국제 무역분쟁이 늘면서 패널절차는 최소 1년 이상, 보통 2년쯤 소요된다. 상소 시에는 3년 이상 장기화될 가능성이 크다. 패널보고서가 채택되더라도 이행계획에 이견이 생길 경우 패널 절차를 다시 시작해야 한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우리 정부는 일본의 수출 제한조치의 조속한 해결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할 계획이다"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