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죽어서는 이름을, 살아서는 각종 흔적을 남긴다. 인터넷 접속 기록, 카드를 비롯한 금융 거래 목록, 위치 정보 등 사람이 남긴 수많은 흔적은 모여서 데이터가 된다.
기술이 발전하면서 이들 데이터를 수집·축적·분석해 가치 있는 정보를 추출할 수 있게 됐다. 2012년 세계 경제 포럼이 가장 주목할 기술로 꼽은‘빅 데이터(Big Data)’의 대두다.
예술 시장에서도 데이터의 중요성은 꾸준히 논의됐다. 1980년대 후반, 세계 예술 시장의 거래 데이터를 수집하기 ‘Artprice.com’과 ‘Artnet’이 설립됐다. 이 가운데 Artnet은 1985년 이후 세계 경매회사 1800여곳에서 이뤄진 경매 기록을 모두 수집해 고품질 데이터 콘텐츠를 제시한다.
한국에서도 문화체육관광부 주최, 예술경영지원센터 주관에 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 협력으로 2016년 1월 ‘한국 미술시장 정보시스템(K-ARTMARKET, www.k-artmarket.kr)’ 사이트가 마련됐다. 최근에는 뉴시스와 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가 함께 미술품 유통 가격정보 사이트 ‘K-Artprice(k-artprice.newsis.com)’ 사이트를 열었다. 모두 ‘예술 시장 거래 데이터를 기반으로 관련 콘텐츠를 제공한다’는 취지를 담는다.
블록체인 플랫폼이나 크라우드펀딩을 활용한 예술품 구매는 기존 거래를 답습했을 뿐 효과가 떨어지는 ‘과대포장’된 예술 시장 혁신이다. 진짜 혁신은 예술 시장 거래 데이터를 활용해야 만들 수 있다.
문화체육관광부를 비롯한 여러 기관이 예술 시장 데이터를 주요하게 활용해야 한다고 인정한 셈이다. 예술 시장 분석이 시급한 상황에서 늦게나마 데이터의 중요성이 인정받은 점은 아주 긍정적이다. 이 시도가 모여 충분한 데이터가 쌓이게 되면 빅데이터·머신러닝·인공지능 예술 시장 분석이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두 사이트 모두 ‘데이터 제공’이라는 원래 취지를 살리지 못해 아쉽다. 한국 미술시장 정보시스템은 경매 출품작에 대한 정보를 전혀 수집하지 않았다. 그저 경매회사 또는 갤러리 홈페이지의 링크를 제시할 뿐이다. 경매시장 동향을 자체 분석한 보고서를 제공하고는 있다. 하지만, 이 역시 시기·가격별 현황 표와 그림만 나열됐다. 데이터 분석이라고 하지만 ‘분석’이 빠진 셈이다.
K-Artprice는 작가 및 작품에 관한 데이터를 제공하고 있다. 이용자의 편의를 고려한 깔끔하고 직관적인 디자인 덕분에 이 플랫폼을 이용하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이곳은 2015년 이후의 작품 경매 자료만 제공한다. 가격별 순위도 모든 자료가 아닌 200위까지의 데이터만 제공, 데이터의 절대 수량이 너무 적다는 점에서 아쉽다.
현재 한국에 예술 시장 데이터를 제대로 수집하고 분석하는 기관 혹은 사이트는 없다. 수많은 예술 시장 데이터가 모이지 않고 여기저기 파편처럼 흩어져 있다. 데이터가 공개됐다고는 하지만, 규격이 제각각이고 정확성도 검증되지 않았기에 사실상 이용할 수 없다.
이를 개선하고자 필자는 최근 한국 예술 시장 데이터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사이트를 분석해 보니 한국 예술 시장의 데이터에 대한 문제점을 고스란히 캐낼 수 있었다. 양과 질 모두 문제다.
양적인 측면에서, 현재 한국 예술 시장 데이터는 터무니없이 부족하다. 관련 기관 및 단체들이 5년 이상 지속되는 경우가 드물어서다. 기관 및 단체가 이전 혹은 폐지되는 과정에서 축적된 데이터가 모두 유실된다. 자연스레 5년분 이상의 데이터를 보유한 기관 및 단체는 없다.
수집 기준이 없으니 질적 측면에서도 문제가 생긴다. 케이옥션 등 일부 사이트는 최소한의 기준을 만들어 데이터를 축적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머지는 대부분 기준 없이 사람이 손수 기입하는 고전적인 방식으로 데이터를 축적한다. 데이터 수집 역시 정확한 프로그래밍이 아닌, 사람의 타이핑에 의존한다.
데이터 수집·축적·분석이라는 본연의 목적보다 보기 좋은 UI 구축에 힘쓰는 모습, 보여주기에 치중하는 한국 예술 시장의 모습과 비슷하다. 게다가 요즘 세상에 프로그래밍이 아닌, 사람의 손으로 일일히 타이핑해 콘텐츠를 만드는 모습이라니. 현대판 노예 고용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한국 예술 시장 데이터화는 꼭 필요하다. 게다가 이 사업에는 국민의 세금·노동력이 사용된다. 그저 겉모습에 치중하기보다 콘텐츠를 얼마나 많이, 정확하게 만들 것인지 내실을 다지는데 집중해야 할 것이다.
※ 외부필자 원고는 IT조선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홍기훈 교수(PhD, CFA, FRM)는 홍익대학교 경영대 재무전공 교수로 재직 중이다.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 경제학 박사 취득 후 시드니공과대학교(University of Technology, Sydney) 경영대에서 근무했다. 금융위원회 테크자문단을 포함해 다양한 정책 자문 활동 중이다.
박지혜는 홍익대 경영대 재무전공 박사 과정을 밟는다. ‘미술관 전시여부와 작품가격의 관계’ 논문, 문화체육관광부와 (재)예술경영지원센터 주관 ‘미술품 담보대출 보증 지원 사업 계획[안] 연구’ 용역 진행 등 아트 파이낸스 전반을 연구한다. 우베멘토 아트파이낸스 팀장으로 아트펀드 포럼 진행, ‘THE ART FINANCE Weekly Report’를 발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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