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리더들이 앞다퉈 인공지능(AI) 경쟁력이 곧 국가 경쟁력임을 강조한다. 이에 맞춰 우리나라도 뒤늦게 AI 산업 육성에 박차를 가하는 모습이다. 하지만 아직은 여러 면에서 부족함이 많다는 주장이 나온다. AI가 어떤 기술이며 어디에 어떻게 써야 할지 적극적인 사회 논의가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AI 인재 육성에 사활을 거는 주요국과 달리 아직은 국내 교육에 허점이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SPRi)는 이같은 문제를 살피고 해결방안을 모색하고자 10일 서울 양재 엘타워에서 ‘인공지능이 주도하는 미래 한국: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주제의 콘퍼런스를 개최했다. AI 전문가로 꼽히는 김진형 KAIST 명예교수와 이성환 고려대 인공지능학과 주임교수가 각각 기조발제를 맡아 한국의 AI 현주소와 인재 양성 방안 등의 심도 있는 논의를 나눴다.

AI 기술을 설명하는 김진형 교수. / 김평화 기자
AI 기술을 설명하는 김진형 교수. / 김평화 기자
AI 산업 대내외적 어려움, ‘한국형 AI’로 극복해야

김진형 교수는 기조발제에서 다수가 기대하는 AI 기술과 현재 구현할 수 있는 AI 기술을 구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내가 처음 AI를 공부했던 70년대에도 스트롱(Strong) AI나 슈퍼 인텔리전스(Super Intelligence) 논의가 나왔다"면서 "상상 속의 요원한 이야기다. 지금의 AI와는 상관없다"고 분명하게 선을 그었다.

김 교수가 말하는 현시점에서의 AI는 ‘내로우(narrow) AI’다. 좁은 의미의 AI라는 뜻이다. 내로우 AI는 주어진 과제를 잘 처리하는 것에 특징이 있다. 그는 "AI는 특정 기술에만 쓰이는 도메인 지식이 아니다. 광범위한 영역에서 쓰이는 보편적 기술이다"고 말하며 "내로우 AI 특성을 잘 파악해 혁신의 도구, 생산성 향상에 힘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내로우 AI의 핵심으로 ▲알고리즘 ▲컴퓨팅 ▲빅데이터를 꼽았다. 해당 요소가 잘 구비돼야 내로우 AI 도입에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는 요지다.

하지만 그가 지적한 한국의 현실은 세 가지 요소에서 결함이 컸다. 먼저 알고리즘을 개발할 국내 AI 인력이 세계 인력의 1%밖에 지나지 않았다. 데이터 관리를 돕는 대규모 컴퓨팅 파워로 클라우드가 꼽히지만 국내 도입률이 저조했다. 절대적으로 부족한 데이터양과 관련 규제 혁신 법안(빅데이터3법)의 표류도 문제가 됐다.

무엇보다도 글로벌 AI 산업이 ‘국수주의(Nationalism)화’ 되는 것이 가장 큰 난관이라는 게 김 교수의 설명이다. 그는 "지금까지 AI 기술은 개방성이 강했다. 늦게 출발하더라도 선두주자가 해놓은 것을 응용하는 패스트 팔로워(Fast Follower) 전략이 통했다"면서 "(하지만) 이제는 중국과 미국이 AI 산업에서 패권 경쟁을 하면서 점차 폐쇄성이 짙어지는 특색을 보인다"고 설명했다.

미국과 중국 간 패권 경쟁이 심화하면서 개방성이 강했던 AI 산업에서도 국수주의가 등장했다. / SPRi 제공
미국과 중국 간 패권 경쟁이 심화하면서 개방성이 강했던 AI 산업에서도 국수주의가 등장했다. / SPRi 제공
이렇듯 대내외적인 난관이 많지만 이제라도 AI 혁신에 집중해야 한다는 게 김 교수의 주장이다. 그는 "AI 시대의 미래가 어떨지는 우리가 하기 나름이다"면서 "AI의 능력과 가치, 한계를 잘 이해해서 경쟁력 제고를 위해 혁신을 계속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가 요구한 AI 사업의 방향은 구체성이다. 우리나라가 왜 AI를 도입해야 하는지, 해결할 문제가 무엇이 있을지를 살펴 ‘한국형 AI’를 구체화해야 한다는 요지다. 그는 "노령화와 빈부격차 감소, 경제 성장 등 우리가 처한 문제를 먼저 떠올리고 거기에서 AI가 어떤 역할을 할지 사회적 논의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다만 희망적인 것은, 지금의 AI가 대단한 것 같지만 내로우 AI이기에 앞으로 올 AI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혁신할수록 혁신이 늘어나는 시대"라며 오세정 서울대 총장이 한 말인 "AI 한다고 성공할지는 모르지만 안 하면 망한다"는 말에 방점을 찍었다.

AI 인재 수급난을 설명하며 인재 양성의 필요성을 설명하는 이성환 교수. / 김평화 기자
AI 인재 수급난을 설명하며 인재 양성의 필요성을 설명하는 이성환 교수. / 김평화 기자
글로벌 수준의 AI 인재 육성 방안 필요

"AI 전문가는 지옥에서라도 데려오라는 말이 있습니다."

두 번째 기조발제를 맡은 이성환 교수는 AI 인재 확보가 전 업계의 핵심 화제가 된 상황을 짚었다. 점차 수요는 높아지지만 미국이나 중국과 달리 인력 상황이 좋지 않다 보니 연봉이 엄청나게 치솟는다는 게 이 교수의 설명이다. 그는 "머신러닝이나 딥러닝과 연관되기만 하면 그 순간 연봉이 50% 뛴다"며 그만큼 인력 수급에 어려움이 많은 상황을 지적했다.

AI 인재 모시기는 비단 우리나라 상황에만 국한하지 않는다. AI 산업에 박차를 가하는 국가라면 모두가 인재 수급과 양성에 관심을 쏟는다는 게 이 교수의 주장이다. 그는 "시가총액 50위권에 드는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등의 기업 대부분은 AI를 활용하는 기업"이라며 "세계가 AI 전략을 발표하면서 그중 핵심을 인력 양성에 두는 데에는 다 까닭이 있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에 따르면 다수 국가가 2017년 봄부터 각각 AI 전략을 발표하며 인재양성 방안도 내놨다. 일본과 중국이 2017년 초에 선제적으로 계획을 내놨다면 영국과 미국, 우리나라는 다음 해인 2018년에 해당 계획을 선보였다. 그밖에 캐나다부터 싱가포르, 프랑스, 독일 등 다수 국가도 이같은 흐름에 동참했다.

이 교수는 "미국과 중국, 영국, 일본, 프랑스 등 AI 산업에서 활약을 보이는 다섯 곳의 인재 양성 정책에는 공통점이 있었다"며 "가장 주요한 특징은 정책 일관성"이라고 강조했다. 한 가지 정책이 나오면 후속 정책이 지속해 나오면서 정책을 보완, 인력 양상을 구체화하는 방향으로 진행된다는 설명이다.

고급 인재 양성을 다양한 정책에서 강조하는 것도 공통 요소다. AI 관련 고급 인재 양성을 위해 대학의 역할을 강조하며 글로벌 수준의 석・박사 양성에 힘쓴다. 특히 산업계와 대학의 연계를 중시해 적재적소에 꼭 필요한 인재를 양성하는 모습이다.

초・중등 교육에서부터 데이터 사이언스나 과학(Science), 기술(Technology), 공학(Engineering), 수학(Mathematics)을 일컫는 STEM 교육을 도입하는 것도 주된 방향이다.

2017년부터 앞다퉈 AI 전략을 수립하는 다수 국가 모습. / SPRi 제공
2017년부터 앞다퉈 AI 전략을 수립하는 다수 국가 모습. / SPRi 제공
이에 비해 우리나라는 아직 부족함이 많다는 게 이 교수의 평가다. AI 산업 육성을 국가 과제로 내놓은 상태지만 시작이 늦다 보니 글로벌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요지다. 그는 "AI 연구원 수는 미국과 유럽 등 AI 기술 선도국뿐 아니라 이제 급부상 중인 중국에도 뒤지는 상황이다"며 "AI 분야에서 국제 권위가 있는 학자 수와 AI 피인용 건수도 상당히 낮아 양과 질적 차원에서 모두 인재가 부족하다"고 강조했다.

결국 인재 양성에 모든 해결이 있다. 이 교수는 "해외 주요국들이 앞다퉈 인재 양성에 총력을 기울이는 상황에서 우리나라도 체계적인 AI 인재 양성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해외 주요국들은 신속한 대응을 위해 거점 대학을 중심으로 고급 인재를 양성하고 확산하는 전략을 택한다. 우리나라도 거점 대학을 중심으로 선택과 집중에 힘써야 한다는 게 이 교수의 설명이다.

현장 맞춤형 교육도 필수다. 현장과 교육의 불일치를 최소화하는 해외 주요국들의 동향에 발맞출 필요가 있다. 글로벌 네트워킹 형성도 빠질 수 없다. 미국과 일본, 중국 등의 주요 나라의 대학・연구기관과 협력할 필요가 있다. 해외 인재들을 한국으로 불러들이는 방식도 포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