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이 우리의 삶을 깊숙이 파고든다. 예술 분야도 피해 갈 수 없다. AI 화가가 그림을 그리는 시대다. 저명한 인간 작가보다 AI 화가의 작품이 화제를 모으며 더 높은 가격에 거래되기도 한다. 누군가는 ‘AI ART’ 등장에 우려의 시선을 보낸다. 또 누군가는 인간의 창작 세계를 넓히는 데 AI가 도움을 준다고 말한다. AI 창작으로 예술 분야의 가치와 영향력이 커진다는 주장도 있다. 예술계에 부는 새로운 AI 바람을 [AI ART, 예술의 의미를 묻다] 시리즈로 인사들의 기고를 준비했다. [편집자주]


① 박지은 펄스나인 대표 ‘알파고가 휩쓴 지 2년, 미술계에도 AI 열풍 불까’

인공지능(AI)의 창작은 예술로 여겨질 수 있을까?

지난 9월 국내 최초로 AI와 사람이 협업한 작품이 공개됐다. 이메진AI와 극사실주의 화가인 두민의 협업 작품으로, AI가 예술가의 파트너로 그림의 반쪽을 완성했다는 시대적 가치와 함께 심미성도 갖춘 작품으로 회자되고 있다. 이 작품은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대중에게 선보였다. 펀딩을 시작한 지 3일 만에 2000만원이 넘는 투자금을 모았다. 전문가들은 AI가 예술로 자리매김하기까지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전망했으나 이 펀딩은 AI아트가 하나의 장르이자 매력적 투자 대상으로 대중에게 수용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2018년 10월 인공지능 AI 화가 ‘오비우스’가 그린 ‘에드몽 드 벨라미’라는 작품이 미국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예상 낙찰가 1만 달러보다 40배 높은 43만2000달러(약 5억1507만 원)에 낙찰되어 큰 화제를 모았다. 예상가를 뛰어넘는 낙찰가도 화제였지만, AI의 예술성에 대한 다양한 평가가 엇갈리면서 더욱 화제를 낳았다. 아직은 AI가 인간의 표현을 옮기는 물감이자 상상력을 증강하는 매개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1973년 예일대 교수이자 명성 있는 추상화 작가였던 헤럴드 코엔은 창작자의 동료로 AI 소프트웨어 ‘아론’을 개발했다. 그때의 ‘아론’은 현대의 AI와는 차이가 있지만, 그 시대 AI의 예술적 잠재력을 보여주었다. 때는 초기 AI 연구의 1차 황금기로, 창작에 있어 인간과 기계 사이의 상호작용을 보여준 사례로 많은 관심을 받았다. 아론이 만든 디지털 아트웍은 선, 형태, 색을 인지한 고유한 창작물이었다. 아론의 버전이 진화하면서 독창적인 색으로 물감을 섞는 등 그 시대의 통념을 넘어 고도화됐다. 코헨은 아론이 도구를 넘어 코헨 자신의 한계를 넘을 수 있게 만드는 예술적 파트너임을 강조했다.

아론은 시각 정보를 분해하고 재조합할 수 있도록 프로그래밍 됐고 작업마다 고유한 창작물을 만들어냈다. 1985년 일본에서 열린 전시회에서 아론은 7000점이 넘는 대량의 작품을 선보였다. 작가가 기계라는 것을 알지 못한 많은 관객은 그림에 감동하고 칭찬해 마지않았다. 그러나 작가가 기계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그가 그린 그림을 예술로 받아들일 것인지에 대한 큰 논란이 일었다. 코헨의 개입 없이는 발전하지 못했고 버전에 따라 표현 내용이 한정적이었기 때문이다.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이 사건을 보면 사람의 ‘놀라움’, ‘감동’, 그리고 ‘예술’은 엄연히 서로 다른 ‘사회적’ 가치라고 할 수 있겠다.

AI 화가(이메진AI)와 두민 작가가 협업해 완성한 독도 그림. / 펄스나인 제공
AI 화가(이메진AI)와 두민 작가가 협업해 완성한 독도 그림. / 펄스나인 제공
예술의 비평과 해석에서 작품에 내재한 의미는 예술적 가치를 좌우한다. 작품의 의미는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스티븐 냅과 윌터 벤 마이클스는 예술가의 의도는 단 하나의 해석이며 절대적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의 논문인 ‘이론에 반대하여(Against theory)’는 문학계의 신실용주의적 입장에서 작가의 의도 외의 다양한 해석을 부정한다. 그들은 해변을 걷다 발견한 우연하고 아름다운 글귀가, 누군가 의도해서 만든 것이 아니라 그저 파도에 의한 우연한 산물이라면, 시적 의미를 잃는다고 말했다.

반면 웜서트와 비어즐리의 이론에 따르면 작가의 의도는 거대한 퍼즐 속 하나의 조각이다. 자신의 작품에 대한 예술가의 해석은 수많은 여러 해석 중 하나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들에 따르면 파도가 우연히 만든 아름다운 글귀는 누군가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이를 발견한 사람의 ‘감동’에 의해 예술적 생명력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말하는 사람의 의도가 대화하는 사람과 관계가 있는 것처럼, 예술가의 작품과 그의 의도 역시 관람객과 관계가 있다. 관객이 없다면 작품과 예술가의 존재 의미가 사라지게 된다. 사람은 주변과 상호작용하며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기 위해 능동적으로 변화한다.

위에 언급한 아론은 예술적 한계가 존재하지만, 사물과 그의 구조에 대한 정보를 인지할 수 있었다. 동료인 코헨과 상호작용하면서 분석 능력을 고도화했고, 대상을 해체하여 재조합했다. 그래서 아론은 사람처럼 독창적인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혹자는 사람에게는 삶이 있지만 AI에게는 삶이나 영혼이 없다고 한다. 반대로 AI에게는 없는 ‘인간의 삶’이란 무엇일까 생각해보자. 일부 과학자들은 인간의 사랑이라는 감정 역시 호르몬과 뇌 신경계 간 화학 작용의 산물이라 말한다. 사람의 예술 활동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주변과 상호작용하며 정보를 축적하고 재해석해 표현한다. 철학도 예술도 나홀로 탄생하거나 존재하지 못한다. 상호작용의 산물이다. AI의 생성과 소멸, 상호작용은 인간의 삶과 닮았다. AI의 추론 구조는 인간을 모사해 창조됐기 때문이다.

AI 학습모델의 변화와 팽창은 입력 데이터로부터 오며, 이는 주변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이뤄진다. 사람 역시 주변과의 상호작용으로 성장하며,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듯 사람들이 모인 사회라는 시스템은 목표가 아니라 목표에 이르는 길을 모색하기 위함이다. 과거의 아론과 마찬가지로 현대에 이르러서도 어쩌면 기계의 예술 활동이 쉬이 인간 세상에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까닭이란, 단지 그와 상호작용할 사회적 관계망이 부족한 것만이 아닐지 생각해본다.

"사회생활을 하지 못하거나, 혼자로도 충분하기 때문에 사회가 필요 없는 사람은 짐승이거나 신이 틀림없다. - 아리스토텔레스"

현재의 AI 예술가가 신이나 짐승이 아니라면, 사회적 활동을 해야만 할 것이다.

대중의 직관에서 온 판단은 사회 분위기를 만들고 결국 사회를 변화시킨다. 이메진AI는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대중에게 시각예술과 미술가의 미래를 물었다. 20세기 최고의 주가를 올린 앤디 워홀에게 공장에서 찍어내듯 예술을 생산하는 것이 중요했던 것처럼, 다음 백 년의 미술은 어디로 가야 할지를, 우리는 곧 찾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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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은 대표는 그래픽 AI 전문기업 펄스나인을 설립했다. 동덕여자대학교 산업디자인 학사를 졸업한 후 CJ E&M과 네이버 해피빈재단 등 다수 기업의 마케팅 직무를 거쳤다. 서울과학종합대학원에서는 빅데이터 전공으로 MBA 경영 석사를 졸업했다. 동 대학원 빅데이터 MBA 외래교수로도 강의했다. 데이터 애널리스트, AI 리서처로 활동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