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노동시장에 대한 세계경제포럼(WEF)의 평가는 박하다. 2019년 평가 대상 141개국 중 51위다. 이전 평가보다 3단계 더 떨어졌다. 특히 정리해고비용(116위), 고용 해고 유연성(102위), 노사협력(130위)은 아예 낙제 수준이다.
정부가 경제를 걱정하는 목소리에는 아랑곳없이 주 52시간 근무제를 밀어붙였다. 중소기업 확대를 목전에 뒀다. "중소기업 다 죽는다"는 아우성을 뒤늦게 들었는지 이제 탄력근무제라는 이름으로 조금 후퇴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그러면서도 탄력근무제 보완을 위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처리하라며 국회를 압박한다.
노동 조건(최저임금, 주52시간제, 정년연장 등)이 경영이 수용하기 힘든 정도로 강화되면 기업가들의 결정은 너무 명확해진다. 사업을 줄이거나 접거나, 노동을 대체할 방법을 찾기 마련이다.
첫 단계가 해외 노동에 의존하는 방법이다. 자동차, 스마트폰, 가전 등의 대규모 공장들이 이미 국내 생산시설을 정리하고 해외로 이전했다. 대기업들은 이렇게 공장 이전이라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중소기업과 벤처기업은 대기업처럼 할 수 없으니 경쟁력에 치명을 입을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또 다른 현상은 무인화, 자동화가 예상보다 빠르고 넓게 진행된다는 것이다. 식음료 자동주문기, 커피 바리스타 로봇의 등장, 무인판매 편의점, 로봇으로 물류창고 무인화, 무인 검침 시스템, 심지어 골프장 그늘집 무인화까지 급진전한다.
결국 기업은 노동의존도를 낮추는 방안을 찾고 그러한 결정을 늘리고 있다. 이러니 기업의 일자리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정부가 일자리 지원 정책으로 총 취업자 수가 늘었다고 발표하지만 정작 왕성하게 일할 30~40대의 일자리는 줄어드는 결과를 초래한다. 과한 노동조건을 극복할, 개별기업의 생존 몸부림의 결과이다.
생산성을 초과하는 노동조건을 노동자들은 좋은 환경이라 여기며, 정부도 이런 환경을 만들어주기 위해 정책을 펼친다. 이는 역으로 기업에 열악한 경영환경을 만든다. 이 뻔한 사실을 정부는 모르는지, 아니면 알면서도 무시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다.
물류, 유통, 생산 등의 현장 노동 생산성을 이렇게 극복한다고 치자. 공무원을 포함한 사무 지식 노동자의 생산성을 높이는 건 어떻게 할 것인가. 지식노동은 쉽게 해외 이전할 수도 없고, 무인화도 쉽지 않은, 전혀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80년대 초 개인용 데스크톱 컴퓨터가 등장하면서 ‘사무자동화’라는 말이 쓰이기 시작했다. 이 영역을 이끈 대표적인 기업이 마이크로소프트다. 1990년 ‘MS 오피스’라는 패키지로 워드, 파워포인트, 엑셀 기능을 묶음으로 제공하면서 사무효율을 획기적으로 향상했다. 인터넷 검색 엔진, 이메일 등과 함께 오피스의 기능도 확대해 그야말로 사무근로자들에게 필요한 모든 기능을 제공했다.
반면에 우리는 그릇된 사무환경과 문화에 길들어 대가를 지불한 것만큼 활용을 제대로 하지 못하거나 잘못 사용하기 일쑤였다.
주52시간제 같은 경직적인 노동 조건을 극복하기 위해서도 정보기술(IT)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사무 지식 노동자의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 수십 년 동안 번번이 실패해 온 전철을 밟으며 토종기술에 매달리기보다 클라우드로의 전환을 포함하여 어떻게 빨리 경쟁적 업무환경을 갖추느냐에 집중해야 한다.
외국 기업들의 움직임을 보면 우리가 여기에 얼마나 뒤처지는지 알 수 있다. 시스코와 같은 기업은 일찍이 HD급의 영상 회의를 선도했다. 구글은 워드와 메일의 전달시스템의 비효율을 극복하기 위해 지슈트(G suite)로 즉시 협업과 공유가 가능하게 했다. 시트릭스 같은 회사는 업무에 필요한 모든 정보와 툴을 한 화면에서 제공하기 위한 워크스페이스를 준비했다.
드디어 IBM을 필두로 여러 회사가 반복되는 단순 업무를 자동화하기 시작했다. 지능형 로봇 소프트웨어로 ‘로봇 프로세스 자동화’(RPA:robotic process automation)에 돌입했다. 우리나라도 금융권을 필두로 도입을 시작했다.
현장 노동, 사무노동 할 것 없이 점점 노동을 기피하는 환경이 되어 간다는 현실이 답답하다. 경영자들은 힘들고 느리긴 해도 해외이전을 포함해 자본과 기술을 결합하여 탈 노동의 경쟁환경을 구축해 갈 수 있다. 그렇지만 일터를 잃은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찾기가 점점 더 힘들어진다.
정부는 복지성 일자리 지원에만 매달릴 것이 아니다. 기왕에 노동시장과 환경에 태풍을 일으켰으면 그 여파로 진행될 국가적 전환(트랜스포메이션)을 더욱 능동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수준을 넘어 오히려 새로운 기회를 만드는 전환점으로 삼아야 한다.
자원이라고는 사람과 기술뿐인 우리나라다. 결국 답도 여기에서 찾아야 한다. 정부는 IT 역량을 갖춘 인력을 대대적으로 키울 계획부터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
김홍진(워크이노베이션랩 대표)
KT 사장을 지낸 김홍진 대표는 40년간 IT분야에서 일한 IT 전문가다. '김홍진의 IT 확대경’ 칼럼으로 그의 독특한 시각과 IT 전문지식을 통해 세상읽기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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