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한승우 디지캡 대표 "미국 UHD 시장 진출 발판 삼아 세계 UHD 시장 향한다"

한국 소프트웨어 업계에 있어 해외 시장은 불모지다. 한국소프트웨어산업협회에 따르면 업계의 세계 시장 진출률은 1%에 지나지 않는다. 4차 산업혁명 핵심 분야로 꼽히지만 수출 중심으로 뻗어 나가는 타 산업군에 비해 아쉬운 성적표를 보이는 상태다.

이같은 업계 어려움을 딛고 미국 방송 시장의 심장부를 돌파한 곳이 있다. 보안·방송 솔루션 기업 ‘디지캡'이다. 디지캡은 한국 방송 시장에서 인정받은 기술력으로 미국 UHD 시장에 진출했다. 미국 방송 업계 1위와 2위인 ‘싱클레어브로드캐스트그룹(SBG)’과 ‘펄(pearl)TV’에 자사 통합 솔루션인 ‘디지캐스터(DigiCASTER)’를 납품한다.

한승우 디지캡 대표는 "미국 방송 업계가 UHD 기술을 적용하기 3~4년 전부터 준비했다. 기술 방향을 예측한 결과 선제적으로 진출해 미국 시장에서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IT조선이 한승우 대표를 만나 디지캡의 해외 진출 성공 배경과 향후 사업 방향을 자세히 들어봤다.

한승우 디지캡 대표. / 디지캡 제공
한승우 디지캡 대표. / 디지캡 제공
한국 방송 산업의 보안 조력자 ‘디지캡’

방송 시장은 유독 보수적인 산업 분야다. 단순한 기술 결함도 큰 방송 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에 웬만한 기술력 없이는 시장에 진출할 수 없다. HD에서 UHD로 넘어가듯 특정 방송 기술이 변화할 때 미리 선점하지 못하면 지형이 굳어져 후발주자로 성공하기 힘든 곳이기도 하다.

디지캡은 치열한 방송 업계에서 20년 가까이 꾸준한 기술력으로 신뢰를 쌓았다. 2000년 설립 이후 방송 시장에서 한국 최초로 제한수신시스템(CAS)과 디지털저작권관리기술(DRM) 등 주요 보안 솔루션을 제공하며 입지를 굳혔다. 총 108명인 직원 중 75% 이상이 연구 인력일 정도로 기술 개발에 매진한다.

CAS와 DRM을 이용하면 방송사 혹은 콘텐츠 유통사가 허가된 사용자에게만 콘텐츠를 제공할 수 있다. CAS가 허가된 가입자에게만 방송 수신이 가능하도록 처리하는 솔루션이라면, DRM은 디지털 콘텐츠 유통 전 과정에서 특정 콘텐츠를 안전하게 관리・보호하는 솔루션이다.

방송 업계 모두가 이같은 디지캡의 보안 솔루션에 몸을 맡긴다. KBS와 MBC, SBS 등의 지상파 방송사뿐 아니라 SK브로드밴드와 디라이브(DLIVE) 같은 IPTV와 케이블TV 등의 방송 업계 모두가 디지캡의 고객사다.

한승우 대표는 "휴대전화나 차량에서 보는 DMB 서비스에도 전부 CAS 솔루션이 들어가 있다. DMB를 고화질로 송출하면서 불법 재사용이나 유통을 막도록 돕는다"면서 "팔려나간 기기 수만큼 로열티를 받는 구조이기에 안정적인 수익 창출이 가능한 사업이다"고 말했다.

최근 DMB가 HD급 고화질로 선명해지면서 다시 수요가 높아진다는 게 한 대표의 설명이다. 지상파는 국회에서 재난 매체로 지정된 DMB의 수신도를 높이고자 음영 지역을 없애는 모습이다. 현대모비스와 엘지전자 전장사업부는 차량에도 DMB가 필수인 만큼 디지캡에 손을 내민 상태다.

2017년에 완공한 디지캡 마곡 사옥. / 디지캡 제공
2017년에 완공한 디지캡 마곡 사옥. / 디지캡 제공
미국 UHD 방송 장악 이면에는 ‘기술 예측'과 ‘한국 특수성' 있었다

한국은 2016년 6월 HD에서 UHD로의 방송 시스템 변화를 확정했다. UHD는 풀(Full) HD보다 4배에서 16배까지 선명한 영상을 제공한다. 당시 방송통신위원회에서 UHD 표준을 결정했고, 2021년까지 수도권과 광역시, 전국 시군구로 단계적인 확장이 진행 중인 상태다.

디지캡은 ‘ATSC 3.0’을 기반으로 지상파 3사 등 주요 방송사에 UHD 방송 솔루션을 공급한다. ATSC 3.0은 미국 디지털 TV의 새로운 방송 표준 방식이다. 미국식 방송 환경을 지향하는 한국에게는 필수적인 표준화 기술이기도 하다.

디지캡은 이 기술로 기본 TV 서비스뿐 아니라 서비스 가이드와 주문형 비디오, 모바일 연동 서비스 등 다양한 부가 서비스를 UHD급으로 제공한다. 평창 동계올림픽 당시 세계 최초로 ATSC 3.0 기반의 지상파 UHD 방송 솔루션을 상용화하기도 했다.

디지캡의 UHD 방송 솔루션 구조. / 디지캡 홈페이지 갈무리
디지캡의 UHD 방송 솔루션 구조. / 디지캡 홈페이지 갈무리
놀라운 점은 디지캡이 이 기술로 미국에서 인정을 받고 큰 수확을 얻었다는 점이다. 특정 기술 본토국에 입성해 깃발을 꽂은 흔치 않은 성공사례다.

미국은 현지의 모든 방송국 수를 합치면 5000여 개에 이른다. 한국이 48개인 것을 비교하면 100배나 큰 거대 시장이다. 디지캡은 그중에서도 현지 1위와 2위 방송사 그룹인 ‘싱클레어 브로드캐스트 그룹(SBG)’과 ‘펄TV’에 자사의 ‘디지캐스터(DigiCASTER)’를 납품하게 됐다.

디지캐스터는 ATSC 3.0 기반의 UHD 방송을 위해 필요한 다수 기술을 하드웨어가 아닌 소프트웨어로 처리하도록 돕는다. 단일 서버를 두던 다수 기능을 통합해 범용 서버에서 클라우드 상으로 방송사가 UHD 서비스를 제공하도록 한 통합(All-in-One) 제품이다.

한 대표는 "미국은 올해부터 UHD 본방송을 시작했다. 미국 1, 2위 방송 그룹에 디지캐스터를 납품해서 시범 방송을 하고 있다"며 "SBG와 펄TV가 경쟁을 펼치는 상황인 만큼 내년에도 UHD 도입 확장세가 계속될 전망이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한국 소프트웨어 업체가 기술을 개발해 미국 본방송에 납품하는 게 한국에서는 최초다"는 강조의 말도 덧붙였다.

흔치 않은 포트폴리오를 미국 본토에서 쌓게 된 디지캡의 배경은 무엇이었을까. 한 대표는 "디지캡은 미국에서 UHD 표준화 작업을 논할 때 이미 개발에 뛰어든 상태였다"며 "기술 발전 방향을 3~4년 전부터 예측한 것이 유효했다"고 소회를 밝혔다. 유럽형과 미국형 UHD 방송 기술이 나뉘던 때 미국형으로의 기술 방향을 예측하고 기술 개발에 뛰어든 것이 성공의 핵심 요인이 됐다.

미국보다 한발 빠르게 UHD 방송을 도입한 한국 방송 환경의 수혜도 입었다. UHD 본방송을 한국에서 상용화한 경력이 미국에 진출했을 때 긍정적인 작용을 했다. 한 대표는 "브라질 공영방송사인 ‘TV글로브’에도 유상 표본으로 납품을 진행한 상태다"며 "미국과 한국에서 주도적으로 UHD 방송 사업을 진행한 만큼 브라질에서도 좋은 결과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마곡 사옥 1층에서 전 직원과 함께한 (가운데) 한승우 대표. / 디지캡 제공
마곡 사옥 1층에서 전 직원과 함께한 (가운데) 한승우 대표. / 디지캡 제공
커넥티드카와 블록체인, 무선헤드셋까지…디지캡의 무한 도전

디지캡은 남다른 기술력으로 높은 성장세를 보인다. 2017년 80억원 수준이던 매출은 다음 해 180억원 규모로 증가했다. 2014년 코넥스에 상장 후 2018년에는 코스닥 이전 상장까지 마쳤다.

향후에도 다양한 사업을 진행해 중·장기적으로 안정적인 성장 기반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미국 시장의 성공적인 진출을 토대로 글로벌 기업으로의 발돋움도 내다본다.

디지캡은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플랫폼인 ‘옥수수(oksusu)’를 개발해 SK텔레콤에 납품한 전력이 있다. 최근 지상파 3사의 OTT 플랫폼 '푹(POOQ)’과 옥수수를 합해 ‘웨이브(Wavve)’가 탄생한 만큼 자사의 ‘N스크린’ 기술도 활용 범위가 넓어질 수 있다. N스크린은 하나의 콘텐츠를 스마트폰과 태블릿PC, 컴퓨터 등의 다양한 단말기에서 공유하도록 돕는 서비스다.

방송 맞춤형 광고 플랫폼인 ‘HTS 4.0’도 개발한 상태다. 과거에는 TV 광고가 시청 층 구분 없이 단일 전파를 탔다. 디지캡의 HTS 4.0을 통하면 시청 층의 성별, 소득 분포, 소비 습관에 맞춰 빅데이터 기반의 맞춤형 광고를 할 수 있다. 한 대표는 "HTS 4.0을 이용하면 광고 효과를 높이면서 방송사 수익도 증대할 수 있다"며 "SBS뿐 아니라 SBG 그룹과도 계약을 완료하고 시현을 준비하는 상태다"고 말했다.

자동차와 통신이 결합한 ‘커넥티드카(Connected Car)’ 분야도 디지캡의 향후 먹거리다. 디지캡은 차량 외부에서 오는 정보 중 악성 위험이 없는 데이터만 내려받도록 돕는 보안 솔루션을 현대자동차와 개발해 상용화를 앞뒀다. 블록체인 분야에서도 저작권 보호와 콘텐츠 유통을 위한 솔루션을 개발해 국가기록원 국책 과제를 수행한다.

올해 7월에는 헤드셋 회사인 ‘다산일렉트론’을 인수했다. 이색 조합 같지만 향후 사업 전망이 밝다는 게 한 대표의 설명이다. 그는 "다산일렉트론은 세계 4위 헤드셋 기업이다. 헤드셋이 무선형으로 바뀌면서 소프트웨어적인 이슈가 많다"면서 "디지캡과 다산일렉트론이 만나 소프트웨어가 강력한 무선 헤드셋 회사로서 시너지를 낼 수 있게 됐다"고 강조했다. 4년 후 300억대 매출을 넘기고 상장을 시도한다는 게 한 대표의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