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환경차 열풍이 거세다. 고급 자동차 브랜드도 여기에 자유로울 수 없다. 자동차 애호가들은 걱정한다. 어설프게 접근해 자칫 브랜드 가치가 훼손될까봐서다. 기름 적게 쓰고 배출가스 줄이는 데 그쳐선 안된다. 고급차 브랜드에는 기대치가 있다. ‘착한 시도'가 ‘멍청한 결정'이 되는 일은 자동차 업계에서 비일비재하다.

메르세데스-벤츠 EQC. /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 제공
메르세데스-벤츠 EQC. /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 제공
메르세데스-벤츠는 ‘전기차도 벤츠가 만들면 다르다'라고 선언한다. 전동화 바람을 타고 친환경차 전용 브랜드 EQ도 만들었다. 첫 번째 순수 배터리전기차(BEV)는 ‘EQC’다. 연초 CES에서 모습을 드러낸 EQC는 3월 서울모터쇼에 등장해 한국 자동차 마니아들을 설레게 했다. 본격적인 출고 전 EQC의 이모저모를 서울 신사동과 경기도 포천 일대를 오가며 체험했다.

인포테인먼트 MBUX ‘한국어 패치' 완료

벤츠는 운전자 경험을 중심으로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을 구축한다. 이름도 MBUX(Mercedes-Benz User Experience)다. 차가 사람의 말을 알아듣고 각종 기능을 작동시킨다. MBUX가 처음 등장했을 때 시스템을 작동시키는 시동어는 ‘하이 메르세데스(Hi, Mercedes)’였다.

한국 운전자가 영어로 차를 부르는 것은 자연스럽지 않다. 벤츠는 음성인식 기능의 한국화에도 공을 들였다. 독일 본사와 국내 R&D 센터가 고심한 결과 한국어로도 자연스럽게 작동하는 MBUX가 완성됐다. 한국에서는 차 안에서 "안녕 벤츠"라고 부르면 된다.

메르세데스-벤츠 EQC 실내. / 안효문 기자
메르세데스-벤츠 EQC 실내. / 안효문 기자
음성인식 기능은 이제 고급차 뿐만 아니라 엔트리급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다. 주로 스마트폰과 연계, 내비게이션 길안내나 라디오 등 음원 설정, 문자확인 등을 지원한다.

애플 카플레이나 안드로이드 오토 등 스마트폰에 사실상 기댄 많은 음성인식 기능과 달리 벤츠 MBUX는 자체 스마트 플랫폼을 지향한다. 2019 CES에서 "라스베이거스 인근 아시아 식당 추천해줘. 참, 스시는 빼고" 라는 복잡한 자연어 명령도 잘 알아듣고, 내비게이션 화면에 일본 식당을 제외한 근처 아시아 식당 정보를 띄우는 장면이 공개될 정도였다.

한국서 다시 만난 MBUX는 여전히 스마트했다. 앞좌석 동승석에서 "안녕 벤츠. 실내 온도 21도로 맞춰줘"라고 말하자 "네, 보조석 에어컨을 21도로 설정했습니다"란 답변과 함께 독립 공조 시스템을 작동시켰다. 운전석과 동반석의 위치까지 파악해 복잡한 명령을 수행한 것.

별도의 버튼을 누르지 않고 주행 중 자연스럽게 차를 부르고, 운전에 방해받지 않으며 기능을 쓸 수 있다는 점이 MBUX의 가장 큰 장점이다.

전기차와 MBUX의 궁합도 좋다. "내일 오전 8시에 출발할 수 있도록 준비해줘", "85%까지 충전해줘" 식으로 충전 시간과 상태, 내비게이션, 출발 시간 등을 차 안에서 미리 설정할 수 있다. 여기에 전용 앱까지 활용하면 탑승 전 1시간까지 사전 온도 조절 기능을 미리 활성화하거나 종료할 수 있다. 차 문 잠금·해제, 충전 시작 및 종료, 트렁크 열림 등 세부적인 차 상태도 앱 푸시 알림으로 확인 가능하다.

메르세데스-벤츠 EQC 디스플레이. 충전상태가 표시된다. / 안효문 기자
메르세데스-벤츠 EQC 디스플레이. 충전상태가 표시된다. / 안효문 기자
MBUX 음성인식 기능의 범위는 꽤나 넓다. 차 내 온도 및 조명 조절, 라디오 및 음악 재생, 전화 걸기 및 받기, 문자 전송 등은 물론이고 날씨 등 정보를 검색해 운전자에게 알려 주기도 한다.

두 개의 모터가 주는 여유로움

EQC의 파워트레인은 두 개의 전기모터와 80㎾h급 리튬 이온 배터리로 구성된다. 최고출력 408마력, 최대토크 78.0㎏·m, 0→100㎞/h 도달시간 5.1초, 최고 시속 180㎞ 등의 성능을 발휘하는 조합이다.

제원표상 숫자는 고성능 스포츠카를 떠올리게 하지만, 주행감각은 짐짓 여유롭다. 앞뒤축을 담당하는 모터의 성격이 다르다는 것이 회사측 설명이다. 앞축은 저속주행과 효율을 담당하고, 뒷축 모터는 역동성을 더하는 식이다.

메르세데스-벤츠 EQC 엔진룸. 내연기관 대신 전기동력계가 가득하다. / 안효문 기자
메르세데스-벤츠 EQC 엔진룸. 내연기관 대신 전기동력계가 가득하다. / 안효문 기자
전기모터의 특성상 내연기관차보다 빠르게 최대 토크가 뿜어져나온다. 출발 가속이 아주 좋다는 이야기다. EQC의 출발도 경쾌하다. 그런데 속도를 붙여가는 감각이 여느 전기차와 다르다. 힘은 차고 넘치는데 실력을 100% 발휘하지 않는 느낌이다.

마치 차가 ‘급하게 밟아서 뭐해, 지금도 충분하잖아'라며 운전자에게 말을 거는 느낌이다. 반응이 느리거나 답답한 느낌은 아니다. 대부분의 주행상황에서 여유를 잃지 않는, 내연기관 엔진을 품은 다른 벤츠와 비슷하다는 이야기다.

EQC의 묘미는 회생제동의 정도를 4단계로 조절할 수 있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전기차는 주행 중 속도를 줄이거나 타력 주행을 하는 상황이 오면 회생제동 에너지로 배터리를 충전하는 기능을 탑재한다. 가다서다를 반복하는 도심에서 전기차 효율이 더 오르는 이유다.

메르세데스-벤츠 EQC. /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 제공
메르세데스-벤츠 EQC. /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 제공
EQC의 스티어링 휠 뒤쪽에 패들 시프트가 있다. 플러스(+)와 마이너스(-) 패들을 작동해 회생에너지 충전 단계를 조절할 수 있다. 가장 적극적으로 충전하는 ‘D-’모드에선 사실상 ‘원페달 드라이브’가 가능했다. 가속 페달에서 발을 떼는 것만으로 강력한 엔진브레이크가 걸려서다. 조금만 감각에 익숙해지면 도심 주행에선 한결 편하고 효율적인 주행이 가능한 모드다.

반면 ‘D+’ 모드에선 주행 중 충전되는 상황이 연출되지 않았다. 일반 자동차의 ‘스포츠 모드' 처럼 반응성도 역동적으로 바뀌었다. 가속 페달에 힘을 싣자 기다렸다는 듯 차가 튀어나간다. 배터리 걱정 말고 성능을 만끽하라며 차가 재촉하는 느낌이다.

친환경차에 대한 벤츠의 고민 느껴져

지난 9월 프랑크푸르트 모터쇼(IAA)에서 만난 요헨 헤르만 다임러 AG CASE & e드라이브 개발 부사장은 "소비자들이 자동차 문화를 즐기면서도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는 차를 만드는 것이 고급 자동차 브랜드의 책무"라고 말했다. 기름 펑펑 쏟아가며 비싼 차 타는 게 자랑인 시대는 이미 오래전에 끝났다는 이야기다. 반면 친환경성에 몰입된 나머지 브랜드 자체의 매력이나 달리는 즐거움이 거세된 차로는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벤츠는 잘 알고 있었다. EQC는 고급 자동차를 대표하는 메르세데스-벤츠의 작품답게 우아하고 편안한, 그러면서 가장 똑똑한 음성인식 비서까지 대동한 전기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