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개월 시한부 통장잔고, 기술력이 결국 우릴 살렸다"

입력 2019.11.15 06:00 | 수정 2019.11.15 16:19

오현오 가우디오랩 대표는 2018년 3월을 잊지 못한다. 그는 구성원들 앞에 섰다. 회사를 운영하기 위해 필요한 자금이 6개월 뒤 바닥난다는 소식을 전하기 위해서다. 오 대표는 직원들에게 "이제 겨울을 나야 한다"고 말했다.

오현오 가우디오랩 대표./ 가우디오랩 제공
"겨울이 온다"…승승장구하던 가우디오랩에 무슨일이

무슨일이 일어난 걸까. 가우디오랩은 한때 세계 VR업계 이목을 집중시킨 스타트업이다. 생생한 VR콘텐츠를 구현하기 위해 필요한 음향 기술을 다수 보유했다. 2015년 법인 설립 후 한국과 미국, 유럽 등에서 획득한 음향 관련 기술 특허만 50개가 넘는다. 국제표준화기구(ISO/IEC) 산하 비디오·오디오 관련 전문가 그룹 MPEG이 표준으로 채택한 3차원 공간 소리 재현 기술(MPEG-H 3D Audio Binaural Rendering)도 보유했다.

탄탄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가우디오랩은 2016년 한국투자파트너스와 LB인베스트먼트, 소프트뱅크벤처스, 캡스톤파트너스 등으로부터 투자를 유치했다. VR콘텐츠가 세계 IT업계에 새로운 혁신으로 꼽히던 때다. 가우디오랩은 이를 발판 삼아 할리우드 제작사 대상 VR사운드 솔루션을 납품하기 위해 미국 LA에 사무실을 마련했다.

승승장구하던 가우디오랩에 겨울이 찾아온 건 VR시장 전체가 휘청이던 2017년이었다. 업계 예상과 달리 VR기기는 일반에는 접근 장벽이 높았다. 생각보다 보급 속도가 느렸던 이유다. 2018년 초가 되자 회사 곳간은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다.

오 대표는 결단을 내려야 했다. VR이 아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시장으로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사업 방향을 전환한 것 보다 조직을 수습하는게 그에겐 더 어려웠다. 오 대표는 "VR시장에 깃발 꽂아보자고 모인 사람들에게 VR을 접자고 했으니 조직이 흔들릴 수 밖에 없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이대로 가면 6개월 후엔 월급을 줄 수 없는 상황이지만 새로 열리는 OTT시장으로 가면 가능성이 있어보인다고 설득했다"며 "내 뜻에 동의하면 나를 따르고 아니면 여기서 헤어지자고 말했다"고 전했다. 자연스럽게 조직이 재편되는 과정을 거쳤다.

IT조선은 14일 서울 강남서 열린 네이버 D2 스타트업 팩토리(Startup Factory)가 주최한 테크 미츠 스타트업(Tech Meets Startup)2019 현장에서 오현오 대표를 만났다. 올해로 2회 차를 맞은 테크 미츠 스타트업은 국내 기술 스타트업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겪은 다양한 경험을 공유하고, 이를 통해 더 큰 성장 기회를 모색하자는 취지로 마련됐다.

가우디오랩의 음향 솔루션./가우디오랩 제공
기술력으로 가능한 사업 방향전환

오 대표가 과감하게 방향전환을 시도할 수 있던 건 기술이라는 뒷배가 있었기 때문이다. VR콘텐츠와 OTT콘텐츠 음향기술 핵심이 크게 다르지 않았던 덕분이다.

오 대표는 "보유 기술도 많았고 이 중 몇 개를 조합해 조금만 수정하면 바로 OTT시장에 접목할 솔루션을 만들 수 있다고 판단했다"며 "결국 우리가 해왔던 사업과 같은 맥락에 있으니 VR보단 조금 더 가능성이 있는 OTT시장에 집중해보자고 구성원을 설득했다"고 말했다.

동절기 중 가우디오랩이 개발한 OTT오디오 기술 중 하나는 라우드니스 노말라이제이션(Loudness Normalization) SDK다. OTT서비스 내 콘텐츠 간 음량 차이를 자동으로 조율해주는 솔루션이다.

유튜브에는 콘텐츠 간 음량 차이를 자동으로 조정하는 기능이 없다. 어떤 유튜버 음성은 갑자기 크게 들릴 때가 있고, 반대로 유튜버 영상 음성보다 중간에 재생되는 광고영상이 크게 들리기도 한다. 가우디오랩 솔루션은 한 플랫폼 내 영상 간 음량크기를 자동 조율한다. 이 서비스는 현재 네이버TV와 브이라이브 등 네이버 동영상 플랫폼과 네이버 음악 플랫폼인 바이브에 적용됐다.

가우디오랩은 음악 플랫폼용 Music EQ SDK도 개발했다. 음악 플랫폼에서 장르 특성에 맞게 가장 최적화된 음향효과를 알아서 찾아 적용해주는 기능이다. 이 기술은 현재 SK텔레콤이 만든 음악 플랫폼인 플로에 ‘3D오토모드 이퀄라이저'라는 기능으로 탑재됐다. 힙합과 락, 댄스 등 장르를 포함해 아이돌 콘서트 모드와 아이돌 음색강화, 서라운드 사운드 등 다양한 효과를 넣었다.

OTT업계에 부는 음향효과

오 대표는 향후 OTT업계도 음향효과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게 될 것이라고 기대한다. 현재까지는 특정 OTT서비스를 선택할때의 기준은 얼마나 볼만한 콘텐츠가 많느냐다. OTT시장이 더욱 커지면 업계도 콘텐츠 양이 아닌 질로 승부하게 될거란 분석이다. 그때 OTT업체들도 콘텐츠 몰입도를 높이기 위해 시각과 청각적 기능 모두 관심을 기울이게 될 거란 기대어린 전망이다.

오 대표는 "지금은 OTT 콘텐츠의 음질이 균일하지 않은 문제를 해결하는 수준이지만, 향후에는 OTT들도 시각과 청각으로 이용자들에게 얼마나 몰입감을 줄 수 있느냐를 두고 경쟁하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다양한 기업에 솔루션을 접목하는 사례가 늘면서 가우디오랩 시한부 삶은 2022년까지 연장된 상태다. 오 대표는 진심을 믿어준 직원들이 고맙다고 덧붙였다.

오 대표는 "우리 사업은 실패할지라도 우리의 삶은 실패한게 아니라고, 우리의 노력이 결코 헛된 것이 아니라는 걸 설득했다"며 "고객사들도 다행히 우리 기술을 믿어줬다"고 말했다.

한숨 돌리게 된 만큼 다시 글로벌 업계가 가우디오랩을 주목할 수 있도록 일본과 중국, 미국 시장 문을 차분히 두드리고 있다.

오 대표는 "누구나 비싼 스피커나 헤드폰 없이도 좋은 음질의 콘텐츠를 즐길 수 있었으면 하는 생각에 창업을 하게 됐다"며 "VR에서 OTT시장으로 목표를 바꿨어도 이 비전은 변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아직은 추위가 다 가시지 않은 초봄이지만 곧 여름이 오지 않을까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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