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VNO는 2011년 7월 기존 이통3사(MNO)만 있던 무선통신 시장의 경쟁 활성화와 가계통신비 절감을 위해 도입됐다. MVNO는 MNO의 통신망을 도매로 빌려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로, 통신 품질은 이통사와 거의 유사한 것이 장점이다.

최근 알뜰폰(MVNO) 업계에 비상이 걸렸다. 안그래도 가입자가 줄어 사정이 어려운데, KB국민은행 등 은행권이 금융 상품을 결합한 알뜰폰 상품을 내놓는 탓에 자칫 줄도산 위기에 놓였다는 평가가 나온다. 심하게는 3년 내에 문을 닫는 중소업체가 늘어갈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IT조선은 한국알뜰통신사업자협회(KMVNO) 전직 회장들을 연이어 만났는데, 이들은 입을모아 업계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정부가 ‘흑묘(대기업)’든 ‘백묘(중소기업)'든 상관없이 쥐(알뜰폰 시장 활성화)만 잡으려 한다는 불만이 크다.

알뜰폰 상품에 대한 소개 이미지./ 한국알뜰폰통신사업자협회 홈페이지 갈무리
알뜰폰 상품에 대한 소개 이미지./ 한국알뜰폰통신사업자협회 홈페이지 갈무리
IT조선과 만난 이석환 인스코비 대표는 KB국민은행의 알뜰폰 시장 진출에 불쾌감을 감추지 못했다. 이 대표는 25년간 SK그룹에 근무하면서 SK텔레콤 영업마케팅본부장과 중국법인장, 싱가포르 법인장, SK네트웍스 통신마케팅컴퍼니 사장 등을 역임하는 등 통신 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이다. 제 5대 KMVNO 회장이었던 그는 2019년 SPC 삼립 대표로 이직한 후 10월 다시 인스코비로 복귀했다.

KB국민은행 알뜰폰 ‘혁신’ 아닌 ‘시장왜곡’

이 대표는 "중소기업 적합업종을 지정하는 것처럼 대기업의 알뜰폰 시장 진출 자체를 아예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며 "대기업이 진출해 알뜰폰 사업 발전에 기여한다면 굳이 반대할 명분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KB국민은행이 알뜰폰 사업에 진출하는 방식은 산업의 구조 자체를 왜곡할 우려가 있다며 우려를 표했다.

이 대표는 "KB국민은행은 가계통신비 인하 목적이 아니라, 신규 가입자 유치와 기존에 갖고 있지 않던 고객 데이터를 확보하기 위해 알뜰폰 시장에 뛰어들었다"며 "혁신이라고 하지만 자신들의 금융상품을 이용할 때 통신료를 할인해준다는 것은 금융상품에 알뜰폰 상품을 덤으로 얹어서 판매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질타했다.

KB국민은행이 내세운 요금제는 중소 알뜰폰 업체들이 도저히 내놓을 수 없는 수준이다. 예를 들어 중소 알뜰폰 업체가 MNO로부터 100원의 도매대가를 내고 망을 임대한 후 소비자들에게 120~130원에 팔아 20~30원의 수익을 낸다면, KB국민은행은 도매대가 100원보다 더 저렴한 80~90원을 소비자들에게 제공한다. 중소 알뜰폰 업체 입장에서 보면 수익을 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손해를 보고 영업에 나서야 한다.

윤석구 큰사람 대표./ 류은주 기자
윤석구 큰사람 대표./ 류은주 기자
윤석구 큰사람 대표 역시 KB국민은행의 알뜰폰 시장 진출에 우려가 크다. 윤 대표는 제3대, 4대 알뜰폰사업자협회장을 역임한 인물로, 경북대 동아리 '하늘소'에서 통신 에뮬레이터로 잘 알려진 '이야기'를 개발한 벤처 1세대 주자다. 큰사람은 음성데이터통합(VoIP) 솔루션 개발회사로 현재 기업형 인터넷전화 및 웹콜센터와 화상회의 솔루션, 알뜰폰 사업 등을 영위한다.

윤 대표는 "KB국민은행은 MNO 가입자를 흡수하겠다는 전략을 발표했지만, ‘저렴한 요금제' 때문에 알뜰폰을 사용하는 고객들은 결국 KB국민은행이 선보이는 저가 요금제에 관심을 보일 것이다"라며 "결국 기존 알뜰폰 업체들과 경쟁하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KB국민은행은 LG유플러스와 손잡고, KEB하나은행은 SK텔레콤과 제휴를 맺었으니, 다른 대형 은행은 또 KT와 제휴를 맺을 것이다"라며 거대 금융권의 연이은 알뜰폰 사업 진출을 우려했다.

"첫 단추부터 잘 못 끼웠다"

이 대표와 윤 대표는 입을모아 알뜰폰 시장이 출발부터 공정치 못했다고 밝혔다. 기대와 달리 알뜰폰 업계는 기존 이통 시장의 5:3:2(SK텔레콤:KT:LG유플러스) 구도를 깨뜨린다거나 독과점 방지 등을 하지 못했다.

무엇보다 SK텔레콤의 자회사 SK텔링크가 알뜰폰 사업을 하니 경쟁사들도 연이어 자회사를 통해 알뜰폰 시장에 진출했다. 정부는 점유율 규제로 이통 자회사의 시장 영업을 제한했지만, 실효를 거두기에 미흡한 장치였다는 갓이다. 첫 알뜰폰 사업자도 중소기업이 아니라 SK텔링크였다.

윤 대표는 "알뜰폰 1호 사업자가 SK텔레콤의 자회사인 SK텔링크였다는 것을 고려할 때 첫 단추부터 잘못 끼운 것이라 할 수 있다"며 "50% 점유율 제한 등 조건을 달았지만 유명무실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거대 자본의 참여로 결국 정책의 본질이 훼손됐고, MNO 3사 체재는 고착화됐다"며 "현재 알뜰폰 시장 점유율 12%에서 아무리 늘어나야 25%인데, 향후 10%쯤 더 점유율이 성장한다고 했을 때 결국 자본력이 있는 곳이 점유율을 가져갈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이석환 인스코비 대표./ 인스코비 제공
이석환 인스코비 대표./ 인스코비 제공
이 대표 의견도 같다. 그는 "이통3사 자회사는 알뜰폰 산업 발전보다는 약탈적 보조금으로 시장질서를 흩트리며 시장을 왜곡하는 주범이다"라고 꼬집었다.

이통3사 알뜰폰 자회사의 경우 중소 사업자에 제공하는 도매대가보다 저렴한 요금제를 선봬 가입자를 확보한다. 하지만 마케팅 비용부담 증가로 적자가 나더라도 모회사로부터 자금을 수혈받을 수 있다. 또 도매대가를 많이 지불하더라도 결국 모회사의 이득이 커지는 셈이기 때문에 손해가 아니다.

이들은 지금과 같은 상황이 이어진다면 중소 알뜰폰 사업자들의 생존조차 가늠할 수 없다는 목소리도 냈다. 이 사장은 "이대로라면 아마 3년 이내에 중소 사업자들은 문을 닫아야 할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윤 대표 역시 알뜰폰의 미래에 관해 묻자 한숨을 내쉬었다.

IoT로 새로운 기회 모색

상황이 이러다보니 중소 사업자들은 생존을 위해 자체적으로 경쟁력을 키우기 위한 고민이 깊다.

이 대표는 "MVNO가 아닌 MVNE로 전환하는 것에 대한 고민이 사업자들 사이에서 있다"며 "하지만 지금 시장 상황에서는 승산이 많아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MVNE(Mobile Virtual Network Enabler)란 데이터 서비스, 콘텐츠 관리, 고객관리(CRM), 청구 및 결제 등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통3사 외에 MVNE와도 거래를 할 수 있으므로 선택기회가 넓어진다. 하지만 대규모 설비투자가 필요해 진입장벽이 높다.

인스코비와 큰사람은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발굴을 위해 사물인터넷(IoT) 분야로 눈을 돌렸다.

이 대표는 "희망이 줄고 있는 알뜰폰 사업에서 벗어나, IoT 등에서 새롭게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보려 한다"며 "궁극적으로 확장되는 사업으로 슬슬 눈을 돌려야 할 때인 것 같다"라고 말했다.

윤 대표 역시 "2017년부터 IoT 플랫폼 사업에 진출하며 사업 다각화를 모색했다"며 "아직 주된 수익원은 알뜰폰 사업이지만 플랫폼 사업에서도 조금씩 성과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사람과 사람을 유선으로 연결하는 것이 큰사람의 1세대 사업이고, 사람과 사람을 무선으로 연결하는 알뜰폰이 2세대 사업이었다면, 사물과 사람 또는 사람과 사람을 무선으로 연결하는 IoT 사업이 큰사람의 3세대 사업으로 연결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