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일 공문에 "초등학교 HMD 이용 자제하라"
자제 근거는 ‘자체 회의 2회’와 ‘제품 사용 설명서’
업계 "6세 이상 어린이는 동공 간 거리 조절만 하면 이용 가능"
교육부가 권한 스마트폰 VR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의문
심지어 ‘LG U+’ 밀어주기 아니냐는 의심까지 나와
'교육부·국무조정실' 불협화음도 혼란 일으키는 원인

교육부가 10월 1일 전국 초등학교에 내린 공문 탓에 어린이 VR 콘텐츠를 개발하는 기업 다수가 혼란을 겪는 모양새다.

교육부는 초등학생이 VR기기를 이용할 때 건강이 저해되는 것을 우려해 공문을 작성했다. 해당 공문 첫 번째 항목에는 헤드셋 형태 VR 기기(HMD) 이용을 자제하고 스마트폰·패드를 활용하라는 내용이 있다.

교육부 공문 중 일부. / 교육부 제공
교육부 공문 중 일부. / 교육부 제공
물론 공문에서는 ‘자제’해달라고 권고했지만, 시·도교육청이 교육부 지침에 따라 일선 학교로 하달했다는 점에서 영향력은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교육부 한 관계자는 VR기기를 자제해달라는 공문을 작성하게 된 근거에 대해 두 차례에 걸쳐 진행한 내부 회의를 들었다.

그는 "정확한 내용을 밝힐 수는 없지만 안과 의사, 광학 전문가, 일선 교사 등을 모시고 진행한 회의에서 자문했을 때 어린이에게 부정적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됐다"며 "오큘러스, 삼성, 바이브 등은 각각 자사 기기를 어린이에게 권장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사용 설명서에 명시하기도 한다"고 밝혔다.

다만, 명확한 논문이나 연구 자료를 바탕으로 하지는 않았다. 교육부 관계자는 "관련 논문도 직접 찾아봤지만 실제로 문제가 있는지 여부에 관해서는 모호한 표현뿐이라 근거가 되는 논문을 내세우기는 어렵다"며 "교육부는 어린이를 최대한 보호하자는 입장이므로, 위험할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 자제해달라고 표현한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VR기기 업체 HTC(바이브)의 최신 기기 ‘바이브 코스모스’. / 바이브 홈페이지 갈무리
VR기기 업체 HTC(바이브)의 최신 기기 ‘바이브 코스모스’. / 바이브 홈페이지 갈무리
업계에서는 이를 반박하는 분위기가 퍼졌다. 업계 관계자의 주장은 2015년 VRC 컨퍼런스에서 ‘후지카도 타카시’ 오사카대학 대학원 의학계 연구과·감각 기능 형성 교수의 발표를 근거로 한다.

해당 발표는 ▲6세까지의 소아는 입체시 발달과정 중이므로 HMD 사용을 신중하게 해야 함 ▲동공 사이 거리는 13세, 14세 경까지 늘어나므로 이를 고려한 HMD의 개발이 필요함 ▲6세 이후의 정상 소아는 입체시의 발달이 거의 완성됐으므로, 3D 영상을 활용하는 HMD 사용이 가능하다고 생각함 등 내용을 담았다.

업계 한 관계자는 "어린이가 VR기기를 이용하는 것을 권하지 않는 이유는, 눈동자 사이 거리가 어른과 다르기 때문이다"며 "최근 나오는 고성능 VR기기는 전부 눈동자 간격에 맞게 조절하는 기능이 들어있는데, 왜 일률적으로 자제하라고 해서 산업의 발전을 막는지 모르겠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교육부 관계자는 "HMD는 어린이용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고, 어린이가 동공 간격이 다소 맞지 않아도 이를 조절해달라고 요청하는 것도 쉽지 않기 때문에 위험할 수도 있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VR기기 오큘러스 리프트에 동공 간 거리에 맞게 조절할 수 있는 노브가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 VR콘텐츠산업협회 제공
VR기기 오큘러스 리프트에 동공 간 거리에 맞게 조절할 수 있는 노브가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 VR콘텐츠산업협회 제공
웨이징 응앙 HTC(바이브) 아태 제품총괄이사는 교육부의 조치를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는 "VR 콘텐츠 지원도 많이 하는 나라에서 공문을 통해 VR기기를 사용하지 말라는 것은 다른 나라에 비해 산업을 후퇴하게 만드는 원인이 될 수 있다"며 "새 기술을 도입할 때는 으레 논란이 발생하기 마련이나, VR은 각종 검증을 통해 안전하다는 것이 입증된 기술이다. 장시간 사용 등 사용 습관을 관리하는 것으로 충분히 건강하게 이용할 수 있다"라고 주장했다.

웨이징 이사는 이어 "바이브는 제품을 생산할 때 의사를 비롯한 전문가를 다수 모시고 진행하고, VR이 인체에 나쁘다는 연구 결과는 전무하다"며 "스마트폰이 처음에 도입될 때는 전자파로 인해 암이 걸린다는 소문이 돌았으나 지금은 아무도 걱정하지 않는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본다"고 덧붙였다.

심지어 업계 한 관계자는 "10월 1일 뚜렷한 근거 없이 공문을 내린 이유가 10월 23일 교육부와 ‘LG유플러스’와 업무협약을 맺고 선보일 예정인 교육용 AR∙VR 콘텐츠 플랫폼 ‘톡톡체험교실’을 밀어주기 위함 아닌가"하는 의혹까지 제기했다. 해당 콘텐츠는 교육부가 권장하는 2D VR 콘텐츠로, HMD가 아닌 스마트폰·패드를 활용한 교육 콘텐츠다.

스마트폰·패드를 활용한 가상현실 체험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반응도 있다. 스마트폰의 네모난 화면 속에서 화면을 돌려가며 하는 체험은 결국 VR이 아니라 동영상 감상과 다를 바가 없다는 이야기다.

국무조정실 대테러센터에서 교육부 학교안전총괄과에 내린 공문, 바이브 기기를 이용한 VR 콘텐츠를 많이 활용할 것을 당부하고 있다. / 정보공개포털
국무조정실 대테러센터에서 교육부 학교안전총괄과에 내린 공문, 바이브 기기를 이용한 VR 콘텐츠를 많이 활용할 것을 당부하고 있다. / 정보공개포털
국무조정실과 교육부의 엇박자도 업계 관계자를 혼란스럽게 한다. 국무총리 산하 국무조정실 대테러센터는 10월 31일 대테러 교육용 VR 콘텐츠를 제작해 VR 체험 기기를 보유한 초등학교에 배포할 예정이라는 공문을 교육부 학교안전총괄과에 배부했다. 운영 기종은 바이브 장비로, 국무조정실 관계자는 ‘HMD를 쓰고 하는 3D VR 콘텐츠’라고 설명했다.

교육부에서는 자제하라고 하는 HMD 활용 콘텐츠를 국무조정실에서는 ‘많은 참여 부탁드린다’고 하니 업계에서는 어찌 된 영문인지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인다. 교육부 측에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묻자 "그 부분에 대해서는 추가로 파악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뚜렷한 답을 내놓지 않았다.

일본의 경우 로케이션베이스VR협회 측에서 2018년 1월 5일부로 13세 미만 어린이에 대한 자율 가이드라인을 제정·시행한다. 해당 가이드라인은 직원 등에 의해 사용 시간·빈도가 관리되는 것을 전제로 한다.

주 내용은 ▲7세 미만 어린이는 사용하지 말것 ▲어린이가 가상현실 콘텐츠를 이용할 때는 보호자 동의를 얻은 후 이용하게 할 것 ▲20분 연속 사용 후 10~15분 휴식을 취할 것 등이다.

업계 관계자는 "한국가상현실콘텐츠산업협회에서도 해당 자율 가이드라인을 도입할 계획을 세우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무작정 모든 VR 기기를 자제하라고 권하기보다는 더 심화된 논의가 있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