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지내냐는 친구의 말에 그랜저로 대답했습니다"

2009년 현대차 그랜저 뉴 럭셔리 광고 문구다. 그랜저를 탈 정도면 사회적으로 성공한 것이란 의미가 녹아든 카피다. 당시 물질만능주의 시각 아니냐는 일부 비판도 있었지만 어느 정도 수긍하는 사회적 분위기였다.

많은 이들에게 이른바 ‘각그랜저'로 기억되는 1세대는 맨처음 1986년 등장했다. 국산차 브랜드가 만든 제대로 된 고급차라는 평가를 받으며 지금까지 명성을 이어왔다. 다이너스티와 에쿠스, 제네시스 등 ‘형님'들이 등장하며 지위가 조금씩 내려갔을지언정 ‘그랜저=고급차'라는 인식은 굳건했다.

5세대(HG)와 6세대(IG)를 거치면서 현대차는 그랜저 새 수요처로 젊은 소비자층을 주목했다. 중후한 고급감이 세련된 상품성으로 이어졌다는 긍정적인 평가도 받았다. 물론 쏘나타와 잠식효과(카니발리제이션)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택시, 렌터카 공급 확대로 쏘나타의 개인 판매량이 시들해질 때에도 그랜저는 마이카로서 매력을 잃지 않았다. 지금은 20~30대가 그랜저를 타도 더 이상 ‘아빠차'로 오해(?) 받지 않게 됐다.

6세대 그랜저가 3년 만에 부분변경차로 돌아왔다. 부분변경이란 말이 무색할 정도로 상품성이 대폭 개선됐다. 신형 엔진을 얹고 차체를 키웠다. 매끄러운 심리스 디자인은 최신 IT기기를 연상케한다. 널찍한 실내는 고급소재와 첨단 편의품목으로 꼼꼼히 채웠다. ‘전위적'이란 표현이 나올 정도로 파격적인 변화다.

 현대차 더 뉴 그랜저. 6세대(IG) 출시 후 3년만에 등장한 부분변경차다. / 현대자동차 제공
현대차 더 뉴 그랜저. 6세대(IG) 출시 후 3년만에 등장한 부분변경차다. / 현대자동차 제공
새 그랜저의 광고 캠페인 주제는 ‘2020 성공에 관하여'다. 그랜저의 저변이 확대된만큼 다양한 성공의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시도로 보인다.

그랜저의 수요층은 넓어졌고, 시대도 많이 달라졌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성공을 추구하고, 멋진 삶을 사는 사람들의 동반자로 그랜저가 함께 하겠다는 메시지에 집중한 것으로 보인다.

광고 영상에는 다니던 회사를 박차고 나온 스타트업 창업자, 몸 관리에 성공해 중년 여성에게 ‘총각' 소리를 듣는 중년 남성, 유명세를 얻은 영상 크리에이터, 승진한 아버지, 법인차로 그랜저를 받았다며 쿨하게 한턱을 내는 직장 여성 등이 광고에 등장한다. 대기업 간부나 전문 경영인, 고위 공직자 등이 아니라도 성공했다는 이야기로 보인다.

실제로 그랜저 광고영상에서는 사회적 성공의 틀을 깨려는 시도가 눈에 띈다. 승진이 아니라 창업을 선택한 직장인, 동료의 부러움보다 아들과의 시간이 많아졌다는 점을 강조하는 아빠, 당당히 임원으로 승진한 여성의 사회적 성공, 부모 세대 기대와 다르지만 영상 크리에이터로 성공한 아들 등은 지금 우리 사회에서 단순히 높은 사회적 지위만이 성공의 증거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현재 시장에서 그랜저에 대한 소비자의 인식이 달라진 것처럼 말이다.

다소 아쉬운 점도 있다. 유명 크리에이터의 ‘엄마 나 돈 잘 벌어'란 말에 어머니는 ‘차가 정말 좋구나'라고 반응한다. 10년 전 말쑥한 양복을 입은 비즈니스맨이 그랜저로 본인의 성공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차라리 이 크리에이터가 여러 콘텐츠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성취감을 느끼고 인정 받는 모습을 보여주었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현대차의 고민도 느껴진다. 제네시스 분리 후 그랜저는 현대차의 플래그십이란 역할을 다시 맡게 됐다. ‘젊은 그랜저' 이상의 무언가가 필요했고, 오랜 시간 한국 고급차 시장에서 입증된 인정받은 ‘성공'이란 키워드를 다시 꺼내 들었을 것이다.

젊은층들은 넉넉한 지갑사정과 주위 사람들의 평가에 더이상 크게 목매달지 않는다. 내가 선택한 길을 당당하게 걸어가고 기존의 성공을 거머쥔 사람들과 자신을 비교하지 않아도 행복을 찾아가는 것을 중시한다. 일과 삶의 균형을 찾아가는 이른바 워라벨을 추구한다.

과연 오늘날 젊은층에게도 그랜저는 성공의 상징일까? 차의 매력과 경제적 성공을 연결해 설명하는 작업은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다. 특히 성공의 결이 다양해진 오늘날에는 말이다. 달라진 차의 성격만큼이나 성공에 대한 현대차의 새로운 접근에 새삼 관심이 쏠리는 배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