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통3사가 앞다퉈 실감형 콘텐츠를 즐길 수 있는 가상현실 VR·AR 대중화에 나섰다. 5G 시대를 맞아 더 많은 고객에게 차별화한 경험을 제공하려면 양질의 콘텐츠 개발과 기기 보급이 선행해야 한다.

이통사가 최근 선보인 VR 콘텐츠 일부는 공짜가 아니다. 월 이용료를 내야한다. VR·AR 기기는 개별이든 콘텐츠가 포함된 패키지든 구입 비용이 든다. VR·AR 콘텐츠는 대체로 많은 데이터를 소모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데이터 전송 속도가 빠르고 용량이 넉넉한 5G 고객이 타깃이다. 하지만 고객의 주머니는 그리 넉넉하지 않다.

한국 VR·AR 시장은 글로벌과 달리 성장이 더디다. 시장조사업체 디지캐피털이 2018년 발표한 실감미디어 시장 자료를 보면, 2020년 글로벌 시장은 117조2000억원 규모지만 한국은 5조2000억원 수준에 불과하다.

왼쪽부터 이종석 카카오VX 사업본부장·전진수 SK텔레콤 5GX서비스사업단장·유영상 SK텔레콤 MNO사업부장·콜란 시웰 페이스북 부사장·임세라 마블러스 대표가 VR기기 ‘오큘러스고’를 착용한 모습. / 이광영 기자
왼쪽부터 이종석 카카오VX 사업본부장·전진수 SK텔레콤 5GX서비스사업단장·유영상 SK텔레콤 MNO사업부장·콜란 시웰 페이스북 부사장·임세라 마블러스 대표가 VR기기 ‘오큘러스고’를 착용한 모습. / 이광영 기자
이통3사, VR·AR 전용 콘텐츠 및 기기 앞다퉈 출시

SK텔레콤은 VR 생태계 확대를 위해 페이스북, 카카오, 넥슨 등 글로벌 ICT·콘텐츠 기업과 손을 잡았다. 5G VR 시대의 핵심 서비스인 버추얼 소셜 월드를 19일 출시했다. 카카오프렌즈 IP를 활용한 VR게임 ‘프렌즈 VR월드’도 연내 공개한다.

VR 생태계 확산 속도를 높이기 위해 페이스북과 함께 내놓은 것이 VR기기 ‘오큘러스Go(고)’다. 해외 배송이나 직구를 이용하지 않아도 국내에서 구입하고, 애프터서비스(AS)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오큘러스고, VR영어콘텐츠, VR게임 아이템 등을 결합한 ‘오큘러스고 VR팩’은 22만6800원이다. 12개월 분할 납부 기준 월 1만8900원이다. 오큘러스고 개별 구입 비용인 23만8000원 대비 저렴하지만, 1년 동안 2만원에 가까운 금액을 비싼 5G 요금에 추가로 내야하는 부담이 있다.

KT는 4일 올레 tv의 실시간 채널과 VOD, 3000편의 VR 전용 콘텐츠를 즐길 수 있는 슈퍼 VR tv를 출시했다. 월 이용료는 9900원(3년 약정·복수회선 기준)이다. 전용 요금제 3종에 가입하면 슈퍼 VR 기기를 월 1만1000원(3년 약정)에 이용할 수 있다. 36개월 할부인 셈이라 월 납부 금액은 저렴하지만 총액은 39만6000원에 이른다. KT 인터넷과 올레tv 신규 가입자에겐 슈퍼 VR 기기가 무료다.

LG유플러스는 3D AR 콘텐츠를 360도 회전하면서 보거나 큰 화면으로 볼 수 있는 AR 글라스 ‘엔리얼 라이트’ 시범 서비스를 시작했다. 엔리얼 라이트는 AR 글라스 전문 제조 기업 엔리얼과 LG유플러스가 협업해 만든 제품이다.

2020년 출시 예정인 엔리얼 라이트는 88g으로 기존 AR·VR 등을 볼 때 쓰는 HMD대비 가볍다. 가격은 499달러(58만8000원)으로 책정됐다. LG유플러스는 마이크로소프트나 매직 리프 등 경쟁사 AR 글라스가 400~500g 무게에 3000달러(353만4000원)에 달한다며 가격 경쟁력을 강조했다. 하지만 실감형 콘텐츠에 입문하는 고객이 체감하기엔 499달러 역시 가격 장벽이 존재한다.

KT 모델이 ‘슈퍼 VR tv’를 소개하고 있다. / KT 제공
KT 모델이 ‘슈퍼 VR tv’를 소개하고 있다. / KT 제공
이통사 5G 투자·마케팅 비용만 17조원…콘텐츠 수익화 필수

물론 이통사의 이같은 행보를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은 아니다. 이통3사는 2019년에만 5G 설비투자(CAPEX)에 9조원 가까운 비용을 쓸 것으로 예상된다. 마케팅비도 8조원쯤 들 전망이다. 5G B2B 사업이 본격화 되기 전에 투자한 비용을 회수하려면 콘텐츠에 힘을 실어 수익화 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하지만 400만명이 넘는 고객이 이미 LTE 대비 비싼 5G 요금제를 사용하고 있다. 5G 요금제는 최저 7만~13만원에 달한다. 비싼 요금을 지불하는 가운데 콘텐츠를 제대로 즐기려면 추가 비용을 감수해야 한다.

이통업계 한 관계자는 "5G 요금이 인하하거나, 실감형 콘텐츠 전용 기기의 극적인 가격 인하가 없다면 이통사의 콘텐츠 개발 노력에도 대중화는 회의적이다"라고 전망했다.

엔리얼이 만든 AR글래스 ‘엔리얼 라이트’ 모습. / LG유플러스 제공
엔리얼이 만든 AR글래스 ‘엔리얼 라이트’ 모습. / LG유플러스 제공
"VR·AR 대중화 자신" 이통사 ‘장밋빛 기대’ 결과는?

그럼에도 이통사는 실감형 콘텐츠 대중화라는 장밋빛 기대를 거두지 않는다.

SK텔레콤은 자사 VR서비스 실이용자를 2019년 월 10만명에서 2020년 월 100만명으로 10배 이상 늘리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전진수 SK텔레콤 5GX서비스사업단장은 "통신 사업자로서 다음 플랫폼으로 진화하는 기반이 VR이 될 것으로 믿는다"며 "버추얼 소셜 월드를 글로벌 시장에도 진출할 수 있도록 언어 기능을 보강해 2020년에 미국에 서비스 오픈을 준비 중이다"라고 말했다.

KT는 VR을 게임이나 전용콘텐츠 제공에 국한하지 않고, TV시청이라는 일상 영역으로 가져와야 한다는 점에 주목한다.

송재호 KT 미디어플랫폼 사업본부장은 4일 열린 IPTV 3대 혁신 서비스 발표 기자간담회에서 "VR 사용자 경험을 분석한 결과 고객은 이용시간의 80%를 방송이나 VOD 등 동영상 콘텐츠를 보는데 썼고, 게임은 20%에 불과했다"며 "평일 1시간 이상 이용 고객이 절반 이상, 주말 2시간 이상 이용 고객이 60~70%인데 VR기기에 IPTV를 접목하면 VR 대중화도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LG유플러스는 2020년 1분기 AR글래스에 관심 있는 국내 개발자 대상 ‘엔리얼 테크 데이’ 행사를 개최하며 AR글래스 생태계 조성에 힘쓴다. AR글래스 관련 앱 개발이 가능한 소프트웨어개발키트(SDK)를 설명하고, 개발자 지원 프로그램을 선보일 예정이다.

송대원 LG유플러스 미래디바이스담당 상무는 21일 기자간담회에서 "기존 AR글래스 제품은 가격이 비싸 시장 진입에 어려움이 있었다"며 "엔리얼과 제휴해 AR글래스 대중화에 나설 것이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