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이 우리의 삶을 깊숙이 파고든다. 예술 분야도 피해 갈 수 없다. AI 화가가 그림을 그리는 시대다. 저명한 인간 작가보다 AI 화가의 작품이 화제를 모으며 더 높은 가격에 거래되기도 한다. 누군가는 ‘AI ART’ 등장에 우려의 시선을 보낸다. 또 누군가는 인간의 창작 세계를 넓히는 데 AI가 도움을 준다고 말한다. AI 창작으로 예술 분야의 가치와 영향력이 커진다는 주장도 있다. 예술계에 부는 새로운 AI 바람을 [AI ART 예술의 의미를 묻다] 시리즈로 인사들의 기고를 준비했다. [편집자주]


⑧이광희 박사 "AI 화가에게 예술적 창의성이란?"

2015년 Leon A. Gatys가 발표한 AI의 대표적인 화풍 변환 기술인 ‘뉴럴 스타일 트랜스퍼(Neural Style Transfer)’를 시작으로 AI를 통한 예술 작품 창작 알고리즘 연구가 뜨겁다. 스타일 트랜스퍼는 변환하고자 하는 대상인 콘텐츠와 특정 화풍의 스타일 이미지를 입력받아 새로운 작품을 내놓는 기술이다. 이때 AI는 콘텐츠 이미지 구조는 유지하되 스타일 이미지의 화풍을 입히도록 학습한다.

2016년 출시한 대표적인 페스티쉬(Pastiche) 애플리케이션(앱) ‘프리즈마’는 최근 5000만 다운로드를 돌파한 상태다. 여러 유사 앱도 해외에 출시됐다. 한국의 AI 아트(Art) 스타트업 펄스나인의 ‘페인틀리’와 ‘이메진AI’도 스타일 트랜스퍼 기술로 AI 아트에서 다양한 시도를 해간다. 최근에는 극사실주의 화가인 두민 작가와 AI 화가인 이매진 AI가 협업으로 ‘코뮌 위드(Commune with…)’를 내놨다. 인간과 AI가 함께 완성한 첫 그림으로 화제를 모은다.

또 다른 AI 이미지 자동 생성 모델로는 ‘GAN(Generative Adversarial Networks)’이 있다. 2014년 신경정보처리시스템 학회(NIPS)에서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학습 데이터와 유사하게 분포한 이미지 생성을 위해 생성자(Generator)와 판별자(Discriminator) 두 개의 모델이 학습으로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며 고도화하는 모델이다.

2018년 10월 AI 화가 ‘오비우스’가 그린 ‘에드몽 드 벨라미’ 작품이 미국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43만2000달러(4억9300만원)에 낙찰돼 세상을 놀라게 했다. 컴퓨터 알고리즘으로 제작한 초상화가 경매에 나와 팔린 것은 그림 경매사 250년 만에 처음이다. 이 작품도 14~20세기 사이에 그려진 초상화 1만5000개를 토대로 GAN 학습으로 만들어졌다.

AI가 학습 데이터와는 다른 새로운 작품을 창작했다고 보는 시각이 있다. 하지만 학습 데이터조차 사람에 의해 수동적으로 선택됐다는 점에서 AI의 창의성을 부정하는 시각도 있다. 학습에 사용된 작품의 종류와 주제를 사람이 한정했을 뿐 아니라 그림을 그리기 위한 학습 모델도 사람에 의해 선택됐기 때문이다. 다소 추상적으로 보이는 결과도 GAN 성능의 한계를 보여준다는 평가가 있다.

스타일 트랜스퍼도 기존의 화풍을 그대로 모방하며 작품의 콘텐츠와 스타일 이미지를 사람이 선택한다는 점에서 독창적으로 보기에 다소 무리가 있다. 코뮌 위드도 두민 작가의 주도적인 기획 하에 펄스나인의 이메진 AI가 협업한 사례다. 코뮌 위드 작품 간담회에서 이메진 AI의 창의성 유무가 가장 많은 질문을 받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위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 AI 화가의 그림은 인간이 선택한 콘텐츠와 기존의 화가가 창작한 작품으로 다양한 기술을 모방하는 것에 그친 상태다. 하지만 예술가는 살아오면서 겪은 경험과 생각으로 작품의 주제와 대상, 표현 방식을 주체적으로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왜 그렸는지 스토리도 존재해야만 한다.

AI 화가가 사람처럼 창작해야만 작가로 인정할 수 있다는 의견에는 논쟁의 여지가 있다. 필자는 인간의 창의적인 영감을 지닐 수 있는 AI 화가를 생각한다. 인간 기준에서 창의적인 작품을 창작할 AI 화가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어떤 조건이 필요할까?

필자가 AI 엔지니어 입장에서 바라봤을 때 창의적인 AI 화가가 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첫째는 사람이 어려서부터 보고 듣고 경험하면서 학습으로 영감을 얻게 되는 것과 유사한 메커니즘이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AI는 사람이 선택한 데이터를 활용해 학습한다. 그림의 대상과 주제도 정해줘야 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AI 화가 에이전트를 인터넷 환경에 던져놓고 스스로 무작위적인 데이터를 수집하도록 도와야 한다. 처음엔 이렇게 수집하지만 데이터가 점차 수집되면 적절한 탐색과 이용을 스스로 하게 되면서 각각의 에이전트가 서로 다른 선호 분야를 나타내게 될 것이다. 수집된 데이터를 이용해 콘텐츠 생성 모델을 학습하면 에이전트가 스스로 그림의 주제나 콘텐츠, 추상화 정도를 선택해 만들 수 있게 된다.

두 번째로는 새로운 화풍을 창조하는 메커니즘이 되겠다. 일반 창작은 많은 예술 작품을 보고 모방하면서 시작된다. 예술 창조를 연구한 미국의 심리학 교수 콜린 마틴데일의 이론에 따르면 새로운 스타일의 작품을 만들 때 필요한 조건은 두 가지다. 새롭게 나온 작품은 기존에 존재하는 스타일의 분류 중 하나로 분류될 수 없어야 한다. 동시에 새로운 작품이 예술 작품이라고 부르는 형태를 지니고 있어야 한다.

이 이론에 착안해 페이스북 AI 팀은 새로운 스타일의 그림을 그리는 ‘CAN(Creative Adversarial Networks)’을 제안했다. CAN은 GAN과 유사한 메커니즘으로 학습하지만 예술성을 유지하면서 학습 데이터와는 다른 창조적인 작품을 생성하는 데 차이점을 둔다. 기존 작가의 기법을 모방해 새로운 스타일의 작품을 생성하는 CAN 방식은 추상화의 경우 비교적 좋은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위대한 화가처럼 예술적 창의성이란 관점에서 독창적인 기법이나 스타일이라는 평가를 받는 작품을 창작하지는 못했다. 학습 데이터 선택을 사람이 해야만 하기에 진정한 의미에서의 창조라고 볼 수도 없다.

AI 화가 에이전트는 새로운 화풍을 창조하고자 기존 예술 작품을 인터넷상에서 기존의 방식으로 수집할 수 있다. 기존 화풍을 모방하고자 마치 알파고 제로가 스스로 데이터를 생성했듯 스타일 트랜스퍼 같은 방식으로 다양한 그림을 지속해서 생성해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지속해서 생성한 그림도 에이전트마다 고유의 확률 분포를 갖게 된다. 이렇게 생성된 다양한 그림을 이용해서 AI 에이전트만의 새로운 화풍 변환 모델의 학습이 완료되면, AI 화가 에이전트는 스스로 경험하고 수집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자신만의 콘텐츠를 생성할 수 있다. 서로 다른 AI 화가 에이전트가 각자 독창적인 작품을 창작할 수 있게 되면 인간 화가와의 협업뿐 아니라 AI 화가 간의 협업을 통한 전시도 가능해질 예정이다.

AI 화가의 창의성과 독창성이 인간이 생각하는 화가의 범주에 들어야만 인정할 수 있다는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다. 예술 분야에서 AI 아트는 새로운 장르로서 존재 할 수 있다. 인간 창의력과 AI 기술을 하나의 도구로 사용하는 일도 충분히 매력적이다. 머지않아 인간 고유의 영역이라 믿어왔던 예술적 창조마저도 AI에 극복될 것이라는 상상을 해본다.

※ 외부필자 원고는 IT조선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광희 박사는 보잉한국기술연구소(BKETC)의 시니어(Senior) AI 기술자(Technologist)로서 항공 분야 AI 연구를 수행한다. AI 스타트업 펄스나인의 기술 자문으로도 활동한다. 2018년 인공지능연구원(AIRI) 연구원으로 재직 당시 AI 창작 도구인 ‘A.I. 아틀리에’ 개발을 총괄했다. 이를 활용한 미술 전시인 ‘AI 시대의 예술작품’도 기획했다. 삼성메디슨과 토비스 책임연구원을 역임했다. 서강대 영상대학원에서 미디어공학으로 석・박사를 졸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