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투자 늘리고 요금도 내리면 남는게 있나요?

입력 2019.11.30 07:17

"5G 투자는 늘리고, 요금은 내려주세요."

최기영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29일 열린 조찬간담회에서 이통3사 CEO를 만나 요청한 내용을 압축한 문장이다. 정보통신 정책을 이끄는 수장으로서 할 수 있는 얘기다. 기업의 투자를 장려하고, 국민의 가계통신비 부담을 줄이겠다는 순수한 의도로 풀이된다.

하지만 최 장관이 이통업계의 전후 상황을 충분히 살펴본 후 이런 요청을 한 것인지 의문이 생긴다. 5G 상용화 이후 이통3사의 실적은 암울 그 자체다. 3분기 합산 영업이익은 7705억원이다. 2018년 3분기 대비 14.6% 줄었다. 5G 설비투자(CAPEX)와 마케팅비가 급증한 탓이다. 개선 여지가 보이지 않아 더 문제다. 2020년에도 2019년 대비 비슷하거나 더 많은 비용을 지출해야 한다.

현장에서 만난 이통업계 한 관계자는 "이런 상황에서 투자를 늘리고 요금을 내리면 남는 게 있겠냐"고 토로했다. 하지만 이같은 이통업계의 호소도 ‘그동안 폭리를 취했다가 앓는 소리를 하는 것’이라는 논리에 압도 당하고 만다.

현재 5G 최저가 요금은 5만5000원이다. 데이터 8G~9GB를 제공한다. 최 장관의 의중대로 3만~4만원대 5G 요금제가 나오면 이보다 적은 데이터를 제공해야 하는 상황이다. LTE 대비 더 많은 데이터를 소비하는 5G 서비스 특성상 실효성이 없다. 결국 기존 요금의 데이터량은 늘리되, 신설할 중저가 요금제에 8GB쯤을 제공하는 게 과기정통부가 그린 그림으로 보인다.

그런데 현 5G 요금 체계도 과기정통부가 그린 그림이다. 과기정통부와 SK텔레콤은 5G 상용화 이전인 3월 중저가 요금제 구간 설정을 놓고 팽팽한 줄다리기를 한 바 있다. 빠듯한 상용화 일정 때문에 과기정통부가 한발 물러섰다. SK텔레콤이 최종적으로 내놓은 5만원대 요금을 중저가로 해석하며 인가를 내줬다. 5만5000원짜리 요금에서 25% 선택약정할인을 받을 경우 4만원 초반대가 된다는 점이 강조됐다. 이통사 입장에선 과기정통부가 이제와서 딴소리를 한다고 느껴질 수밖에 없는 셈이다.

이통3사 CEO는 최 장관에게 5G네트워크 구축에 따른 경영 압박이 있지만 중저가 요금제가 나올 수 있도록 고민하겠다고 답했다. 과기정통부 모 관계자에 따르면 답을 이미 정해놓은 장관 앞에서 ‘아직은 안 됩니다’라고 호기롭게 반대 의견을 꺼내들 수 있는 CEO는 없을 것이다.

이통사 CEO의 솔직한 답변은 박정호 SK텔레콤 사장의 입에서 먼저 나왔다. 간담회에 앞서 취재진을 만난 박 사장은 첫 마디부터 ‘시기상조’라는 표현을 꺼냈다. 아직 가입자가 적고 망 구축에 많은 비용이 들어간다는 것이다. 보편적 서비스로 거듭나지 않았는데, 중저가 요금제 출시는 불가능하다는 반대 의사를 명확히 했다.

이통업계에선 벌써부터 2020년 4월 총선이 요금 인하의 기점이 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통신뿐 아니라 많은 산업 분야에서 국회의원 후보자들의 선심성 공약이 쏟아지는 시기다. 과기정통부가 중저가 5G 요금제 신설의 불씨를 당긴 가운데, 국회도 덩달아 기름을 부을 가능성이 높다. 이통사가 여론에 못이겨 울며겨자먹기로 중저가 요금을 내놓게 될 것이 유력하다.

세계 최초 5G 상용화라는 정부의 빛나는 성과는 이통업계의 부단한 노력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이통사가 2018년 대비 100% 이상 설비투자를 늘리고 마케팅에 더 많은 돈을 쏟아부어 수확한 결실이다. 과기정통부가 이통사를 국가 5G 경쟁력 강화를 위한 동반자로 생각한다면 요구사항뿐 아니라 애로사항도 들어줄 수 있어야 한다.

박 사장에게 "가입자 1000만명이면 중저가 요금을 낼 수 있냐"고 묻자 "잘 생각해 보시라"며 여운을 남겼다. 5G 대중화 기준을 1000만 가입자로 잡더라도 성에 차지 않는다는 의미로 들렸다. 요금 인하 시점이 언제가 적절할 지 과기정통부도 잘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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