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스포츠계 만연한 불공정 계약 암시한 '카나비 노예계약' 논란

입력 2019.12.02 17:33 | 수정 2019.12.02 18:17

김대호 전 그리핀 감독, 서진혁 선수 이적 과정에 의혹 제기
논란 끝에 서 선수는 다행히 FA 신분으로 징동과 1년 계약
LCK 운영위 "현행 계약서 전수조사·LCK 표준 계약서 제작할 것"
이 사건은 ‘빙산의 일각’일 수도…하태경 의원실에 다수 제보 들어와
이동섭 의원 등 15人, ‘KeSPA 표준 계약서 제정’ 포함 법률 개정안 발의

최근 e스포츠계가 ‘카나비 노예계약’ 사건으로 연일 북새통이다. e스포츠 업계는 그간 만연한 불공정 계약의 문제가 터진 것이라며 이참에 근본적인 개선책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를 냈다.

‘5년 노예계약’ 논란 끝에 자유계약(FA) 신분으로 풀려 징동게이밍으로 1년 계약을 맺고 이적하는데 성공한 ‘카나비’ 서진혁 선수. / 징동게이밍 제공
이 사건은 대표 e스포츠 종목 중 하나로 꼽히는 라이엇게임즈의 ‘리그 오브 레전드’ 프로 게임 무대에서 발생했다.

10월 16일, 김대호 드래곤X 감독(전 그리핀 감독)은 개인 방송에서 조규남 그리핀 전 대표가 소속 선수 ‘카나비’ 서진혁 선수를 ‘템퍼링’을 했다는 말로 협박해 중국 구단에 이적시키려고 했다고 주장했다. 서진혁 선수의 나이는 만 18세로, 미성년자다.

템퍼링은 ‘사전 접촉’을 의미하는 용어다. 정식 협상 기간 이전에 게임단이 선수에게 접촉하여 선수를 설득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보통 선수·구단 보호 차원에서 엄격히 금지하는 행위로, 위반 시 중징계를 받게 된다. 라이엇게임즈는 2015년 6월부터 국가 간 템퍼링도 금지하고 있다.

김 감독 주장을 정리하면 이렇다. 이적 선수 신분이던 서진혁 선수를 중국 게임팀 징동게이밍(JDG)으로 완전 이적하도록 추진하는 과정에서 그리핀이 서진혁 선수에게 5년 장기 계약을 강요했다는 것이다.

김 감독은 장기 계약을 강요한 이유는 8억원이 넘는 거액의 이적료 때문이었고, 이 과정에서 조규남 전 대표가 서진혁 선수를 템퍼링했다는 말로 협박했다고 주장했다.

e스포츠 업계는 특성상 선수 생명이 길지 않아 5년 계약은 ‘노예 계약’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치명적이라는 반응이 많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표한 '2018 e스포츠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프로 선수 평균 연령 20.8세 현역 선수 평균 프로 경력은 2.8년이다.

11월 20일 방송에서 그리핀 구단 모기업 ‘스틸에잇’ 입장문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밝히는 김대호 전 그리핀 감독의 모습. / 씨맥 유튜브 갈무리
다만, 조규남 감독은 스포츠조선과의 인터뷰에서 서진혁 선수가 템퍼링 행위를 한 것이 맞다고 주장하며 추가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그는 해당 인터뷰에서 "9월 19일 서진혁 선수는 타 선수의 도움을 받아 징동과 연봉·4년 계약에 관한 협의를 이미 마친 상태였다"며 "이에 대한 증거와 녹취는 탬퍼링 사실 확인을 위한 새 자료로 라이엇에 제출하고, 서진혁과 김대호 전 감독을 형사 고소하면서 증거자료로 경찰에도 제출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 "프로 구단 그리핀의 모기업인 ‘스틸에잇’과 징동게이밍은 이적에 관한 계약을 아직 하나도 체결하지 않아 협의 단계다"라며 "아직 계약이 이뤄지지 않았으니 당연히 이적료는 단 한 푼도 받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리핀 구단의 모기업 ‘스틸에잇’ 로고. / 스틸에잇 제공
하태경 바른미래당 의원은 이번 사건에 관심을 보이고, 여러 차례 해결하려 시도했다. 그는 11월 20일 사건 조사 결과를 발표해 그리핀과 로펌·에이전트가 결탁하고 선수를 중국에 넘기려 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의원실 측은 "‘비트’라는 로펌이 카나비 선수의 법률 대리인이고, 키앤파트너스라는 에이전시도 함께 운영하는 것으로 밝혀졌다"며 "다만 서진혁 선수와 부모님은 회사 관계자와 접촉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의원실은 또 "비트가 구단의 법률자문로펌이면서 소속 선수의 법률대리인이 되는 비정상적인 계약은 변호사법 제31조 ‘쌍방대리금지법’ 위반이다"고 덧붙였다.

다행히 서 선수 피해를 없을 전망이다. LCK운영위원회는 11월 27일에 서진혁 선수가 자유계약(FA) 신분이 됐다고 전하고, 이번 사건 관련 추가 입장과 조치 사항을 발표했다. 운영위는 그리핀에 징계를 내렸다. 서진혁 선수는 28일 징동게이밍과 1년 단기 계약을 맺고 정식 이적했다.

운영위는 선수 이적을 협의하는 과정에서 강요나 협박이 있었는지에 대해 수사기관에 수사를 의뢰할 계획이다. 이에 더해 후속 조치로 1부 리그 ‘LCK’와 2부 리그 ‘챌린저스’ 소속 모든 선수의 유효한 계약서에 대해 전수조사를 진행하고, 외부 법률 자문을 받아 LCK 표준계약서를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서진혁 선수가 FA 신분을 취득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 이유에 대해서 운영위는 "해당 선수를 둘러싼 임대·이적 신분의 복잡한 관계와 국내·국제법을 모두 살펴야 하는 등 어려움이 있었다"고 밝혔다.

LCK 운영위가 27일 발표한 사항 중 일부. / 리그 오브 레전드 홈페이지 갈무리
업계와 이용자 사이에서는 서진혁 선수 사태가 좋게 마무리되더라도 차후 이러한 논란이 재발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실제로 국민일보 1일 보도에 따르면, 한국e스포츠협회(KeSPA)가 작성해 프로게임단에 제공하는 표준계약서에도 불공정 조항이 다수 존재한다.

▲구단이 선수 동의 없이도 이적시킬 수 있는 조항 ▲이적 뒤 재계약이 불가능한 조항 등이 대표적이다. 국민일보는 보도에서 "선수들의 권익을 보호해야 할 협회가 불공정 계약을 장려해 논란이 예상된다"고 전했다.

하태경 의원의 모습. / 하태경 의원 페이스북 갈무리
이른바 ‘카나비 구출작전’에 힘써 온 하태경 의원은 페이스북을 통해 "이번 사건을 통해 e스포츠 업계에 만연한 불공정 계약을 알게 됐다"며 "유사한 사건 재발을 막기 위해 구조화된 불공정 계약 문제를 근본적으로 뜯어고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조만간 e스포츠 선수들의 권익 보호를 위한 제도 개선 방안 토론회를 열고, 새 제도를 만들고 집행할 책임이 있는 정부관계자와 LCK 운영위원회, 한국e스포츠협회 등 관계자를 초청할 예정이다"라고 덧붙였다.

하태경 의원실에는 다른 불공정 계약 사례 제보도 다수 들어온다. 단순 ‘썰’이 아니라 구체적 증거도 첨부한 제보도 많다.

IT조선과의 통화에서 의원실 측은 "전부 ‘그리핀 사건’처럼 상세하게 검토하지는 못했지만, 타 리그 오브 레전드 구단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있다는 제보를 다수 받았다"며 "‘차라리 리그 규모가 큰 롤(LOL)은 그나마 양반이다’라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다른 게임의 경우에는 상황이 더 심각할 수 있다"고 전했다.

하태경 의원실 측은 주요 e스포츠 종목인 리그 오브 레전드는 그나마 ‘양반’일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 라이엇게임즈 제공
다만 해당 제보를 전부 공개하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하태경 의원실 측은 "e스포츠 업계가 매우 좁기 때문에, 해당 제보를 공개한다면 제보자가 특정된다는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며 "공개로 인한 피해를 의원실에서 전부 보호하기는 어려운 탓에 제보를 참고 자료로만 활용하는 경우가 많은 실정이다"라고 밝혔다.

하태경 의원실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공정위 등 일부 정부 기관에서 전수조사를 하겠다는 의지도 보이고 있다"며 "기관의 경우 처음에는 협조적인 태도를 보이지는 않았지만 계속해서 증거 자료를 제시하자 문제를 인식하고 점점 적극적으로 협조하는 상황이다"라고 설명했다.

이동섭 바른미래당 의원 등 15명 의원은 10월 22일 ‘e스포츠 진흥에 관한 법률’에 제7조의2를 신설하는 개정안을 발의했다. 해당 안은 문체부가 공정위와 협의하고 이해관계자와 전문가 의견을 들어 e스포츠 표준계약서를 마련해야 한다는 조항을 담았다.

이동섭 의원 등이 발의한 법률 개정안 중 일부. / 이동섭 의원실 제공, 편집=오시영 기자
이동섭 의원실 측은 "케스파 표준 계약서를 국내 구단에서 많이 사용하는 실정인데, 이 내용은 불공정한 계약 내용을 담고 있다"며 "이는 e스포츠 시장이 20년 역사 동안 양적으로는 크게 성장했지만, 질적으로는 그만큼 성장하지 못했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다"라고 진단했다.

의원실 측은 또 "e스포츠 초기 시절부터 이런 문제가 만연했지만, 당시 여건 상으로 이를 문제삼기 어려워 유야무야 넘어갔던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이동섭 바른미래당 의원의 모습. / 이동섭 의원 페이스북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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