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노버’하면 으레히 ‘씽크패드’ 시리즈로 시작되는 노트북 및 PC 제품군을 떠올린다. IBM으로부터 PC 및 서버 사업 부문을 인수한 이후로 여전히 글로벌 3대 PC 브랜드 중 하나로 탄탄한 입지를 자랑한다.

그러한 레노버가 본격적인 ‘스마트 기술 기업’으로 거듭나고있다. 기존의 PC 및 컴퓨팅 부문을 비롯해 데이터센터, 클라우드, 사물인터넷(IoT), 인공지능(AI) 등의 영역까지 범위를 확대하고 있다. 자사의 하드웨어 역량을 바탕으로 일반 컨슈머 시장에서 커머셜 시장, 공공 분야에 이르는 거대한 스마트 생태계를 구축한다는 것이 레노버의 목표다.

베이징 중관촌에 위치한 ‘레노버 캠퍼스’ 외부 모습. / 베이징(중국)=최용석 기자
베이징 중관촌에 위치한 ‘레노버 캠퍼스’ 외부 모습. / 베이징(중국)=최용석 기자
11월 중국에서 열린 ‘레노버 테크월드 2019’ 행사의 일환으로, ‘레노버 베이징 캠퍼스(이하 레노버 캠퍼스)’를 방문했다. 이 곳은 레노버의 새로운 본사이자 ‘스마트 진화’의 산실로 새로운 기술 및 제품의 연구개발, 디자인 등을 추진하는 미래 전략의 핵심기지다.

레노버 캠퍼스는 2018년 10월 중국의 실리콘벨리라 할 수 있는 베이징시 북서쪽 중관촌 소프트웨어 파크에 오픈했다. 바이두, 텐센트 등 중국을 대표하는 IT 기업들을 이웃에 두고 있다. 동관과 서관 2개 건물로 구성된 레노버 캠퍼스는 총 12만 평방미터(㎡) 면적에 연구개발 인력을 중심으로 약 1만여명의 직원이 근무 중이다.

레노버 스마트 기술의 핵심인 인공지능(AI), 제품의 완성도를 결정하는 디자인 전략을 확인하고, 다양한 산업 분야에 걸친 ‘스마트 혁신’의 성과 및 결과물을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하드웨어+소프트웨어 장점 살린 레노버의 AI 부문

오늘날 각종 스마트 기술에서 AI는 절대로 빠질 수 없는 기술이다. 이곳 레노버 캠퍼스의 가장 핵심 연구개발 분야이기도 하다. 특히 음성 인식과 자연어 인식, 비전 컴퓨팅 기술에 기반한 안면 인식, 물류 및 유통 등을 위한 공급 체인 분석 등의 AI 연구개발에 집중하는 모양새다. 이는 레노버의 기존 주력 부문 중 하나인 POS 시스템을 비롯해 최근 사업을 확장 중인 IoT, 스마트 가전, 무인 매장 시스템 등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AI 연구개발을 위해 레노버는 다양한 분야의 비즈니스 파트너는 물론, 인근에 위치한 베이징대와 칭화대를 비롯한 세계 각국의 유명 대학들과의 긴밀한 산학협력을 진행하고 있다.

페이유 주(Feiyu Xu) 박사가 레노버의 AI 전략을 소개하고 있다. / 베이징(중국)=최용석 기자
페이유 주(Feiyu Xu) 박사가 레노버의 AI 전략을 소개하고 있다. / 베이징(중국)=최용석 기자
레노버 그룹 부사장 겸 AI 연구소 책임자인 페이유 주(Feiyu Xu) 박사는 레노버가 2017년부터 AI 부문의 연구개발을 강화했다고 밝혔다. 2년 사이에 전 세계 92개 대학교와 AI 연구개발을 위한 산학협력을 맺고, 35개에 달하는 관련 논문을 학계에 발표하는 등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고 덧붙였다.

특히 연구개발에 필요한 데이터의 수집과 분석에는 레노버의 하드웨어 솔루션 중심으로 구성된 자체 데이터센터와 클라우드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시너지를 극대화했다.

주 박사는 "레노버 AI의 차별점은 설명 가능한 인공지능, 광범위한 지식 기반, 다양한 모델 및 상호작용,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사람과 기계의 결합을 가능케 하는 것"이라며 "이는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를 모두 갖춰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레노버라서 가능하다"고 말했다.

5년 앞 미래 내다보는 레노버의 ‘디자인 전략’

레노버 캠퍼스는 모든 레노버 제품 디자인의 산실이기도 하다. 레노버는 이곳 베이징 캠퍼스를 비롯해 미국과 일본, 홍콩 등 전 세계 4곳의 디자인 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서로 다른 네 곳의 디자인 연구소가 서로 유기적으로 연계, 각 지역 소비자들의 수요와 트렌드 정보를 공유하고 협업함으로써 글로벌 시장에서 통하는 제품 디자인을 만들어낸다는 설명이다.

안드레아 슙 레노버 디자인 디렉터는 최대 5년 앞까지 내다보는 자사 디자인 전략을 소개했다. / 최용석 기자
안드레아 슙 레노버 디자인 디렉터는 최대 5년 앞까지 내다보는 자사 디자인 전략을 소개했다. / 최용석 기자
이번 행사에는 안드레아 슙(Andreas Schupp) 레노버 디자인 부문 및 경험디자인 그룹 디렉터가 강연자로 나서 자사의 디자인 역사와 철학, 미래 전략 등을 소개했다. 그는 "오늘날 IT 기기와 기술을 자연스럽게 생활의 일부로 활용하거나 개성 표현의 수단으로 삼는 ‘디지털 네이티브’ 혹은 ‘Z세대(Gen Z)’라고 불리는 1996년~2010년대 80년대생 소비자들이 핵심 소비층으로 떠올랐다"며 "최근 레노버의 디자인 전략도 이들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단순 기능적인 요소나 외형은 물론, 색상과 소재까지 고려해야 하고, 나아가 사용자의 ‘실제 경험’ 등 더욱 다양한 요소를 고려해야 한다는게 그의 설명이다.

소비자들의 수요와 업계 트렌드를 조사하고, 이러한 데이터를 기초로 소재와 색상, 사용 편의성 등을 고려하며,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제품을 디자인하는 과정 차제는 레노버도 다른 제조업체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여기에 레노버만의 추가적인 디자인 전략이 있다고 슙 디렉터는 강조한다.

그는 "레노버 디자인 철학의 특징은 향후 5년의 디자인 트렌드를 미리 전망 및 예측하고, 다시 되짚어보는 방식으로 ‘바로 다음 세대’에서 필요한 ‘디자인 혁신’을 구현한다"며 "다른 경쟁사들에 비해 한 발 앞선 디자인 기술과 제품을 선보일 수 있는 것도 출발점부터 한 발 이상 앞서 있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레노버 퓨쳐 센터’내에 구현한 스마트 거실의 시연 모습. 모바일 기기, 스마트 기기를 통해 검색한 콘텐츠를 TV로 재생하고, 벽면의 ‘스마트 월’로 콘텐츠 관련 정보를 동시에 제공한다. / 베이징(중국)=최용석 기자
‘레노버 퓨쳐 센터’내에 구현한 스마트 거실의 시연 모습. 모바일 기기, 스마트 기기를 통해 검색한 콘텐츠를 TV로 재생하고, 벽면의 ‘스마트 월’로 콘텐츠 관련 정보를 동시에 제공한다. / 베이징(중국)=최용석 기자
첨단 기술 성과를 한눈에…레노버 퓨쳐 센터

레노버는 이러한 AI 기술과 그에 기반한 스마트 테크놀로지의 성과를 확인할 수 있는 체험관 ‘레노버 퓨쳐 센터’를 캠퍼스 내에 마련했다. 입구에서부터 방문자의 표정을 분석, 감정 상태를 색상 조명으로 표현하거나, AI안내 시스템이 인솔자의 자연스러운 말을 즉시 이해하고, 실제 사람처럼 대답하는 모습이 돋보였다.

레노버 퓨쳐 센터는 일반 가정, 사무실, 제조업, 에너지, 헬스케어 등 다양한 산업 분야에 걸쳐 AI 기술과 이에 융합된 각종 하드웨어, 스마트 디바이스, IoT 장치들이 어떻게 연계되고 작동하는지 실제 사례 형태로 시연해서 보여준다.

특히 거실과 침실, 주방 등으로 구성된 ‘스마트 가정’은 개인용 스마트 기기와 TV 및 냉장고 등 각종 스마트 가전, 각 방 한쪽 벽을 통째로 차지하는 ‘스마트 월’ 등이 사용자의 명령에 실시간으로 반응하고, 자연스럽게 데이터를 주고받는 모습이 인상깊다. 레노버 브랜드의 로봇청소기, 공기청정기, 디지털 도어락 등 각종 스마트 가전들도 눈에 띄었다.

레노버의 가장 기본이자, 각종 스마트 사업의 근간이 되는 컴퓨팅 솔루션, 데이터센터 솔루션 등도 소개한다. 일반 소비자용 기기부터 서버 및 슈퍼컴퓨터까지, 엣지단에서부터 데이터센터 및 클라우드로 이어지는 모든 데이터 기반 디지털 비즈니스를 레노버의 울타리 안에서 해결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엿보인다.

레노버 퓨처 센터에 설치된 2대의 ‘칵테일 제조 로봇’이 주문을 받아 즉석에서 칵테일을 제조하는 모습. / 레노버 제공
레노버 퓨처 센터에 설치된 2대의 ‘칵테일 제조 로봇’이 주문을 받아 즉석에서 칵테일을 제조하는 모습. / 레노버 제공
‘새로운 트렌드 만든다는 자신감’이 ‘스마트 진화’의 비결

그 외에도 레노버 캠퍼스의 로비에 설치되어 실제로 운영 중인 ‘자율형 무인 매장’도 인상깊었다. 상주하는 직원 없이 운영이 가능하다는 개념 자체는 아마존의 무인 매장 ‘아마존고’와 최근 국내에 오픈한 ‘이마트24 셀프매장’과 비슷하지만, 실제 구현 방식은 조금 달랐다.

레노버의 무인 매장에 입장하려면 입구의 카메라에 얼굴을 인식시켜야 한다. 들어서면 바로 인식해 문이 열리는 수준으로 멈추거나 기다릴 필요 없이 자연스럽게 입장할 수 있다. 상품 출고 및 결제는 완전 자동은 아니다. RFID 태그가 부착된 상품을 계산대에 놓으면 자동으로 인식해 결제할 금액이 표시된다.

레노버 캠퍼스 로비에서 운영 중인 자율형 무인 매장. 널리 쓰이는 기술만으로 무인 매장 시스템을 구현한 점이 돋보인다. / 베이징(중국)=최용석 기자
레노버 캠퍼스 로비에서 운영 중인 자율형 무인 매장. 널리 쓰이는 기술만으로 무인 매장 시스템을 구현한 점이 돋보인다. / 베이징(중국)=최용석 기자
계산은 현금이나 카드, 특정 결제수단 대신 중국 내에서 이미 널리 쓰이는 알리페이, 위챗페이 등을 이용한다. 자연스럽게 들고 나가면 결제까지 자동으로 끝나는 ‘편리함’은 없지만, 입장할 때 얼굴을 등록하고 결제가 안되면 나갈수가 없기 때문에 상품 도난에 대해서는 오히려 안전해 보였다.

특히 상품 인식을 위한 비전 컴퓨팅, 이용자의 동선 인식 등 이제 막 실용화 단계에 들어선 복잡한 고급 기술 없이도 바로 상용화 가능한 수준의 무인 매장을 구현한 점이 인상깊다. 생체인식(안면인식), 사물인터넷, 모바일 결제 등 이미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기술만으로 무인 매장을 운영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레노버 캠퍼스를 둘러본 전반적인 느낌도 비슷했다. 미래를 내다 보고 각종 첨단 기술과 제품 개발에 투자와 역량을 집중하는 동시에, 당장 지금의 제품이나 서비스에도 미래 기술로 얻는 장점과 혜택을 최대한 반영함으로써 소비자들의 ‘기대감’을 높이려는 모습이 눈에 띈다. 스스로 트렌드를 만들고 이끌어가려는 모습이 두드러진다.

이는 충분히 특정 분야에서 앞선 기술력을 갖추고 있으면서 새로운 시장 개척에는 소극적이거나 수동적인 국내 기업들과는 다른 모습이다. 세계 3대 PC·컴퓨팅 전문 기업에서 ‘스마트 디바이스/서비스 전문기업’으로 변신을 선언하고, 거침없이 추진하는 행보는 레노버 스스로가 ‘트렌드를 만들고 이끌 수 있다’라는 자신감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레노버 창립 35주년 기념관에 마련된 레노버 PC 역사관의 모습. / 베이징(중국)=최용석 기자
레노버 창립 35주년 기념관에 마련된 레노버 PC 역사관의 모습. / 베이징(중국)=최용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