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위원회가 국내·외, 대·중소 콘텐츠 사업자와 인터넷서비스 제공사업자(ISP) 간 공정한 망 이용계약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가이드라인을 공개했다. 망 이용계약 과정에서 글로벌 CP가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접속경로를 변경하는 등 이용자 이익을 침해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가이드라인은 법령 해석의 기준이 될 수 있지만 법적 구속력은 없어 실효성 논란도 제기된다.

방통위는 5일 오후 2시 국회 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서 ‘공정한 인터넷망 이용계약에 관한 가이드라인(안)’을 공개하고 의견을 청취하기 위한 공청회를 개최했다. 제1기 인터넷 상생발전협의회는 관련 가이드라인 제정을 방통위에 제안했고, 방통위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2018년 11월부터 공동 연구반을 구성해 가이드라인 마련해왔다.

토론회는 변재일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의원(더불어민주당), 김성태 의원(자유한국당)과 방통위가 공동 개최한다.

김성태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의원(자유한국당)이 5일 오후 2시 국회 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서 열린 ‘공정한 인터넷망 이용계약에 관한 가이드라인(안)’ 공청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이광영 기자
김성태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의원(자유한국당)이 5일 오후 2시 국회 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서 열린 ‘공정한 인터넷망 이용계약에 관한 가이드라인(안)’ 공청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이광영 기자
CP 망 이용계약 시 불공정 행위 방지 초점…접속경로 변경 고지 의무 부과

가이드라인은 망 이용 대가에 직접 개입하기보다는 망 이용계약의 원칙과 절차를 정하고, 불공정 행위와 이용자 피해 방지에 초점을 맞췄다. 망 이용계약의 원칙과 절차, 불공정행위 유형, 이용자 보호를 주요 내용으로 한다.

상대방의 권리를 제한하는 계약은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특정계약 수용을 강요하는 경우 ▲상대방이 제시한 안을 불합리한 사유로 지연·거부하는 경우 ▲제3자와 인터넷망 이용계약을 체결·거부 등을 요구하는 경우 ▲계약 당사자가 제3자와 공동으로 상대방에게 경쟁을 제한하는 계약 조건을 제시하는 경우다.

계약 당사자는 본인이 체결한 다른 계약 조건과 비교해 상대방에게 현저하게 불리한 이용 조건을 요구하지 못하도록 했다. 이면 계약을 요구하는 등 상대방에게 불이익을 주는 조건도 설정하지 못하도록 했다.

인터넷망 이용계약 과정에서 불공정 행위 여부는 ▲인터넷망 구성 및 비용분담 구조 ▲콘텐츠 경쟁력과 사업 전략 등 시장 상황 ▲대량구매·장기구매 등에 의한 할인율 등을 기준으로 판단하도록 했다.

이용자 보호를 위해 CP에 접속 경로 변경 등 정보 제공 의무를 부과한 점이 특징이다. 제11조 콘텐츠제공사업자 등의 의무 1항에 따르면 CP 등은 자신의 책임 하에 있는 인터넷 트래픽의 경로 변경, 트래픽 급증 등으로 인해 이용자의 콘텐츠 이용에 현저히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 예상되는 경우에는 사전에 ISP에 관련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2항은 CP 등이 인터넷망 이용계약의 변경 또는 종료에 따른 이용자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한다고 명시했다.

방통위는 2018년 3월 페이스북이 서비스 접속 경로를 임의로 변경한 것이 ‘정당한 사유 없이 전기통신서비스의 가입·이용을 제한 또는 중단하는 행위’에 해당된다고 판단해 3억9600만원의 과징금 조치를 내렸다.

하지만 법원은 8월 22일 "페이스북의 접속경로 변경 행위가 전기통신서비스의 이용을 ‘지연’하거나 이용에 ‘불편’을 초래한 행위에 해당할 뿐, 이 사건 쟁점조항에서 정한 ‘이용의 제한’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며 "방통위가 페이스북에 내린 시정명령 등 처분은 위법하며 모든 제재 처분을 취소하라"고 판결했다. 글로벌CP가 접속경로를 변경하기 전에 ISP에 고지를 유도해 이용자 피해를 최소화하고 법리적 판단의 근거로 활용하기 위한 의도다.

방송통신위원회 현판. / IT조선 DB
방송통신위원회 현판. / IT조선 DB
법적 구속력 없어 국내 사업자 옥죄는 규제될까 우려

하지만 가이드라인의 법적 구속력이 없는 만큼 결국 ISP와 국내 중소CP에 새로운 규제로 작용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받는다. 글로벌CP의 경우 가이드라인을 지키지 않아도 사실상 규제할 방법이 없다. 구글, 넷플릭스의 우월적 지위 남용을 막기 위한 방안이 네이버, 카카오, 중소CP 등을 옥죄는 역효과가 날 수 있는 셈이다.

반상권 방통위 이용자정책총괄 과장은 "가이드라인 적용은 국내외 사업자 구별이 없다"며 "향후 입법의 기초나 법령 해석의 기준이 될 수 있지만 법적 구속력이 없어 글로벌CP에 대한 사실조사는 어렵다"고 말했다.

국내CP업계는 이번 가이드라인이 방통위의 의도와 달리 실효적이지 못하고 국내 사업자에게 과도한 의무를 부과함으로써 역차별을 가중시킬 것으로 본다. CP와 통신사 사이의 갈등을 고착화해 인터넷 생태계를 붕괴시킨다는 주장이다.

한국인터넷기업협회 관계자는 "실효성을 담보할 수 없고, 국내 사업자에 대한 새로운 규제로 자리매김 할 갈라파고스적 가이드라인 제정절차를 중단하라"며 "CP가 이용자에게 편리하고 혁신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도록 규제개선에 힘쓰고, 최근 CP와 통신사와 갈등관계를 원만히 해결할 수 있는 상생협력 방안을 마련할 것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방통위는 가이드라인의 향후 과제로 실질적 규준이 될 수 있도록 법체계 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다양한 이해관계자 간 의견을 듣고 조율할 수 있도록 가이드라인 관련 협의체 개설의 필요성도 언급했다.

방통위는 이후 논의 과정을 거쳐 연내에 가이드라인을 확정한다. 가이드라인이 제정되면 1개월이 지난 날부터 시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