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세계 혁신기술계 사로잡은 한국계 미국인 알렉스 정 기피 창업자

입력 2019.12.06 06:00

기피 창업자 겸 대표 이메일 인터뷰
매일 1억명이 10억개 움짤 다운로드

모바일 시대 새 소통 방법으로 각광
구글 다음으로 많이 쓰는 동영상 검색엔진
움짤계 구글서 넷플릭스로 거듭나는 중
증강현실, 게임공유 플랫폼 등 갈수록 진화
"한국 소셜미디어와 협력하고파"

한국도 나름 세계 기술혁신을 이끌었다. MP3플레이어, 온라인게임, 인터넷전화, 소셜미디어 등 꼽아보니 한국발 세계 첫 혁신이 꽤 많다. 미국을 비롯한 세계 기술산업계가 그래서 한국을 주목했고 벤치마킹도 해 글로벌한 기업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세계적으로 알려진 한국인 혁신가는 없다. 한국에만 머물러 세계 무대인 미국 시장에서 성공한 사람이 드물기 때문이다.

그 아쉬움을 그나마 한국계 미국인(코메리칸)이 달래준다. 이민을 갔거나 한국계 2세로 미국서 태어난 이들은 글로벌하며 진취적인 사고로 혁신기업을 창업해 주목을 받는다.

이들은 저마다 ‘제2의 김종훈’(루슨트테크놀로지 창업자)을 꿈꾼다. 한국 기업, 특히 혁신 창업자와 협력하기를 원한다. 정작 한국에선 낯선 인물들이다. IT조선은 이들을 찾아 틈틈이 소개하려 한다. 첫 순서는 엘렉스 정 기피 창업자다.

매년 11월 세계 혁신 창업자들이 핀란드 수도 헬싱키에 몰린다. ‘슬러시 헬싱키(Slush Helsinki)’라는 행사를 찾는다. 유럽 최대 스타트업 전시 및 컨퍼런스로 세계적인 스타트업 축제장이다.

‘슬러시 2019’엔 약 2만5000명쯤의 혁신가가 운집했다. 주요 연사 중 눈길을 끈 한국계 미국인이 있다. 기피(giphy) 설립자 겸 CEO인 알렉스 정(Alex Chung, 정승재)이다.

기피는 GIF 이미지 파일로 만든 속칭 ‘움짤(움직이는 동영상)’을 서비스하는 플랫폼이다. 유명 연예인, 스포츠 스타의 재미있는 표정과 몸동작을 담은 파일이 많다. 매일 1억명쯤이 10억개 움짤을 다운로드 한다. 그러자 구글 모회사 알파벳의 구글벤처스 등이 기피에 약 1억5000만달러(1791억)를 투자했다. 기피는 또 구글 다음으로 세계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동영상 검색 엔진으로 꼽힌다.

알렉스 정 기피 창업자 겸 대표(44)와의 인터뷰를 이메일로 진행했다.

기피(giphy) 설립자 겸 CEO인 알렉스 정(Alex Jung)./ 기피 제공
재미교포인 그는 미국 대학에서 컴퓨터공학과 철학, 그래픽 디자인을 전공했다. 그는 인텔 엔지니어로 사회생활을 시작해 MTV, 컴캐스트 등 여러 미디어 기업을 위해 일을 했다. 미디어기술자로 일하며 콘텐츠와 커뮤니케이션의 힘에 눈을 떴다. 결국 이 분야 창업으로 이어졌다.

기피 이전에도 창업이 있었다. 그것도 세개나, 또 매우 성공적으로.

GE의 차세대TV 벤처인 제네럴디스플레이(General Displays), 폐쇄형 소셜미디어서비스 더프릿지(The Fridge), 현대미술 온라인장터 아트스페이스(Artspace) 등 분야도, 사업모델도 다양했다.
특히 더프릿지(The Fridge)를 2011년 구글에 팔면서 그는 미국 기술업계에 이름을 알렸다. 비즈니스인사이더(Business Insider) 선정 ‘뉴욕 IT업계 영향력 높은 25인’ 등 그에 대한 관심이 고조됐다.

모바일 시대로 전환…"소통 방식의 변화를 읽다"

기피를 창업한 것은 2013년이다. 2009년과 2012년 사이 기술업계에 불어닥친 큰 변화에서 흐름을 읽었다. 당시는 아이폰과 페이스북이 등장한 때다.

"모바일과 소셜미디어 등장으로 비대면 소통은 급격히 늘어났지만 음성과 문자 외에 미묘한 뉘앙스 차이를 전하거나 비언어적 표현을 전달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모바일로 사람들이 수많은 대화를 나눴지만 (창업 당시) 이모티콘은 몇 천개에 불과했어요."

그는 "인간은 말과 글 외에 다양한 비언어적 방식으로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이 있지만, 기피 창업 때까지 이를 반영한 서비스는 없었다"고 설명했다.

기피에서 ‘thank you’를 쳤을 때 뜨는 콘텐츠들. 모두 3초 가량의 짧은 영상들이다./기피 홈페이지 갈무리
그는 특히 gif 파일을 검색할 엔진이 없다는 점을 주목했다. gif(Graphics Interchange Format)는 이미지 전송을 빠르게 하기 위해 압축 저장하는 방식이다. 원본 이미지 품질을 손상시키지 않으면서도 파일 용량을 원본의 40% 수준으로 줄인다.

전송 속도가 빠른데다가 간단한 애니메이션 효과까지 구현할 수 있어 호평을 받았다. iOS환경과 안드로이드, 여러 웹 브라우저에 두루 통용된다. 언어와 파일 형식에도 제약이 없다. 그런데도 당시엔 구글에서조차 gif 파일 검색이 안 됐다.

2012년 어느날 아침, 그는 매료된 gif파일을 친구에게 얘기했다. 눈으로 보여주려 했지만 구글 검색으로도 나오지 않았다. 이날이 기피 창업 출발점이 됐다.

그는 gif 파일을 검색하려는 친구들을 위해 검색엔진을 개발했다. 공유했다. 친구들은 이를 다른 이들에게 전달했다. 입소문이 났다. "기피를 만든 첫 주에 갑자기 사람이 몰려들었어요. 사이트를 다시 만들어야 했습니다." 마치 마크 주커버그의 페이스북 창업 이야기를 떠올리게 만드는 장면이다.

기피의 움짤 검색과 서비스에 대한 폭발적인 반응은 변화한 소통 방식에 매우 효과적인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움짤은 대체로 3초에서 6초 사이 길이다. 인간이 시각물 뜻을 이해하는데 걸리는 평균 시간이다. 또 같은 장면을 반복 재생하는 gif 특성은 감정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에 매우 적합했다. 특히 메시징앱과 소셜미디어 성장과 맞물렸다.

서비스 초반에는 여러 TV프로그램이나 영화 영상 일부를 담은 움짤이 많았다. 유명 연예인 움짤이 대표적이다. 대중화에 큰 힘이 됐다. 지금은 수많은 이용자가 직접 움짤을 만들어 공유한다. 기피에서만 볼 수 있는, 이른바 ‘오리지널' 콘텐츠도 많아졌다. 기피는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틱톡, 트위터, 스냅챗, 슬랙 등에서 이용할 수 있다.

알렉스 정은 "이용자가 지금 상상하는 것들이 이미지로 표현돼 등장한다"며 "기피의 매 순간이 흥미로울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움짤계 구글’이 이제 ‘넷플릭스'로 진화하는 셈이다.

사용법은 간단하다. 앱을 다운받은 후 실행해 스마트폰 키보드 설정을 지피 전용 키보드로 바꾼다. 메시징 앱으로 친구와 대화를 하다 지피 키보드 내 특정 대화상황에 맞는 영상을 찾아 선택한다. 곧바로 메시지 창으로 영상을 공유한다. 원하는 영상이 없으면 직접 만들어 올릴 수도 있다. 모바일뿐 아니라 PC에서도 사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기피 검색창에 ‘쌩큐(thank you)’라고 치면, ‘thank you’라는 글자가 깜빡이거나 영화배우 브래드 피트가 손 키스를 날리거나, 고양이가 앞발을 들고 흔드는 다양한 이미지를 볼 수 있다. 이 중 원하는 영상을 클릭하면 이모티콘처럼 쓸 수 있다.

움짤을 넘어 다양한 형태로 변화

기피는 움짤을 넘어 색다른 형식으로 진화한다. 대표적인 게 카메라 속 화면에 gif가 뜨는 증강현실(AR)용 콘텐츠다.

게임을 만들어 공유할 수 있는 서비스인 기피 아케이드./ 기피 홈페이지 갈무리
게임으로도 영역을 넓힌다. 기피는 지난 10월 게임 콘텐츠 공유 플랫폼을 선보였다. 기피 아케이드(Arcade)다. 누구나 쉽게 게임을 만들어 친구와 공유하는 미니 게임 플랫폼이다. 공을 쏘아 맞추거나 공을 이리저리 튕겨 원하는 목표물을 맞출 수 있는 기본 템플릿을 제공한다. 이미 만들어진 게임을 플레이하고, 메시징앱이나 소셜미디어에서 친구와 함께 게임을 즐길 수 있다.

알렉스 정은 "기피는 이용자끼리 더 창의적이고 재밌는 방식으로 대화할 방법을 고안해 왔다"며 "그 중 하나로 게임 서비스를 출시했다"고 말했다.

그는 꼬마 때부터 생각이 남달랐다. 엔터프뢰너 기자가 생각을 바꾸게 만든 책을 묻자 ‘전화번호부’(옐로페이지)라고 답했다. 거기에 나온 직업 목록을 즐겨봤는데 마음에 드는 게 없었다. 나만의 직업을 만들겠다고 결심했다.
첫 사업 아이디어를 낸 것도 여덟살 때였다. 그는 친구와 사람들이 처치 곤란한 집앞 깎은 잔디 쓰레기를 처리해줄 공간 비즈니스를 구상했다.

기피는 글로벌 서비스다. 43개 이상 언어를 지원한다. 한국어도 있다. 다만 아직 중심은 영어 콘텐츠가 중심이다. 한국어보다 영어로 검색해야 더 많은 결과를 볼 수 있다.

알렉스 정 대표는 "2020년 더 다양한 언어와 문화권 이용자가 이용할 수 있도록 서비스 범위를 확장하겠다"며 "한국 소셜미디어 서비스와도 협력하기를 희망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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