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레이어] "문학작품 독서 경험과 감동, 게임으로 전달"

입력 2019.12.07 07:57 | 수정 2019.12.07 08:07

개발자, 스토리 작가, 그래픽·원화 아티스트, 사용자 경험 디자인(UX) 등…이들은 누구보다도 열심히 게임을 ‘플레이’하는 사람들입니다. ‘플레이어’는 게임 업계 관계자를 직접 만나 그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전하는 코너입니다. [편집자주]

김효택 자라나는씨앗 대표 인터뷰
"좋은 문학 작품 읽었을 때 경험, 게임으로 전한다"
넥슨 출신 김대표, 교육·게임 결합하려는 시도 위해 회사 차려
시행착오 끝에 스토리텔링 게임 브랜드 ‘MazM’ 론칭
2020년 봄, 독립운동가 ‘최재형’ 삶 조명하는 ‘MazM 페치카’ 출시
한국 기업의 인디게임 지원 늘어난다면 생태계 조성에 도움될 것

"어린 시절 읽은 좋은 소설을 한 편이 인생에 큰 영향을 주고, 성숙해지는 계기를 제공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소설 안에서 간접 경험을 하기 때문이죠. 좋은 소설을 읽었을 때의 경험과 감동을 게임으로 전하는 것이 게임사 ‘자라나는씨앗’의 목표입니다"

김효택 자라나는씨앗 대표는 기업 목표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자라나는씨앗’은 게임 시장에서 스토리텔링 중심의 독특한 게임을 제작하는 소규모 개발사다.

김효택 자라나는씨앗 대표의 모습, 사무실에는 책이 빼곡하게 꽂혀있다. / 오시영 기자
넥슨에서 인사팀장으로 일하기도 했던 김 대표는 게임과 학습을 결합하고 싶어 직접 게임회사를 설립했다. 사업 초기 수학 게임을 만들었는데, 회사는 한 차례 뼈 아픈 실패를 맛봤다. 회사 설립 전에 경력을 쌓으며 모은 돈은 3년만에 전부 써버렸다.

이후 김대표는 학습할 수 있는 게임의 형태로 ‘스토리텔링’ 방식을 선택했다. 그는 "고전 중 저작권이 풀린 작품을 인터넷 환경으로 옮기는 ‘구텐베르크 프로젝트’에서 영감을 받았다"며 "해당 프로젝트는 책을 직접 사지 않아도 고전을 접할 수 있도록 돕는데, 게임으로 이런 시도를 해보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탄생한 브랜드가 ‘맺음(MazM)’이다. 맺음이라는 이름은 ‘자라나는씨앗’이 자라서 결실을 ‘맺는’다는 의미다. 김 대표는 "글을 맺는다라는 표현도 있어 뜻이 좋다고 생각했다"며 "영어로는 ‘MazM’이라고 지었는데, 양쪽 M은 책을 상징하고 az는 a부터 z까지 모든 이야기를 담고 싶다는 포부를 담았다"고 설명했다.

하트리스는 ‘옐로브릭스’의 판촉용 게임으로 급하게 제작했는데, 원작을 뛰어넘는 반응을 불러일으켜 가능성을 보여준 작품이다. / 구글 플레이스토어 갈무리
맺음 작품은 총 4개 만나볼 수 있다. 2016년에는 오즈의 마법사를 재해석해 어린이를 목표 이용자층으로 만든 ‘옐로브릭스’를 출시했다. 기획부터 실제 출시까지 1년 4개월이나 걸렸으나 누적 다운로드 수는 3000회쯤에 불과했다. 반면 이 작품의 판촉용 게임인 ‘하트리스’는 감성적인 양철 나무꾼의 사랑 이야기 내용을 담아 순식간에 5만 다운로드를 기록했다.

김 대표는 "옐로브릭스는 어린이를 목표 이용자로 했는데, 10·20대 이용자나 여성 이용자가 하트리스를 감명 깊게 플레이했다는 후기를 보고 브랜드의 방향성을 잡는 데 도움이 됐다"며 "옐로브릭스 덕에 많은 것을 배웠고, 이때의 엔진을 토대로 이후에도 작품을 계속 만들 수 있었으므로 좋은 경험이었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지킬 앤 하이드 이미지. / 자라나는씨앗 페이스북 갈무리
이후 회사는 2017년 11월 ‘지킬앤하이드’를, 2018년에 ‘오페라의 유령’을 차례로 출시했다. 비즈니스 모델도 손봤다. 옐로 브릭스는 유료 게임이었는데, 이 작품들은 이야기를 즐기는 것은 무료인 대신, 일종의 ‘감독판’을 만들었다. 숨은 이야기나 원화는 비용을 지불하고 즐길 수 있다.

최근에는 세계 시장에도 두 게임을 선보였다. 영어권 국가, 러시아, 동남아, 일본 등에서 이 게임을 즐길 수 있다. 지킬앤하이드는 국내외 다운로드 횟수가 230만건, 오페라의 유령은 30만건에 달한다. 김효택 대표는 "출시한 해외 지역에서 고루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고 말했다.
MazM 오페라의 유령 소개 영상. / MazM 유튜브 채널
최근 자라나는씨앗은 고전을 넘어 잘 알려지지 않은 역사를 게임으로 조명하려고 시도한다. 2020년 봄에 출시할 예정인 작품 ‘MazM 페치카’다. ‘지스타2019’에서 이 게임의 시연 버전을 공개했는데, 이용자 70%가 게임이 나오면 알려달라고 개인정보를 적었다.

2019년은 임시정부 수립, 3·1운동 100주년이 되는 해다. 자라나는 씨앗에도 이와 관련한 게임을 만드는 것이 어떻겠냐는 제안이 다수 들어왔다. 김 대표는 소위 말하는 ‘국뽕 게임’을 만들 것 같아서 고사하다가 드라마틱한 삶을 살았던 독립운동가 최재형 선생 이야기를 다루기로 했다. 게임 제목이기도 한 페치카(따뜻한 난로)는 최재형 선생의 별명이다.

독립운동가 최재형 선생의 모습, 단 한 장 남은 그의 사진이다.
최재형은 1860년, 노비·기생의 아들로 태어나 러시아로 이주했다. 그는 가난에 허덕이던 중 러시아 상선 선장 부부에게 입양됐고, 군납으로 부자가 되어 연해주에 사는 조선인을 도왔다. 유창한 러시아어로 한인 노동자가 받는 부당한 대우를 해소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이후 독립운동에 투신해 단체 동의회를 조직하고,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의거를 돕는다. 의거 전 안중근은 최재형의 집에서 권총 사격 연습을 했다. 최재형은 안중근에게 권총을 사주고, 의거 후 안중근이 일본 관할이 아닌 러시아에서 재판 받도록 계획 변호사를 준비하기도 했다.

최재형 선생은 분명 ‘영웅적인’ 인물이지만, 자라나는씨앗은 그의 이야기를 단지 영웅의 일대기로 만들지 않는다. 마치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처럼 가상인물인 주인공이 등장한다. 김효택 대표는 "주인공은 조선인이지만 러시아에서 살았던 ‘디아스포라’를 상징하는 인물로, 타향에서 사는데, 돌아갈 나라도 남아있지 않아 정체성 혼란을 겪는다"고 설명했다.

지스타 2019 자라나는 씨앗 전시장에서 ‘MazM 페치카’ 시연 버전을 즐기는 방문객의 모습. / 자라나는씨앗 트위터 갈무리
게임에서는 중요한 시점에 만난 최재형이 정체성 혼란을 겪는 주인공에게 도움을 주고, 이끄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김 대표는 "주인공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진행하지만, 최재형 선생의 활동을 옆에서 볼 수 있도록 만들었다"며 "마치 스타워즈의 ‘오비완 케노비’와 ‘루크 스카이워커’의 관계처럼 정체성 혼란을 겪는 주인공을 최재형 선생이 돕는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당시는 조선뿐만 아니라 러시아에서도 정치·이념적 갈등과 세계대전 등으로 인해 격변이 일어나던 시기로, 이런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의 이야기를 담으려 한다"며 "현대 한국도 강대국 사이에 껴서 무엇이 옳은 것인지 판단하기 어려운 상태라는 점에서 100년 전 이야기지만 현대를 투영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MazM 페치카는 2020년 봄에 출시될 예정이다. / 자라나는씨앗 트위터 갈무리
자라나는씨앗은 역사 콘텐츠인 만큼 특히 신중하게 접근한다. 사내 역사 서적이 많아진 것은 기본이고, 콘텐츠진흥원 등 다수 기관에서 자료나 자문 지원을 받는다. MBC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 사업단에서는 러시아에 있는 최재형 고택 독립운동기념관 사진 자료를 제공하기도 했다.

자라나는씨앗은 역사 교수에게 자문하기도 한다. 김 대표는 "한 교수님을 직접 찾아가 게임에 대해 소개했더니 새 시도라며 놀라셨다"며 "준비해간 질문을 하자 교수님께서 깊이 있는 질문이라고 좋아하셨고, 앞으로도 많이 이야기했으면 좋겠다고 하셨다"고 말했다.

김 대표에 따르면 ‘MazM 페치카’ 개발 마무리 단계 작업을 진행한다. 게임을 일부 개선하고, 다듬는 과정이다. 이 게임은 세계 시장에 동시에 출시하고, 마치 드라마처럼 일정 분량 씩 끊어서 공개할 예정이다.

오페라의 유령 원화. / MazM 페이스북 갈무리
김효택 대표는 한국 게임시장 발전을 위해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최근 한국 게임계와 이용자 사이에서는 국산 주요 게임이 너무 천편일률적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매번 똑같은 장르, 판박이 게임성, 과도한 확률형 요소 등에 질렸다는 목소리다.

김효택 대표는 "게임계는 아직 상업화 논리에 작품성 논리가 밀리고 있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는 "게임은 수익을 낼 수 있는 규모가 영화보다 훨씬 커서 상업을 버리기 아깝다고 생각하는 측면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며 "특히 게임사 덩치가 클수록 수익을 창출해야 하고, 주주 눈치도 봐야 해서 상업성을 신경 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한때 영화계도 ‘돈이 되는’ 상업, 헐리우드 영화 중심으로만 흘러가던 시절이 있었다"며 "하지만 스크린 쿼터 등으로 다양성을 지키려 노력했고, 관람객 수준이 높아지고 최근에는 상업영화도 작품성을 갖추면서 의미 있는 작품이 다수 등장한다"고 설명했다. 게임계에서도 높아진 이용자 수준에 맞는 게임이 다수 나와야 한다는 이야기다.

영화 ‘조커’는 대중적으로도 흥행하면서도 나름의 작품성을 갖췄다고 평가받는 대표적인 작품이다. / 조커 트레일러 영상 갈무리
대형 기업 바람직한 생태계를 조성하기 위해 인디게임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도 밝혔다. 김 대표는 "인디게임을 지원하면 신인 게임개발자 발굴이 쉬워지고, 성장하는 기업이 많아져 게임계의 ‘허리’가 튼튼해지는 효과도 있을 것"이라며 "최근에는 오히려 외국 기업인 구글이 이런 부문에서 힘쓰는 상황이다"라고 설명했다.

김효택 대표는 앞으로의 목표에 대해 "일단 시작한 것을 멈추지 않고 계속 추진해 나가면서 1년에 최소 1개 2~3개 작품을 만들고 싶다"며 "MazM 브랜드에서 문학·역사·과학·철학 등 다양한 영역을 다뤄보고 싶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게임을 통해 이용자가 경험하고, 배우고, 성장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는 것이 목표다"라고 말했다.

다만 김 대표는 아직 자라나는씨앗은 아직 ‘시제품’을 만드는 단계라고 말했다. 빠르게 많은 작품을 생산하는 시기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그는 "시간에 제약을 두지 않고, 과거를 답습하지 않으면서 발전하려고 노력한다"며 "스토리텔링 게임 장르의 가능성은 이미 확인했고, 글로벌 출시도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있다는 사례도 확보했는데, 아직 게임성 부분에서 부족한 것 같아 이를 개선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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