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다와 국토부가 제대로 맞붙었다. 원래 싸움 구경이 가장 재미있다고 한다. 필자도 팝콘을 들고 싸움을 지켜보고 있다.

그러다 순간 헛웃음이 나왔다. 12월 11일 오전, 타다가 급히 낸 ‘장애인 도우미견 양성기관을 후원하겠다’는 기사를 보고 나서다. 일련의 희극을 보며 혁신의 실체와 의미, 규제기관의 역할과 산업진흥의 범위를 고민하게 된다.

공교롭게도 같은날, 폴 볼커 전 Fed(미국연방준비제도)의장이 타계했다. 그는 2008년 닥쳐온 금융위기 이후 규제 완화에 반대하는 등 금융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인물이다. ‘인플레 파이터’로 유명한데다 오늘날 장기 호황의 발판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그래서 타다와 혁신, 규제완화와 폴 볼커를 다룰 이번 칼럼의 주제는 유의미하다고 생각한다.

필자는 우선 질문을 던진다. 과연 혁신은 성장을 주도하는가?

이재웅 타다 대표는 늘 당연하다는 듯 ‘혁신은 성장을 주도한다’는 가정 하에 주장을 펼친다. 이 주장의 문제는 ‘어떤 혁신’이 ‘어떻게 성장을 주도하는지’ 가장 중요한 설명이 없다는 점이다.

필자는 이 문제가 오늘날 혁신 업계 관계자의 공통 문제가 아닐까 의심한다. 아주 중요하지만, 정작 관계자는 그리 하고 싶어하지 않는 고민을 대신 해주는 것이 학자의 역할이다.

사실, 금융경제학자에게는 ‘혁신은 성장을 주도한다’는 주장이 매우 익숙하다. 금융 산업이 혁신을 외치던 1980년대 후반, 그리고 2000년대 초중반 이와 똑같은 논리가 나왔기 때문이다.

당시 업계는 ‘금융산업의 혁신은 성장을 가져올 것이다. 금융혁신을 저해할 구시대적 규제는 성장을 위해 과감히 완화해야 한다’라고 부르짖었다.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혁신 업계가 외치는 논리와 비슷하지 않은가?

결과는 역사가 증명한다. 2008년 일어난 금융위기 관련 미국 하원 보고서를 보면, 서브프라임 위기의 중요한 원인 중 하나가 ‘무분별한 규제완화’임을 명시하고 있다. 실제로 금융업계의 요구에 따라 규제를 완화했고, 그 결과 금융위기를 맞았다는 것이다.

그보다 앞선 예도 있다. 투자은행과 상업은행을 분리하는 글래스-스티걸법은 대공황 이후인 1933년 제정됐다가 1999년 초 폐기됐다. 이 법을 규제로 여기고 폐기하려는 노력이 1980년대 후반 일어났다. 대표적 인물이 "the world has changed a hell of a lot(세상이 많이 변했다)"라고 늘 외치던 토마스 테오발드 씨티그룹 부회장이었다. 반면, 규제완화 반대론자인 폴 볼커 Fed 의장은 자신의 임기가 끝나기 직전인 1987년 2월, 규제기관의 입장에서 이를 반박한다.

‘세상이 바뀌었습니다!’ 요사이 (자칭) 혁신 업계에서 매일 들려오는 이야기다.

결국 글래스-스티걸법은 1999년 폐기됐다. 혁신을 위해 규제를 완화했다. 이 사이 금융업계는 1997년~1999년까지 3억달러(3578억원) 규모 로비도 했다.

2004년 4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대형투자은행들이 자본 대비 부채 비율을 12배 에서 30배 이상으로 확장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투자은행들은 주택저당증권(Mortgage Backed Securities)의 규모를 급격하게 늘릴 수 있었다.

당시 SEC와 금융산업계는 ‘금융업체가 자율 규제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1998년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의 브룩슬리 본이 규제 강화를 요구했으나, 당시 그린스펀 Fed 의장과 로버트 루빈 재무장관이 ‘자율규제의 강점’을 주장하며 규제 도입을 막았다.

이러한 주장들은 블록체인협회 및 혁신 업계가 주장하는 자율규제와 일맥상통한다. 그런데, 정작 금융위기 이후 그린스펀 Fed 의장은 ‘자율규제에 대한 믿음은 잘못됐다’고 공개 시인했다.

결국 2008년 금융위기의 광풍이 세계를 휩쓸었다. 오바마 정부가 만든 볼커룰(Volker Rule)은 투자은행업과 상업은행업의 분리, 대형 투자기업의 합병 제한 등을 담았다. 가히 글래스-스티걸 법의 현대판이 부활했다고 할 수 있다.

이 볼커룰을 제안한 사람이 11일 타계한 폴 볼커다. 1999년 ‘천지개벽 수준으로 세상을 바꿀 혁신을 저해할 적기조례’ 취급을 받고 폐기된 글래스-스티걸법이 되려 더 강화돼 돌아온 것이다.

여담이지만, 적기조례가 영국의 자동차 산업 발전을 저해했다는 것은 잘못 알려진 이야기다. 악마는 디테일 사이에 숨어있는데, 지금 우리 혁신 업계는 정작 이 디테일에 약한 모습을 종종 보여주고는 한다.

결론적으로 금융혁신-규제완화-금융위기-회복 순환이 한차례 돌아간 2000년대 초~2010년대 중반을 비교해보면, 미국 경제는 유의미한 성장을 이루어내지 못했다. 결과론이기 때문에 과도한 해석을 경계해야 하겠지만,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실증적 경험은 ‘혁신을 위한 규제 완화가 성장으로 이어지지 못했다’고 이야기한다.

필자는 ‘혁신이 성장으로 이어지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논의의 핵심은 ‘혁신이 성장으로 이어질 필요는 없다. 과거가 이를 증명한다’라는 것이다.

규제를 무분별하게 완화하면서까지 혁신 사업을 지원할 때, 일어날 수 있는 잠재 위험을 애써 무시하는 것은 옳지 않다.

현재 우리 혁신 업계 양상은 매우 위험하다고 본다. 규제와 산업진흥기관의 목표가 뒤섞였다. 심지어 혁신 업계는 규제기관의 업무에 간섭하기까지 한다.

중요한 것은 규제기관은 규제 업무를, 산업진흥기관은 산업진흥 업무를, 업계는 정해진 규칙 안에서 이익을 추구하며 각자의 권한 및 업무범위를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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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기훈 교수(PhD, CFA, FRM)는 홍익대 경영대 재무전공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학계에 오기 전 대학자산운용펀드, 투자은행, 중앙은행 등에 근무하며 금융 실무경력을 쌓았습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경제학 박사를 마치고 자본시장연구원과 시드니공과대(University of Technology, Sydney) 경영대에서 근무했습니다.

주 연구분야는 자산운용, 위험관리, 대체투자입니다. 금융위원회 테크자문단을 포함해 현업 및 정책적으로 다양한 자문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