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니콘 기업이냐, 아니냐는 중요치 않다. 유니콘은 성공한 스타트업을 규정하는 잣대가 아니다. 유니콘이 되면 투자자에게 상당한 규모의 자금을 투자받은 곳이라는 뜻이고, 투자자에게 받은만큼 돌려줘야 한다. 투자받지 않고도 활발하게, 그리고 지속가능한 성장을 보이는 스타트업은 많다."

모니크 기기(Monique Giggy) 미국 벤처 캐피털 에스유벤처스(SU Ventures) 창업자가 IT조선과 만나 성공한 스타트업을 구분하는 기준을 정의하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글로벌 액셀러레이터 스파크랩이 12일 서울서 진행한 데모데이에 참석했다. 서울 코엑스 스파크랩 데모데이 행사장에서 그를 만났다.

모니크 기기가 12일 스파크랩 데모데이 행사장에서 IT조선 기자와 만나 인터뷰를 하고 있다. / 선을만나다 제공
모니크 기기가 12일 스파크랩 데모데이 행사장에서 IT조선 기자와 만나 인터뷰를 하고 있다. / 선을만나다 제공
모니크 기기는 에스유벤처스 창업 이후 1000개 이상 스타트업을 돕고 20개 이상 기술기반 스타트업에 투자해온 창업 생태계 전문가다. 현재는 싱귤래리티 대학에서 세계 창업가를 지원하고 이들에게 성공 전략을 전수한다.

에스유벤처스는 미국 실리콘밸리에 위치한 세계 최고 혁신 창업가 양성 전문 대학인 싱귤래리티 대학(Singularity University)이 만든 벤처캐피털(VC)이다. 싱귤래리티는 특이함이라는 뜻으로 기술 분야에서는 기술 변화 속도가 급속히 변화해 인간 생활을 되돌릴 수 없도록 변화하는 기점을 의미하는 말로 쓰인다. 싱귤래리티 대학이 기술 중에서도 인공지능(AI)이나 바이오와 같은 기하급수적으로 발전하는 첨단 기술분야 스타트업에 주목하는 이유다. 싱귤래리티 대학은 해당 분야 기술을 가진 초기 기업을 지원한다.

싱귤래리티 대학은 2008년 미국 발명가 겸 미래학자인 레이 커즈와일이 구글과 나사(NASA)로부터 투자를 받아 만들었다. 정식 학위를 주는 대학이 아님에도 실리콘밸리를 키워낸 세계 최고 혁신 비결을 배우기 위해 수많은 창업가들이 몰려든다. 한국에서는 2010년 우주인 후보였던 고산씨가 교육을 받았다.

"실패해도 괜찮아…자기 객관화 능력은 필수"

모니크 기기는 ‘유니콘'이라는 단어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말라고 제언했다. 단기간에 매출을 올리고 투자를 유치했다는 점으로는 성공적인 스타트업이라고 보기 힌들다는 설명이다. 오히려 투자 성과없이도 지속가능한 매출을 내는 스타트업은 세계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가 성공한 스타트업을 판단하는 기준은 달성가능한 목표를 갖고, 그 목표를 얼마나 빨리 도달했는지 여부다. 지속가능한 성장을 유지하는 역량은 물론, 시장에 얼마나 적절한 시점에 서비스나 상품을 내놓느냐 역시 중요한 요소다.

그는 "제품 상용화 시점이 시장 발전 속도에 비해 너무 빨라도, 느려도 안 된다"고 말했다.

투자가치가 있는 스타트업은 어떤 역량을 갖춰야 할까. 그는 ‘기하급수적 기술(exponential technology)’이라는 단어로 표현했다. 발전속도가 일정치 않고, 폭발적으로 성공하는 기술이다. 빈곤, 재난, 의료 격차 등 국제 사회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정도로 파급력이 큰 기술을 의미하기도 한다.

에스유벤처스는 이런 기술을 보유한 스타트업에 적극 투자한다. 싱귤래리티 대학은 10년 내 10억 인류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창업을 하자고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모니크 기기는 "그간 바이오 분야에 관심을 기울였다"며 "미래 사회 변화에 대처할 수 있도록 돕는 교육 분야에도 투자했다"고 말했다.

모니크 기기가 12일 스파크랩 데모데이 행사장에서 IT조선과 만나 인터뷰를 진행하는 모습./ 선을만나다 제공
모니크 기기가 12일 스파크랩 데모데이 행사장에서 IT조선과 만나 인터뷰를 진행하는 모습./ 선을만나다 제공
모니크 기기는 학교를 찾는 초기 스타트업 창업자들에게 "실패를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실패는 성공 기반이기 때문이다. 물론 실패만 반복해선 안된다. 그는 초기 스타트업일수록 냉정하게 자신을 돌아볼 줄 아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수많은 초기 스타트업을 관찰한 그가 꼽는 스타트업 실패의 주된 요인은 팀 구성이다. 그는 "구성원끼리 끈끈한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서로에게 따끔한 조언을 할 줄 알아야 한다"며 "많은 팀이 이에 실패해 내부 갈등을 겪고 성장 동력을 잃는 모습을 보고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10년 후에는 세계 곳곳이 실리콘밸리"

그는 스타트업 성장 기반으로 5가지 강력한 핵심 축이 필요하다고 꼽았다. ▲학계 ▲정부 ▲창업가 ▲창업 생태계 ▲투자자다. 이전까지는 핵심 축을 모두 갖춘 곳은 실리콘밸리 등 일부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는 글로벌 스타트업 혁신은 실리콘밸리 같은 특정 공간에서만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5개 핵심 축을 모두 갖춘 곳이 세계 곳곳에서 등장해 어디든 실리콘밸리가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그는 "싱귤래리티 대학이 문을 연지 10여년이 흐르고 세계 창업가 허브로 자리잡은 가운데 그간 창업 생태계는 한 단계 발전했다"며 "특정 지역과 국가 단위를 뛰어넘는 글로벌 스타트업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는데다 소프트뱅크와 같은 대형 투자사도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한국도 강력한 기술을 가진 스타트업이 성장하는 국가"라며 "그간 쌓아온 생태계를 기반으로 강력한 스타트업이 등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모니크 기기는 스타트업 성장을 위해 정부가 할 역할로 연구개발(R&D) 지원을 꼽았다. 무조건 자금을 지원하는 정책을 펼치기 보다는 창업가가 일부 투자금을 유치하면 나머지 필요한 자금을 추가로 정부가 지원하는 형식의 레버리지 캐피탈(leverage capital) 정책이 중요하다고 봤다. 그가 우리나라에서 시행하는 팁스(TIPS) 프로그램을 더 발전시켜야 한다고 강조한 이유다.

팁스(Tech Incubator Program for Startup)는 중소벤처기업부가 초기 단계 스타트업을 지원하기 위해 만든 민간 투자 주도형 기술 창업 지원 프로그램이다. 민간 투자회사가 스타트업을 발굴해 1억원을 투자하면 중기부가 연구개발 자금 등 최대 9억원까지 지원한다. 민간이 초기 투자하고 정부가 뒷받침하는 구조다. 성공한 벤처투자 전문가 경험을 활용해 스타트업 시장을 키우는 이스라엘 모델을 본떠 2013년 신설됐다.

한국만큼이나 미국도 규제 환경은 혁신을 가로막는다. 기존 산업계도 혁신을 백안시한다. 한국의 ‘타다' 사태처럼 우버와 리프트도 택시산업계와 갈등으로 몸살을 앓는다. 미국도 헬스케어 분야에선 규제 장벽이 높다.

그는 "미국에서 헬스케어 신규 서비스가 FDA(미국 식품의약국) 승인을 받는 과정은 악몽(Nightmare) 그 자체다"라고 표현했다.

그는 혁신이 사회를 진보시키려면 사회도 그만큼 준비돼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모니크 기기는 "혁신은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당연히 클 수밖에 없다"며 "사회에서 일으키는 갈등이 크다고 싹을 아예 잘라버리면 파괴적 혁신은 불가능하고 그만큼 사회도 발전 기회를 잃는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