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이 우리의 삶을 깊숙이 파고든다. 예술 분야도 피해 갈 수 없다. AI 화가가 그림을 그리는 시대다. 저명한 인간 작가보다 AI 화가의 작품이 화제를 모으며 더 높은 가격에 거래되기도 한다. 누군가는 ‘AI ART’ 등장에 우려의 시선을 보낸다. 또 누군가는 인간의 창작 세계를 넓히는 데 AI가 도움을 준다고 말한다. AI 창작으로 예술 분야의 가치와 영향력이 커진다는 주장도 있다. 예술계에 부는 새로운 AI 바람을 [AI ART 예술의 의미를 묻다] 시리즈로 인사들의 기고를 준비했다. [편집자주]


⑩류민정 작가 "민화 작가가 그리는 AI와 예술의 미래"

민화는 대중에 의해 오랜 세대를 거쳐 전승된 그림이다. 민화의 도상(작품에 나타난 인물이나 형상)은 단순한 이미지가 아닌 상징적 의미를 지닌다. 기복(起福, 복을 구하여 이룸)을 바라는 길상화(吉祥畵)가 주를 이룬다. 즉 민화는 인간의 삶에서 생명의 지속과 사랑, 안락과 풍요가 현실로 머물기를 바라는 그림이다. 과거의 전통기법과 재료로 작업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민화는 재현 분야와 창작 분야로 나뉜다. 재현 분야가 과거의 민화를 그대로 그리는 방식이라면 창작 분야는 민화 도상의 상징성과 채색 방법 등을 토대로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낸다. 민화 작가에 따라 재현 작품만 그리기도 하고 창작 민화를 주로 그리는 작가도 있다. 필자는 주로 자신만의 아이덴티티(정체성)를 불어넣은 창작 민화 작업을 한다.

인공지능(AI) 화가의 학습과 창작 과정은 인간 민화 작가가 학습・창작하는 과정과 유사한 부분이 있다. 만약 AI가 민화를 그린다면, 여러 민화 자료를 수집하고 그 자료를 학습해 작품을 재현해 낼 수도 있고 나아가서는 새로운 창작물을 만들어 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과거의 작품을 똑같이 재현해 낸다고 해서 반드시 새롭고 멋진 창작물을 만드는 작가가 될 수 있는 건 아니다. AI 화가의 창의성 과제도 유사한 이슈가 있다고 생각한다.

류민정 작가와 AI화가 ‘이메진AI’의 협업 작품인 ‘너와 함께 바라다(2019)’. / 류민정 작가 제공
류민정 작가와 AI화가 ‘이메진AI’의 협업 작품인 ‘너와 함께 바라다(2019)’. / 류민정 작가 제공
AI의 창의성은 과연 어디까지 발전할 수 있을까? 앞으로 AI가 모든 산업과 인간 삶의 여러 영역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는 전망에 많은 사람이 동의한다. 미술 분야도 마찬가지로 적지 않은 영향을 받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AI의 가장 중요한 능력은 인간을 모방한 학습 능력이다. 미술 분야에 국한해서 본다면 인간의 뇌 신경망을 모방한 AI는 앞으로 지구상의 모든 사물과 색, 지금까지 그려진 모든 그림을 학습해 언젠가는 인간이 감탄할 만한 창작물을 만들어내는 수준까지 진화할 것으로 예상한다.

예를 들어 구글의 AI 서비스 ‘퀵 드로우(Quick, Draw!)’를 살펴보자. 퀵 드로우는 사람들의 낙서를 머신러닝으로 학습해 인식률을 높인다. 세계 많은 사람이 이 서비스에 참여하고 있기에 머지않아 사람이 그린 모든 사물을 AI 서비스가 인식할 것으로 예상된다. 앞으로 AI는 이렇게 확보한 방대한 자료를 토대로 스스로 다양한 조합을 만들면서 표절 논란 없는 자신만의 창작물을 만들어 낼 가능성이 높다.

물론 미래에도 아날로그적인 예술 작업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디지털이 모든 걸 대체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한동안 AI는 인간의 조력자 역할을 할 것이며 기술이 계속 진화하면서 미래의 특정 시점에는 AI가 만든 창작물이 평범한 예술가가 만든 창작물의 수준을 뛰어넘으리라 생각한다. 그렇게 되면 AI보다 못한 창작물을 만드는 예술가는 도태될 수 있다. 따라서 예술가도 AI 발달 과정을 주시하면서 필요하다면 AI를 도구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나아가서는 AI가 따라올 수 없는 인간만의 창의성을 지속해서 높일 필요가 있다.

AI를 향한 경외심과 애정, 그리고 한편으로는 공포와 불안감이 작가를 더 발전시킬 수 있으리라 믿는다. AI의 발전을 계속 지켜보면서 AI를 도구이자 동료, 경쟁자로 생각하며 작업을 계속해 나갈 것이다.

류민정 작가의 ’꽃길을 걷게 해 주오(2018)’ 작품. / 류민정 작가 제공
류민정 작가의 ’꽃길을 걷게 해 주오(2018)’ 작품. / 류민정 작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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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민정 작가는 건축 구조 엔지니어와 소프트웨어 QA(품질보증) 엔지니어로 일했다. 현재는 민화 작가로 활동한다. 민화의 대가 송규태 화백에게 사사했으며, 개인전과 책거리 투데이(Today) 등 초대 그룹전 다수에 참여했다. 현대민화공모전 대상 수상으로 2020년 파리국제예술공동체 레지던시 입주를 앞둔 상태다. 디지털 세상에서 과거의 소중한 가치, 삶의 희망을 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