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자동차 대표 중형세단 K5가 4년만에 신차로 돌아왔다. 한국에서는 중형세단=패밀리카 인식이 강하다. 그러나, K5는 첫 등장할 때부터 젊은 소비자층의 마이카로 사랑 받았다. 감각적인 디자인에 준수한 달리기 실력을 갖춘 덕분이다.

신형 K5는 출시 전 공개된 디자인만으로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기아차는 보는 즐거움 뿐만 아니라 경쾌한 달리기, 음성인식 기반 인터랙티브 기능 등 세가지 매력을 강조했다. 서울 워커힐과 경기도 파주 헤이리 일대에서 신형 K5 1.6 터보의 상품성을 확인했다.

 기아차 K5 1.6 터보. / 기아자동차 제공
기아차 K5 1.6 터보. / 기아자동차 제공
감각적인 디자인 속 널찍한 실내공간

차 크기는 길이 4905㎜, 너비 1860㎜, 높이 1445㎜, 휠베이스 2850㎜다. 길이와 너비를 각각 50㎜와 25㎜ 늘리고, 높이는 20㎜ 낮춰 역동적인 비례감을 살렸다. 휠베이스는 중형세단을 넘어 윗급 차종과 견줄 정도다.

 기아차 K5 1.6 터보. / 안효문 기자
기아차 K5 1.6 터보. / 안효문 기자
후드는 길게, 트렁크는 짧게 조각했다. 실루엣이 매끄럽게 뒤로 흐르는 패스트백 스타일이다. 여기에 신차만의 새로운 디자인 요소를 대거 적용했다. 브랜드를 상징하는 ‘타이거 노즈' 그릴은 전면부 전체를 아우르는 ‘타이거 페이스’로 진화했다. 그릴과 헤드램프의 경계를 허물고, 전면부 각 요소들을 유기적으로 연결했다. 길고 풍성한 후드라인 끝에 과감한 음각처리는 미래지향적인 느낌을 준다.

그릴 패턴이 정교하다. 거칠고 날카로운 외관을 갖췄지만, 부드러운 촉감을 갖춘 직물 ‘샤크 스킨’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것이 회사측 설명이다. 심장박동을 연상케 하는 주간주행등, 달리기실력을 짐작케 하는 에어 인테이크 그릴과 에어커튼 등도 역동성을 강조하는 요소다.

 기아차 K5 1.6 터보 전면부. / 안효문 기자
기아차 K5 1.6 터보 전면부. / 안효문 기자
후면 디자인이 완전히 달라졌다. 리어콤비램프가 트렁크를 둘러 연결된 리어윙 형상이다. 형님격인 K7외에도 현대차 그랜저와 쏘나타 등에서 볼 수 있었던 시도다. 좌우 램프를 연결하는 중간 그래픽바는 작동 시 점등 패턴이 점점 짧아진다. 속도감과 역동성을 표현하기 위한 시도다.

실내 변화의 폭도 아주 크다. 운전자중심의 구조가 돋보인다. 헤드업디스플레이부터 12.3인치 대화면 클러스터, 클러스터와 심리스 방식으로 연결되듯 흐르는 10.25인치 내비게이션 디스플레이, 센터페시아의 각종 제어장치들은 모두 운전자를 향해있다.

 기아차 K5 1.6 터보 실내. / 안효문 기자
기아차 K5 1.6 터보 실내. / 안효문 기자
전체 레이아웃의 구성을 운전석과 보조석으로 이분화했다. 운전 집중도를 높이면서 탑승객들이 독립적인 공간감을 느끼도록 했다. 1.6 터보엔 D컷 스티어링휠을 배치해 운전의 즐거움을 더했다. 기어노브 대신 조그형 스위치가 자리 잡았다. 처음에는 어색하지만 공간구성 등을 고려하면 수긍이 간다. 직접 변속기를 조작하려면 패들시프트를 이용하면 된다.

성숙해진 몸놀림, 신규 플랫폼의 힘

이번 K5는 파워트레인과 플랫폼 모두 교체했다. 친환경성과 주행의 즐거움, 안전성을 동시에 잡기 위해서다. 뼈대와 심장을 싹 바꿨는데 어색함 없이 정교하고 조화로운 움직임을 보여줬다. 전체적으로 주행품질이 높아졌다.

 기아차 K5 1.6 터보 엔진룸. / 안효문 기자
기아차 K5 1.6 터보 엔진룸. / 안효문 기자
가솔린 1.6 터보엔 스마트스트림 G1.6 T-GDi 엔진과 8단 자동변속기가 올라간다. 최고출력 180마력, 최대토크 27.0㎏·m의 성능을 갖췄다. 연료효율은 복합 ℓ당 13.8㎞로 기존보다 7.8% 개선됐다(17인치 타이어 기준).

폭발적인 성능을 기대할 조합은 아니다. 다운사이징 엔진이 한층 커진 차체를 감당할 수 있을지 궁금했다. 짜내듯 힘을 쏟아내면 운전자가 피곤하다. 중형세단 구매를 고려하는 한국 소비자들은 이런 느낌을 선호하지 않는다.

‘터보'가 아닌 ‘다운사이징'에 집중하면 신형 1.6 가솔린 터보 엔진은 성공적이다. 2.0 가솔린을 여유있게 대체할 힘과 반응이다. 출발부터 자동차 전용도로에서 정속주행, 차선 변경이 잦은 시내 대부분의 구간에서 부족함 없는 성능을 발휘했다.

 기아차 K5 1.6 터보. / 기아자동차 제공
기아차 K5 1.6 터보. / 기아자동차 제공
과거 K5의 성향과 수요층을 고려했을 때 2.0 가솔린보다 1.6 터보에 손을 들어주지 않을 수 없다. 편안하면서도 역동성에 반 걸음 옮긴 주행감각 덕분이다. 여기에 탄탄한 차체와 서스펜션이 날렵하고 안정감 있는 움직임을 보장한다. 무리해서 움직이지 않아도 운전자가 원하는대로 잘 따라온다. 편안하면서도 정확한 움직임을 구현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디자인 이상으로 거동의 변화가 크게 느껴졌다.

브레이크는 다소 민감한 편이다. 소위 ‘밀린다'고 말하는 물렁한 감각보다 이 편이 차의 성격상 한층 잘 어울린다. 조금만 익숙해지면 오히려 자신있게 차를 움직이고 세울 수 있겠다. 차는 잘 달리는 것 이상으로 잘 멈춰서는 것이 중요하다.

차와 소통하는 즐거움

최근 신차들에 두드러지는 경향 중 하나가 디지털 계기판이다. 바늘과 숫자 이상의 정보를 운전자에게 전달하기 위한 시도다. 신형 K5는 방향지시등을 켜면 클러스터에 주변 상황을 영상으로 보여준다. 사이드미러를 완전히 배제해선 곤란하겠지만, 측후방 시야 확보에 큰 도음을 준다.

 기아차 K5 1.6 터보 디지털 계기판. / 안효문 기자
기아차 K5 1.6 터보 디지털 계기판. / 안효문 기자
카카오와 협업한 음성인식 제어는 다양한 기능을 제공한다. 공조기와 열선 스티어링, 창문 등을 음성으로 조작할 수 있다. 다소 복잡한 자연어에도 곧잘 반응한다. "차 안이 더운데 에어컨 좀 틀어줘"라고 말하면 "네, 실내 온도를 18도로 설정합니다"라고 하는 식이다.

"오늘 해외 축구 결과 어땠어?"라고 말하자 시승 당일 새벽에 있었던 유럽 축구리그의 경기결과를 알려주기도 했다. 날씨와 주식, 실시간 이슈 등을 주행 중 편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음성인식 기능을 적극적으로 내세울 수 있는 배경 중 하나로 실내 정숙성 개선을 꼽을 수 있다. 플랫폼이 바뀌면서 차 안으로 들어오는 소음과 진동이 확실히 적어졌다. 신차 시승 전 2세대 K5를 직접 몰아본 덕분에 개선점이 더 크게 다가왔다. 신차와 중고차의 차이를 감안하더라도 노면소음과 풍절음이 들어오는 것을 막는데 많은 공을 들였다고 느꼈다.

현대기아차의 첨단 운전자보조시스템(ADAS)은 여느 해외 고급 브랜드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정도로 실력이 무르익었다. 전방 충돌방지 보조(FCA)의 경우 교차로에서 좌회전 시 마주 오는 차까지 대응한다. 차선 유지 보조(LFA)는 차가 차선 중앙을 유지하고 달리도록 자연스럽게 스티어링을 조금씩 작동 시킨다. 운전자가 불쾌하지 않도록 움직임을 최소화했다.

고속도로 주행 보조(HDA) 덕분에 정속 주행 시 피로도가 상당히 줄어든다. 미리 설정해둔 속도를 넘지 않는 선에서 교통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속도를 조절한다. 앞차와 상대속도는 물론, 내비게이션에서 과속 카메라 구간이 감지되면 알아서 제한속도 이하로 속도를 낮출 정도로 명민하다.

독창성과 실리주의를 겸비한 수작(秀作)

시승 현장에서 의외로 많이 나온 이야기 중 하나가 "뒷좌석이 넓고 편안하다"였다. 기존의 젊은 감각을 유지하면서 패밀리카로서 상품성까지 고려했다는 뜻일 것이다. 차체와 서스펜션의 완성도가 높다보니 고성능 파워트레인에 대한 기대감도 든다. 1.6 터보 이상의 엔진을 올리면 완전히 다른 성격의 차로 변할 잠재력이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3세대 K5 1.6 가솔린 터보 시그니처의 가격은 3141만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