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을 어떻게 발전시킬지 논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적용 영역이 확대되는 AI 관련 법 제도 마련도 치열하게 고민해야 합니다. 관련 법안은 하루 이틀 만에 마련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고학수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AI 관련 법 제도 마련을 위해 치열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김동진 기자
고학수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AI 관련 법 제도 마련을 위해 치열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김동진 기자
고학수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말이다. 고 교수는 지난 18일 한국인공지능법학회 2대 회장으로 선출됐다. 그는 AI 관련 기술 발달에 매진하는 만큼 관련 법 제도 마련에도 힘을 쏟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IT조선은 23일 서울대학교 관악캠퍼스 법대 첨단강의동에서 고학수 교수를 만났다.

한국인공지능법학회를 소개해달라.

한국인공지능법학회는 2016년 5월 설립된 학회다. AI에 대한 사회의 관심이 늘고 법을 포함, AI 적용 영역도 확대되면서 커다란 변화의 물결이 다가온다. AI와 관련된 법 제도를 연구하는 사람들의 역할이 중요한 시기다. 한국인공지능법학회는 이 변화의 물결을 맞아 어떤 역할을 할지 여러 방면으로 고민한다.

예컨대 법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AI라는 기술 자체에 대한 이해도가 높지 않다. 반대로 AI를 활용해 사업을 운영하는 사람들은 법 제도에 대한 이해도가 높지 않다. 이 간극으로 발생하는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할지, 기업 현장의 고민은 무엇인지 살펴보고 대화를 시도할 예정이다. 대화 결과를 반영한 연구도 진행하고자 한다. 기술발달이 사회에서 반드시 순기능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AI가 초래할 역기능을 최소화하는 데 학회는 역할을 하겠다.


―AI를 바라보는 시각 차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 있나?

지난주 참석한 AI 관련 행사에서도 시각차를 경험했다. 같은 행사장 안에서도 다른 이야기가 오갔다.

농기계에 AI를 적용한 한 기업가는 오이농장의 자동화 시스템을 말했다. 오이를 생산 시설에 올려놓고 구분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사이즈별 상품성을 예측하는 시스템의 발전 방향을 논의했다. 현재 AI 기술 수준을 고려하면 현실적인 논의였다.

반면 다른 세션에서는 굉장히 다른 맥락의 이야기가 나왔다. AI에 법인격을 부여해야 하는지를 논의했다.
AI에 법인격을 부여할지 고민할 만큼 기술 수준이 올라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현재 AI는 인간의 수고로움을 덜어주는 자동화 시스템, 발전 가능성이 큰 기술이라고 본다.

이런 점에서 미스 매치가 발생한다. 먼 미래의 이야기를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당장 내년 혹은 내후년에 적용 가능한 기술 발달 논의도 중요하다.


― AI 발전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

여러 상황을 고려한 데이터다. AI 적용 영역은 늘어가는데 관련 제도에 대한 논의와 데이터는 턱없이 부족하다.

자율주행차를 예로 들겠다. 자율주행 기술 개발에 여러 기업이 매진한다. 반면 자율주행 상황에서 발생한 사고의 원인은 무엇인지, 처리는 어떤 방식으로 할지 통계학적인 분석이 이뤄지고 있는가. 이런 논의가 진행돼야 보험 설계도 가능하다. 자율주행 상황에서 사고가 나면 누구한테 보험 청구를 할 것인지 논의가 충분하지 않고 실질적인 데이터도 부족하다.


―데이터를 확보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근본적인 문제는 정보 주체인 일반인의 프라이버시를 데이터 관련 법안이 충분히 보호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동시에 데이터를 이용하려는 기업들에 관련 법안은 굉장한 부담이다. 양쪽으로 문제다.

정보 주체인 일반인은 개인정보 유출을 여러 번 겪었다. 데이터 보호법이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의문과 함께 유출에 대한 불안감을 느낀다.

한국은 다른 나라보다 데이터 수집 과정에서 ‘동의’를 강조한다. 데이터를 합법적으로 모으는 수단이기도 하다. 문제가 생겼을 때 기업은 소비자에게 동의를 받았다며 방어한다. 정부 규제기관은 개인정보 이용 동의를 받은 자료를 보유한 기업에 제재를 가할 수 없다. 문제는 ‘장문의 개인정보 약관을 꼼꼼하게 읽고 동의하는 소비자가 얼마나 되는가’ 이다. 이 단순한 구조를 유지할 경우 책임 당사자들은 편리하지만, 근본적인 보호 대상인 정보 주체가 지속해서 피해를 본다는 중요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AI와 법의 만남, ‘리걸테크’ 논의가 활발하다. 기관에서도 법률상담 ‘챗봇'을 도입한다. 이에 대한 의견은?

현재 AI가 판사나 변호사를 대신할 수준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많은 사람이 AI가 법률 전문가를 대신할 것이라 오해하는 것 같다. 현재 AI는 양식이 정해져 있는 법률 문서를 대신 작성해주거나 판사나 변호사의 업무를 보조해주는 역할이다. 예컨대 기업 간 M&A 계약에서 오가는 문서는 수백개에 달한다. 어떤 조항에 신경 써야 할지 강조하는 역할은 AI가 할 수 있지만, 최종적인 판단은 판사·변호사의 몫이다.

기관에서도 AI 챗봇을 활용한 법률 서비스 제공을 준비한다. 실제로 챗봇을 도입한 사례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기대하는 수준은 아니다. 홈페이지에서도 찾을 수 있는 내용을 대신 긁어와 문자로 보여주는 것은 AI가 아니다. 적어도 상호작용하며 대화를 할 정도의 수준이어야 한다. 민원인이 이것저것 물으면 구체적인 답변이 가능한 수준을 말하는 것이다. 이런 대화가 가능하게 하려면 답을 어디서 찾아와야 하는지 의문이 남는다. 결국은 데이터 확보가 관건이다.

대화가 가능한 챗봇이 등장하면 프라이버시 이슈도 등장한다. 질문이 오가는 상황이라면 개인의 민감한 이야기까지 기록될 텐데 이 기록을 어떻게 보호할 것이며 어디에 보관할지에 대한 논의는 거의 없다. 지금부터 준비해야 한다.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은 AI 시대를 어떻게 준비하나?

2020년 1학기 로스쿨 정규과목으로 ‘인공지능과 법’을 도입한다. AI 기술 동향과 작동 메커니즘을 중점 소개한다. AI가 어떤 사회적인 순기능과 역기능을 지닌 기술인지도 논의한다.

AI가 사회 깊숙이 들어올 때 법 제도는 어떤 역할을 할지, 책임 법제에 관한 내용 등 다각도로 AI를 법과 함께 살펴볼 예정이다.


―한국인공지능법학회 2020년 활동은?

AI는 사회 전체를 관통하는 흐름이다. 피할 수 없을 만큼 커다란 변화의 물결이다. 이 기술을 어떻게 개발할지 고민하는 동시에 이 흐름을 어떻게 잘 수용할지 고민하는 일은 사회적 과제다. 결국은 어떻게 법 제도를 설계할 것인지에 관한 고민이라고 볼 수 있다. 기술발전에 대한 논의만큼이나 중요하고 모두가 함께해야만 하는 고민이다. 이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는 사람이 많지 않은 것 같아 우려스럽다.

학회는 2020년 AI 관련 법 제도 관련 논의의 중요성을 알리는 활동에 힘쓸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