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오늘은 KT 수능일

입력 2019.12.26 06:00

통신판이 바뀌고 있다. 인공지능(AI), 블록체인, 클라우드 기술을 5G 통신에 접목해 미래 먹거리를 찾는 새로운 시도가 본격화됐다. 5G 전파를 세계에서 가장 먼저 쏜 우리나라 통신사만의 특권이기도 하다. 이런 경영환경 변화에도 KT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벤자민 버튼’마냥 자꾸 흐름에 역행하는 행보를 보인다. 리더십의 방향타를 똑바로 잡아줄 사람이 필요하다.

KT는 계열사 43개에 전체 직원수 6만명이 넘는 국내 최대 정보통신기술(ICT) 그룹이다. 이 큰 기업이 큰 그림을 그리지 못한다. 내부혁신은 실종됐다. 의사결정 속도가 느려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이라는 시대적 흐름에 발빠르게 대응하지 못한다는 지적을 받는다.

KT의 시간은 공기업 시절로 가는 듯하다. 그때는 통신판을 주도하기라도 했다. 지금은 시장과 업계를 이끌지도, 미래를 제시하지도 못한다. 세계 최초 상용화를 위해 글로벌 무대에서 ‘5G 로드맵’을 가장 먼저 제시하는 등 중요 역할을 맡을 때도 있지만, 대체로 판을 펼치는 시점이 경쟁사보다 늦을 때가 많다.

심지어 2위 통신 사업자 자리마저 위태위태하다. LTE 상용화 이후부터 야금야금 LG유플러스에 밀린다. 무선 가입자 점유율 같은 고착화한 사업 규모를 제외하고, 미래 성장성만 보면 LG유플러스에 사실상 2위 자리를 뺏겼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다.

LG유플러스는 구광모 LG그룹 회장이 취임 이후 더 강력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LG는 AI·로봇·자율주행차·전장 사업을 차세대 먹거리로 꼽았다. 5G를 매개체로 계열사 간 시너지를 극대화한다. 5G 시장 선점으로 ‘만년 3등’을 벗어나겠다는 LG유플러스의 의지가 돋보인다.

SK텔레콤은 ‘압도적 1등’를 지키기 위해 국내를 넘어 글로벌 시장으로 눈을 돌린다. 적과의 동침까지 불사한다. 1·3위 사업자가 5G 시장 선점을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고 속도를 낸다.

실례로 KT는 5G 킬러 콘텐츠인 실감 콘텐츠 사업에서 경쟁사보다 한발씩 뒤처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SK텔레콤과 LG유플러스는 아직 수익 창출이 불확실해도 VR·AR 사업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글로벌 기업과 협력에도 적극적이다.

SK텔레콤은 페이스북, 카카오, 넥슨 등과 실감 콘텐츠 협력을 이어간다. LG유플러스도 구글, 카카오와 협력을 진행한다. 실감 콘텐츠 생태계 확장을 위해 카카오와 앞다퉈 밀착하려는 양사 간 총성없는 전쟁이 벌어졌다. KT만 쏙 빠졌다.

클라우드 게임 분야도 마찬가지다. SK텔레콤이 마이크로소프트, LG유플러스가 엔비디아와 손을 잡은지 한참 지나서야 KT는 대만 유비투스에 손을 내밀었다.

유료방송 선두 자리도 위협을 받는다. 높은 격차를 유지하던 KT의 철옹성이 함락 위기다. LG유플러스가 CJ헬로비전을, SK텔레콤은 티브로드를 품은 사이 KT가 합산규제의 벽에 막혀 옴짝달싹 못한다.

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의 공세에 KT만 모호한 포지션을 지킨다. 지상파와 손잡고 토종 OTT의 결집을 강조한 SK텔레콤, 넷플릭스와 손을 잡고 실리를 택하면서도 케이블TV 인수로 대응력을 높인 LG유플러스와 대조적이다.

KT를 향한 바깥의 시선은 걱정 투성이다. 기자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다. "KT가 어쩌다 이 지경이 된 건지 모르겠어요. 정말 안타깝습니다." 한 정책 당국자의 말은 이러한 외부 시선을 압축적으로 전달한다. 심지어 경쟁사 관계자들도 고개를 끄덕일 정도다.

돌파구를 찾아야한다. 더 늦기 전에 내부 프로세스를 재정비하고 신성장동력 발굴에 힘써야 한다. 판에 흔들리지 않고 먼저 판을 쥐고 갈 과감성과 도전정신부터 되찾아야 한다. 글로벌 기술 흐름을 제대로 읽고 치고 나가야 한다.

문제는 정작 KT 안에 위기 의식도, 돌파 의지도 부족하다는 점이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우리가 꼴찌야 하겠어?"라는 안일함이 지배한다. LG유플러스가 턱밑까지 따라왔는데도 이를 알아채지도 못한다.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볼 능력까지 어느 새 잃어버린 탓이다. ‘만년 2등’에 안분지족하는 사내 분위기가 휩싸인 탓이다. 이대로 가면 자칫 덩치만 큰 3위 기업으로 전락할 시점만 더 빨리 올 뿐이다.

절박한 위기감을 가진 KT임직원들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들이 지쳐간다. 이들이 더 무기력해져 회복불능 상태가 되기 전에 분위기를 확 바꿀 계기가 절실하다.

오늘이다. KT가 차기회장 후보 심층 면접을 실시한다. 6만 임직원의 역량을 한데 모아 KT만의 리더십을 되찾을 CEO 후보를 골라낸다.

"오로지 회사의 경쟁력을 높일 분이 차기회장이 됐으면 합니다." KT 직원의 바람이 그대로 이뤄지길 바란다. KT가 지금 도대체 어디쯤 있는지 냉철하게 볼 줄 알고, 앞으로 어디로 가야할지 제시할 리더를 뽑기를 바란다.

오늘 시험을 치르는 이는 후보자들이 아니다. KT 지배구조위원회와 이사회다. KT의 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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