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수입차 제외, 차량 구매시 ‘내비게이션’만 선택 불가
차량 가격 인상 위한 꼼수 의문

# 직장인 O씨(부산 수영구, 31세)는 최근 신차 구매차 여러 자동차 매장을 방문하다 선택품목 구성에 매우 실망했다. 수년전부터 스마트폰으로 내비게이션을 사용한 O씨는 영업사원에게 선택품목 중 내비게이션만 제외할 수 있는지 물었지만 ‘불가'라는 답변을 들었다. 수입차는 물론 국산차도 내비게이션만 단독으로 선택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O씨는 납득하기 어려웠다.

자동차 구매시 내비게이션이 사실상 선택이 아닌 필수항목으로 분류돼 소비자 불만 목소리가 나온다. 스마트폰 지도(맵) 기능이 워낙 뛰어난데다가 실시간 업데이트도 이뤄져, 자동차 내비게이션을 사용하지 않는 드라이버가 늘고 있어서다.

현대차 더 뉴 그랜저 실내. / 현대자동차 제공
현대차 더 뉴 그랜저 실내. / 현대자동차 제공
26일 IT조선이 주요 국내 판매 자동차 브랜드의 편의 품목 구성을 확인한 결과, 내비게이션 단일 품목을 선택지로 제공하는 곳은 메르세데스-벤츠와 포르쉐, PSA(일부 차종 제외)에 그쳤다. 현대·기아차 등 국산 자동차 브랜드 대부분은 내비게이션을 다른 편의품목과 패키지로 묶어놔, 개별 선택은 불가능하다.

최근 자동차와 스마트폰의 연동기능이 강화되면서 ‘OEM 내비게이션 무용론'에 힘이 실린다. 안드로이드 오토와 애플 카플레이 등과 연동하면 스마트폰 내비게이션을 차량 내 디스플레이에서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어서다.

현대차 쏘나타 패키지 구성. / 현대자동차 홈페이지 갈무리
현대차 쏘나타 패키지 구성. / 현대자동차 홈페이지 갈무리
현대차 쏘나타의 경우 중급트림 프리미엄에서 멀티미디어 내비게이션 패키지(138만원)를 선택하지 않으면 듀얼 풀오토 에어컨, 스마트폰 무선충전대, 디지털키, 고급 아웃사이드 도어 핸들 등을 선택할 수 없다. 내비게이션과 무관하게 해당 기능을 사용하려면 상위트림을 구매해야 한다.

쉐보레 말리부는 ‘내비게이션 팩'에 후방카메라, 보스 사운드 시스템, 8인치 컬러 클러스터 등을 포함했다. 쏘나타와 마찬가지로 해당 품목을 별도로 선택하거나, 내비게이션만 제외하고 구매할 순 없다.

수입차 경우 다수의 업체가 내비게이션을 일괄 장착, 판매한다. 각 수입차 업체들은 자국 시장과 달리 한국서 선택지를 제한하는 경우가 많다. 생산 후 한국까지 운송에 1~2개월이 소요되고, 아직 규모의 경제를 보일 정도로 한국 수입차 시장이 크지 않아서다.

한국 내 신차 투입이 결정되면 소수의 트림을 중심으로 편의품목을 일괄 적용, 판매한다. 내비게이션이 포함되면 미국이나 유럽 등 해외 판매 가격 등을 고려했을 때 100만원 이상 차량 가격 인상 효과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소비자는 사실상 강제적으로 내비게이션을 구매해야 하지만, 수입차의 경우 부담해야할 금액을 정확히 알 수 조차 없다. 내비게이션을 기본 제공하는 브랜드 경우 원가 또는 설치 비용 등을 공개할 의무가 없어서다.

수입차 브랜드 관계자는 "수입차 브랜드가 국산차 브랜드처럼 한국에서 다양한 선택지를 제공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일"이라며 "시장조사에 근거해 한국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품목 위주로 구성, 생산하기 때문에 같은 차종이어도 타국에서 판매되는 차와 (가격이나 상품성의) 직접적인 비교는 어렵다"고 말했다.

자동차 업계는 내비게이션 별도 옵션에 대한 부정적인 입장이다. 소비자들이 내비게이션 장착을 희망한다는 이유다. 국산차 업계 한 관계자는 "신차 출시 전 시장조사를 해보면 국내 소비자들이 여전히 순정 내비게이션을 선호하는 것으로 조사된다"며 "중고차 시장에서도 순정 내비게이션을 선택할 경우 가격방어가 잘 된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하지만 소비자 목소리를 제대로 들은 것인지 의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스마트폰 보급과 함께 애프터마켓 시장에서 매립형 내비게이션 수요 자체가 급감했다"며 "이런 상황에서 (패키지 내 다른 편의품목을 제외했을 때) 순정 내비게이션을 소비자가 정말로 선호하는지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