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AI 퍼스트 "늦었다. 지름길부터 찾자" ② 대통령이 앞장서라

AI 패권을 잡기 위한 글로벌 경쟁이 치열하다. 미국, 중국, EU 등 주요국 최고 지도자들까지 앞장섰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019년 2월 ‘AI 분야에서 미국의 리더십 유지하기’란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5개월 뒤엔 이를 구체화 한 ‘연방 AI표준 개발계획’ 초안을 발표했다. 중국은 일찌감치 드라이브를 걸었다. 2016년 ‘차세대 AI 개발 계획’을 발표했다. 유럽연합(EU)도 2018년 4월 ‘AI 협력선언’을 통해 회원국의 AI 역량을 극대화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독일, 프랑스, 영국 등을 중심으로 국가 차원의 AI 육성 전략을 내놨다.

한국도 가세했다. 지난해 말 ‘AI국가전략’을 수립했다. 올해 전문인력 양성, 데이터산업 육성 등 ‘AI 일등국가’로 가는 원년으로 삼겠다는 계획도 내놨다. 더 늦지 않아 다행이지만 시간이 촉박하다. 속도감 있는 정책 실행으로 경쟁국과 격차를 최대한 좁혀야 한다.

그런데 이를 주도할 ‘컨트롤타워’의 역할과 권한이 명확하지 않은 것은 문제다. AI 선진국을 따라잡기는커녕 자칫 격차가 더 벌어질 수도 있다. 추격자 입장인 한국의 상황을 최대한 반영한 국가 AI 리더십을 하루빨리 재정립해야 한다. 그래서 제안한다. 대통령이 직접 뛰라.

문재인 대통령이 16일 대전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에서 열린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방송통신위원회 2020년도 업무보고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 청와대 제공
문재인 대통령이 16일 대전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에서 열린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방송통신위원회 2020년도 업무보고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 청와대 제공
간판 바뀐 ‘범정부 AI위원회’ 실행력 의구심 여전

4차산업혁명위원회(이하 4차위)가 AI 정책 컨트롤타워라는 막중한 짐을 졌다.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지만 특성상 행정적 구속력이 없다. 컨트롤타워 역할을 제대로 하려면 법률상 위원회 존재 근거를 명확히 해야 한다는 지적이 빗발쳤다.

자문기구의 한계는 출범한 2017년 9월에도 지적됐던 문제다. 행정적 구속력이 없다보니 그동안 별다른 활약을 펼치지 못하고, 결과물도 미미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정책 당국에 대한 조언자 역할에 그치며 실질적 권한을 부여받지 못했다.

이 때문에 4차위가 간판을 바꿀 AI위원회에 대한 산업계 기대감이 낮다. 대통령이 AI위원회의 실행 주체로서 역할을 하지 않는다면 달라질 것이 없기 때문이다.


정부는 2019년 12월 17일 AI국가전략을 발표하며 4차위를 ‘AI 중심 범국가 위원회(이하 AI위원회)’로 역할을 재정립하겠다고 밝혔다. AI위원회는 대통령 주재 전략회의와 대국민 보고를 통해 각 부처별 전략을 발표하고 추진 성과를 점검하는 역할을 한다. 범정부 협업을 표방하는 반면, 실행력 있는 기구로 업그레이드는 이뤄지지 않은 모양새다.

4차위를 AI위원회로 개편하는 일정도 아직 잡히지 않았다. 청와대 움직임이 둔하다. 대통령 주재 전략회의도 비정기적으로 열린다. 대통령이 관심을 갖고 AI 정책을 챙기고 실행하기보다는 보고만 받는 느낌이 강하다. 사실상 방치다.

장병규 4차위 위원장은 조선일보 인터뷰를 통해 4차위 한계를 토로했다. 그는 "이번 정부에서 혁신 성장은 우선순위에서 밀렸다"며 "문 대통령의 스타일이겠지만, 그동안 한 차례도 대통령과 독대를 못 했다"고 말했다. 대통령 직속 기구라는 껍데기만 있고 알맹이는 없었던 셈이다.

고진 산업경제혁신위원회 위원장(한국모바일산업협회 회장)도 2019년 10월 25일 서울 웨스턴조선호텔에서 열린 ‘4차산업혁명 대정부 권고안’ 발표 기자간담회에서 "4차위가 대통령령에 의한 자문기구지만, 다음 정부에서는 기본법에 의거한 좀 더 실행력 있는 기구로 격상됐으면 한다"는 바람을 밝혔다.

전문가들은 4차위를 AI위원회로 개편할 때 권한과 역할도 강화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대통령이 보고만 받고, 간헐적으로 나설 게 아니라 상시로 진두지휘하는 조직으로 격상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실은 이러한 기대와 한참 멀다. 청와대는 과학기술보좌관 산하에 ‘디지털혁신비서관’을 새로 신설해 AI 정책을 맡길 방침이다. 차관급도 아닌 1급 자리 하나로 이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더욱이 디지털혁신비서관이 챙길 사안이 AI 말고도 수두룩하다. 다행히 전문성 있는 관료 출신을 비서관으로 선임했지만 한때 정치권 인사가 거론됐다고도 한다. 청와대의 AI강국 의지가 의심을 받는 대목이다.

장명희 4차산업혁명위원회 위원·고진 위원·장병규 위원장·이상용 위원(왼쪽부터)이 2019년 10월 25일 ‘4차 산업혁명 대정부 권고안’을 발표하고 있다. / 류은주 기자
장명희 4차산업혁명위원회 위원·고진 위원·장병규 위원장·이상용 위원(왼쪽부터)이 2019년 10월 25일 ‘4차 산업혁명 대정부 권고안’을 발표하고 있다. / 류은주 기자
"AI위원회, 대통령 진두 지휘 조직으로 격상해야"

AI 조직 체계 부실은 4차위나 청와대 비서실 뿐만이 아니다. 예산과 조직이 있는 정부부처 역시 중구난방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내 과학기술혁신본부, 기획재정부 내 혁신성장추진단, 중소기업벤처부 등이 업무 영역이 겹치고 중복돼 혼란만 키운다. 정작 이런 조직에서 AI업무는 후순위다. 과기혁신본부는 소재부품장비 국산화에, 혁신성장추진단은 금융혁신에, 중기벤처부는 벤처활성화에 집중한다. AI는 이런 정책 과제와 다 맞물려 있어 시너지를 낼 수 있지만 마치 따로 있는 영역처럼 취급받는다.

김영환 인공지능연구원(AIRI) 원장은 "AI 정책 컨트롤타워로서 전담 조직은 부처 칸막이를 없애 협업을 이루고 규제를 철폐하는 등 두 가지 역할을 해야하는데, 대통령이 직접 나서지 않는 한 실현이 어렵다"며 "이런 역할을 하는 컨트롤타워가 없다는 것은 AI가 실제로 국가 아젠다 우선순위에서 높지 않다는 뜻 아닌가"라고 되물었다.

AI퍼스트 전략은 특정 부처 장관이 혼자 밀고 나갈 만한 사안이 아니다. 세부 정책을 향후 AI위원회가 짜더라도 결정을 대통령이 직접 내리는 방향으로 가야만 진정한 ‘퍼스트’로 전환이 가능하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 한 관계자는 "AI 규제 혁파, 부처·산업간 협업·융합 문제를 속도감있게 풀려면 장관급으로도 힘든 데 민간으로 꾸려진 일개 위원회가 제 역할을 하긴 어려울 것"이라며 "기득권 세력이 공고히 버티는 이상 위원회의 노력은 계란으로 바위치기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AI위원회는 대통령이 보고만 받는 게 아니라 스스로 실행 조직의 장 처럼 행동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AI국가전략 주무부처인 과기정통부도 더욱 적극적, 능동적이어야 나서야 한다. AI위원회를 예산과 조직이 있는 실행 조직으로 바뀌기 위한 시간도 없고, 법적 근거도 없어 당장 기존 정부조직에 기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과기정통부가 역할만 잘해도 정책 실행 속도가 붙을 것으로 본다.

장석영 과기정통부 제2차관은 "AI 정책 컨트롤타워 조직과 기능을 따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기본적으로 과기정통부가 중심 역할을 하고, 범정부 협업체계인 대통령 주재 전략회의와 대국민 보고를 통해 각 부처 의견을 모아 속도감 있게 정책을 실행해 나가겠다"고 설명했다. AI를 국가 아젠다로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어야 한다는 산업계 바람과 거리가 있다.

하지만 당장 새로운 전담조직을 만드는 게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정부 조직과 업무를 흔드는 것도 어렵고, 총선 등 정치일정까지 겹쳐 신속한 법령 개정도 쉽지 않다. 더욱이 대통령 임기 후반기로 가는 상황이라 정부 조직 개편은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다. 결국 현 조직체계 활용을 극대화할 수 밖에 없는데 이 또한 대통령의 관심과 의지가 없으면 불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