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현모 KT 차기 CEO 내정자가 16일 임원인사 및 조직개편을 통해 황창규 회장의 색채를 지웠다. 황 회장의 두터운 신임을 받은 고위급 임원이 대부분 물러났다. 차기 CEO 라이벌이었던 박윤영 기업사업부문장은 탕평 인사로 끌어안았다. 박 부문장은 사장 승진으로 ‘황의 남자’에서 ‘구의 남자’로 탈바꿈했다. 사장급 CEO로서 지배력을 강화하는 콘트롤 타워 조직도 신설했다.

KT는 사장 1명, 부사장 2명, 전무 5명이 승진했고, 상무 21명이 새로 임원이 됐다. 임원 수는 전년 대비 12% 줄어든 98명이다. 2016년 이후 4년 만에 임원 수가 두 자리 수로 축소됐다. 전무 이상 고위직을 33명에서 25명으로 줄여 젊고 민첩한 실무형 조직으로 변화를 꾀했다.

구현모 KT 차기 CEO 내정자(왼쪽)·황창규 회장. / KT 제공
구현모 KT 차기 CEO 내정자(왼쪽)·황창규 회장. / KT 제공
구 사장은 상무급 이상 승진자 29명 중 자신이 담당하는 커스터머&미디어부문에서 11명의 승진 인사를 냈다. 투톱 체제를 구성한 박윤영 사장이 맡은 기업사업부문에서도 5명의 승진 인사가 나왔다.

반면 사장급에서 김인회 경영기획부문장, 이동면 미래플랫폼사업부문장, 오성목 네트워크부문장을 경영지원부문 그룹인재실로 부근무 인사를 내렸다. 부사장급에선 윤종진 홍보실장, 이필재 마케팅부문장에게 부근무 인사를 내렸다.

김인회 사장과 윤종진 부사장은 황 회장과 ‘삼성맨’이란 공통분모를 안은 복심이다. 이동면, 오성목 사장도 황 회장의 신임이 두터웠던 인물이다. 이필재 부사장 역시 황 회장 부임 이후 상무에서 부사장까지 승진 가도를 달렸다.

부근무 발령을 받은 5인은 사실상 현직에서 물러난 상태다. 향후 거취가 불투명하다. 계열사 대표이사로 이동할 가능성도 있지만 구 사장이 변화와 혁신을 강조한 만큼 희박한 확률이다.

이통업계 한 관계자는 "계열사 대표이사는 기존 KT 부사장·전무급의 인사가 전출되는 경우가 많다"며 "사장급은 운신의 폭이 좁아 갈 수 있는 자리가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구 사장은 커스터머&미디어부문과 마케팅부문을 합쳐 ‘커스터머 부문’을 신설했다. 5G, 기가인터넷을 중심으로 유무선 사업과 IPTV, VR 등 미디어플랫폼 사업에 대한 상품∙서비스 개발과 영업을 총괄한다.

차기 CEO 내정자 신분인 구 사장은 현재 커스터머부문장을 맡고 있지만 CEO로 정식 취임하는 3월 이후에는 새로운 커스터머부문장을 임명할 예정이다. 강국현 KT스카이라이프 대표이사(부사장)이 거론된다.

구 사장은 미래를 위한 3대 핵심과제로 ▲AI 및 클라우드 분야의 핵심인재 육성 ▲고객발 자기혁신 ▲사회적 가치를 선정했다. 3대 핵심과제는 CEO가 직접 주도한다. 이를 지원할 CEO 직속조직으로 ‘미래가치TF’를 신설한다. TF장은 김형욱 전무다.

혁신 콘트롤 타워인 미래가치TF는 KT의 변화를 이끄는 동시에 CEO를 보좌하는 역할을 한다. CEO 직급이 회장에서 사장으로 변경된 후 지배력 약화 우려를 불식하기 위한 행보로 풀이된다. 2014년 신임 회장으로 부임한 황 회장이 그룹 구조조정본부 역할을 하던 코퍼레이트센터를 없애고 조직을 단순하고 수평한 구조로 바꾼 것과 차이를 보인다.

미래가치TF는 과거 이석채 전 회장이 취임 직후 신설한 ‘코퍼레이트센터’와 닮았다. 이 전 회장은 CEO의 통합경영을 지원하기 위한 코퍼레이트센터를 신설해 전사 차원의 전략 수립과 통제기능을 수행하도록 했다. 2012년에는 그룹경영 시너지 강화를 위해 코퍼레이트센터내 관련 조직을 통합한 후 시너지경영실을 만들었다.

코퍼레이트센터는 구 사장에게도 익숙한 조직이다. 구 사장은 2010년 1월 조직개편 당시 코퍼레이트센터 경영전략담당 상무를 맡은 바 있다. CEO 취임 초기 그룹 콘트롤 타워 역할을 하는 조직 신설의 필요성을 누구보다 절감했을 것으로 판단된다.

박종욱 KT 전략기획실장은 "KT는 고객의 요구를 적극 수용하고 이를 신속하게 만족시키기 위해 고객에 초점을 맞춰 조직을 변화시켰다"며 "중용된 인재들은 차기 CEO로 내정된 구 사장의 경영을 뒷받침하고 KT에 변화와 혁신을 가져올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