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도 시행 1년을 맞은 ICT 규제샌드박스(이하 규제샌드박스)가 야심찬 계획과 달리 성과가 미흡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마음껏 뛰놀도록 만든 상자지만, 국가 성장을 견인할 인공지능(AI)·블록체인 등 미래기술 기업의 진입장벽은 높았다는 것이다.

규제샌드박스는 아이들이 다칠 위험 없이 맘껏 뛰놀게 하기 위한 모래놀이터처럼 기업이 각종 규제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신사업을 펼칠 ‘샌드박스(Sandbox)’를 만들어주자는 취지에서 2019년 1월 만든 규제특례허가 제도다.

ICT 규제 샌드박스 홈페이지 화면. / ICT 규제 샌드박스 홈페이지 갈무리
ICT 규제 샌드박스 홈페이지 화면. / ICT 규제 샌드박스 홈페이지 갈무리
30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따르면 규제샌드박스는 2019년 120건의 신청 과제를 받아 102건(85%)을 처리했다. 이중 총 40건(임시허가 18건, 실증특례 22건)이 7차례 심의위원회를 거쳐 신규 지정됐다. 시장출시로 이어진 것은 모바일 전자고지, 공유주방, 반반택시 등 16건이다.

시행 첫해인 점을 감안해 양적으로는 기대 이상의 성과를 낸 것이 맞다. 하지만 핵심 신산업·신기술이 자유롭게 성장할 수 있도록 지렛대 역할을 했다고 보긴 어렵다.

국무조정실에 따르면 2019년 승인한 4대 분야 규제샌드박스(ICT‧산업융합‧지역특구‧금융) 총 195건 과제 중 블록체인은 14건(7%), AI는 5건(3%)이다. 이중 과기정통부가 주관하는 ICT 부문에서 블록체인은 3건에 불과하다. AI는 한건도 지정받지 못했다. 블록체인으로 분류된 ‘모바일 운전면허 확인 서비스’는 이통3사가 동시 신청해 승인받아 3건의 실적으로 잡혔다. 실상은 1건과 마찬가지다.

혁신 성장의 한축인 5G 분야 역시 LG유플러스가 낸 ‘VR 게임을 통한 이동형 5G 체험 서비스’가 유일했다.

과기정통부는 4차 산업혁명 대응의 주무부처로서 핵심 규제 혁파에는 소극적이다. 규제샌드박스에서도 과제 지정 숫자에 집착한 나머지 다양성이나 혁신성은 부족했다. 파급력이 큰 AI·블록체인 분야에서는 기업이 마음껏 뛰놀만한 공간이 없었던 셈이다.

실제 과기정통부가 신청 받은 AI 기반 온라인 안경 판매 서비스, 원격화상 기반 일반의약품 판매기 등 과제는 혁신적인 AI 신기술‧서비스임에도 이해관계자와 극심한 갈등 때문에 승인하지 못했다.

블록체인 기반 핀테크 스타트업 ‘모인(MOIN)’이 신청한 해외송금 서비스는 암호화폐가 자금세탁에 악용될 수도 있다는 이유로 승인이 늦어진다.

장석영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제2차관이 3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본관 브리핑룸에서 'ICT 규제 샌드박스 운영 1년 성과'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제공
장석영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제2차관이 3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본관 브리핑룸에서 'ICT 규제 샌드박스 운영 1년 성과'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제공
과기정통부는 관계부처와 협력 강화는 물론 4차산업혁명위원회가 주관하는 ‘해커톤’과 연계해 이해관계 중재에 나선다. 1년간 시행착오를 바탕으로 갈등조정 체계도 구축한다.

장석영 과기정통부 제2차관은 30일 브리핑에서 "부처 내 과제는 갈등조정위원회에서 다루고,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있고 의견차가 큰 과제는 4차위 해커톤으로 격차를 줄일 수 있을 것이다"라며 "해커톤은 본 위원회 위원과 다양한 이해관계자, 전문가들이 참여하기 때문에 4차위의 기본 기능과 조화를 이룰 수 있다"고 말했다.

과기정통부는 규제 샌드박스 임시허가의 유효기간을 현행 최장 4년(2년+2년연장)에서 법령정비시까지로 하는 정보통신융합법 개정을 추진한다. 이 개정안은 2019년 9월 노웅래 의원이 발의해 국회 계류 중이다. 산업융합과 금융융합과 마찬가지로 제도간 균형을 맞추기 위한 노력이다.

업계에서는 과기정통부가 규제샌드박스를 통해 AI·블록체인 분야에서 국가 성장동력을 강화하는 큰그림을 그려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를 통해 해당 분야 규제 완화에 속도를 높이고, 시장 패러다임을 바꾸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규제샌드박스는 양에 치중한 성과주의에서 벗어나 5G·AI·블록체인 등 분야에서 파급력을 높일 수 있는 과제를 발굴해야 한다"며 "취지에 맞게 기업이 적극 제안하고 신청하도록 진입장벽을 낮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기영 과기정통부 장관은 "2020년에는 제도의 질을 개선하고 ICT 신기술·서비스의 다양성, 혁신성에 집중해 5G, AI 등 신기술 및 혁신 서비스가 국민에게 체감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