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화폐 업체 잇단 폐업에 업계 "규제 불확실성 해소해달라"

입력 2020.01.31 06:00

암호화폐(가상화폐) 관련 업체들이 줄줄이 문을 닫으면서 업계에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진다. 수 년째 이어진 규제 공백에 따른 불확실성이 폐업의 가장 큰 이유로 꼽힌다.

30일 암호화폐 관련 업계에 따르면 국내 대표 암호화폐 지갑 업체로 꼽히던 비트베리가 서비스 종료를 선언했다. 시장 상황 악화와 규제 불확실성 때문으로 풀이된다. 업계서 암호화폐 시장 제도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다.

./비트베리 홈페이지 갈무리
비트베리는 두나무 자회사 루트원소프트가 2018년 8월 출시한 서비스다. 카카오 계정, 모바일 연락처 등을 연동해 암호화폐를 보관·송금하도록 설계해 사용자 편의성을 강화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장성훈 루트원소프트 대표는 29일 "블록체인 산업 시장 악화와 불확실성 영향으로 사업 종료를 결정했다"며 "비트베리 모든 암호화폐 지원을 중지하며, 이용자가 보관하는 모든 암호화폐는 출금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번 서비스 종료에 따라 비트베리 이용자는 개인 암호화폐를 2월 29일까지 출금해야 한다.

업계는 비트베리가 사용자 편의성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데도 수익성을 내지 못한 이유로 ‘무규제’를 꼽는다. 비트베리와 가까운 한 업계 관계자는 "블록체인 시장 침체와 더불어 정부 무규제 기조가 사업 전망을 하기 어렵게 만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수익성 악화는 비트베리만의 문제가 아니다. 2019년 암호화폐 거래소 비트키니는 "세계 코인 시장 위축과 국내 규제, 사업 부진 등 여러 악재가 겹쳤다"며 서비스 종료를 알렸다. 업체 관계자는 당시 "고객 신뢰도 하락도 있지만, 무엇보다 정부 대책으로 은행 법인 계좌를 사용할 수 없게 돼 큰 타격을 입었다"고 설명했다.

무분별하게 생겨난 암호화폐 거래소도 수익성 악화를 부채질 했다. 암호화폐 거래소 프릭스빗은 "암호화폐 시장은 성장성이 있다고 믿고 운영했지만 대내외적인 부정적 영향으로 정상 운영이 불가능해 졌다"며 폐업 이유를 밝혔다. 이어 "거래소 이용자에게 인센티브를 부여하고 모두 상생하는 거래소 환경을 만들고자 했지만 수 많은 신생거래소로 인해 사업을 접어야 했다"고 덧붙였다.

실제 2018년 초부터 2019년 사이 국내 암호화폐 거래소는 우후죽순으로 생겨났다. 산업 관련 규제가 없다보니 사업자 신고를 하지 않고도 누구나 거래소를 세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암호화폐 산업은 여느 사업에서도 볼 수 없던 규모의 먹튀 논란과 횡령, 사기가 횡행했다.

제도화 목 빠지게 기다리는 업계…"규제 불확실성 해소해달라"

암호화폐 시장서 간신히 버텨온 업계 관계자들은 하루 빨리 시장을 규율할 수 있는 법이 마련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규제가 이뤄져야만 암호화폐를 대하는 국민 인식이 변화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또 난무하는 범법 행위를 줄여 산업이 성장할 기틀을 마련하는 것도 제대로 된 규제안이 이뤄져야만 가능하다고 본다.

특히 업계는 정부가 그나마 있던 암호화폐 거래소 벤처 기업 지정을 제외한 것이 가장 큰 패착이라고 지적한다. 중소기업벤처부는 2018년 비정상적인 투기과열과 유사수신 등 불법행위를 이유로 암호화 자산 매매 및 중개업을 벤처 기업 지정에서 제외했다. 당시 정부는 "블록체인 기반 암호화 자산 매매 및 중개업과 관련해 비정상적인 투기과열 현상과 유사수신·자금세탁·해킹 등 불법행위가 발생함에 따라 이를 벤처기업에 포함되지 않는 업종으로 정해 건전한 산업 생태계를 형성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업계 한 관계자는 "정부가 암호화폐 거래소를 벤처업종에서 제외하면서 암호화폐 거래소는 유흥 업종과 다를 바 없어졌다"며 "제도화가 이뤄지지 않는 이상 이러한 인식은 개선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암호화폐 시장에서 지금까지 살아남은 스타트업이 법 테두리 밖에서 당당하지 못한 상태로 사업하는 일은 이제 없어야 한다"며 "특금법을 통해 규제 불확실성이 해소되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특금법이란 ‘특정 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의 줄임말로,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 기준이 반영된 법안이다. 암호화폐 취급업소 정보보호 관리체계 인증과 실명확인 입·출금 계정 운영 등에 대한 내용을 포함한다. 현재 특금법 개정안은 국회 문턱을 못 넘고 있다.

업계는 정부의 무규제 기조와 규제 불확실성은 스타트업이 포진한 암호화폐 산업에서 큰 위험 요소로 작용할 수 밖에 없다고 입을 모은다.

암호화폐 거래소 관계자는 "특금법이 국회 문턱을 못 넘는 상황에서 관련 시행령이 어떤 기조로 나올 지 알 수 없다"며 "자금 여력이 탄탄한 대기업이라면 다방면으로 대비할 수 있지만 스타트업은 할 수 있는 것이 제한돼 있다"고 토로했다.

키워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