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리자드엔터테인먼트가 2020년 1월 29일 출시한 ‘워크래프트3 리포지드’의 낮은 퀄리티에 분노한 게임 이용자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심지어 분노한 한 이용자는 인터넷 커뮤니티에 ‘이런 퀄리티로 만드려면 디아블로2 리마스터는 차라리 아예 출시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할 정도다.

2002년·2003년에 등장한 해당 게임의 원작 ‘워크래프트3’와 그 확장팩은 게임 팬들 사이서 ‘명작’으로 평가받는다. 리포지드가 출시되면 이 원작을 단순한 그래픽 업그레이드가 아니라 마치 새 게임을 하듯 즐길 수 있다는 소식에 전 세계 수 많은 팬이 기다려왔다. 예약 구매 이후 1년이 넘게 기다린 팬도 많다.

초등학생 때부터 워크래프트3를 즐기던 기자도 워크래프트3 리포지드를 예약 구매한 뒤 출시를 손꼽아 기다렸다. 하지만 게임을 해본 뒤 이때까지의 기대는 안타까움으로 바뀌고 말았다. 출시 시점에 여러 단점을 꼽을 수 있겠으나, 가장 대표적인 단점은 원작에도 못미치는 이펙트 수준이다.

특히 강한 회오리로 적을 띄워 행동 불능으로 만드는 ‘사이클론’과 검을 들고 회전해 폭풍을 일으켜 적들을 갈갈이 찢는 ‘블레이드스톰’ 스킬은 원작의 설정을 파괴하는 수준으로 조악한 품질을 보였다. 블리자드가 게임 개발에 열심히 임했는지가 의심될 정도다.

원작과 리포지드에서 스킬 사이클론을 사용한 영상. / 온라인 커뮤니티 갈무리

리포지드는 이용자를 위한 '선물'격 작품이어야 한다. 시리즈의 근간이 되는 워크래프트1은 1994년 출시된 작품이다. 비교적 최근 나온 워크래프트3도 2002년 출시됐다. 그만큼 게임은 물론 세계관과 등장 인물 등에 애착을 가진 이용자가 많고, 그 충성도 또한 높다.

최근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에 이용자가 가장 많이 호응했던 순간을 떠올려보라. 굴단이 죽은 줄로만 알았던 안티히어로 격 인물 일리단을 되살렸을 때였다. 온 커뮤니티가 '살아단 님이 일리계신다'며 난리가 났다.

블리자드가 출시한 히어로즈 오브 더 스톰을 즐기는 이용자 중에서는 워크래프트의 이야기는 물론 등장인물의 대사까지도 줄줄 욀 수 있을 정도로 게임을 사랑하는 이용자가 많다. 이는 한국이 아닌 다른나라도 다르지 않다. 특히 중국에서 워크래프트3는 국기(國技) 수준으로 인기가 많다.

어떻게 이렇게 충성도 높은 이용자에게, 이런 퀄리티의 게임을 안겨줄 생각을 할 수 있나.

심지어 블리자드는 당초 출시 목표라고 알렸던 2019년 12월에 이미 한 차례 게임 출시 시기를 늦춘다고 통보한 바 있다. 오랜 시간 기다린 이용자에 대한 보상도 없다. 왜 이런 결단력으로 게임 출시를 다시 한 차례 대폭 미뤄 재정비할 생각을 하지 않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만약, 리포지드가 팬의 질타를 받을 것을 몰랐다면 심각한 무능이다. 알고도 게임을 출시했다면 블리자드를 꾸준히 사랑하는 이용자를 기만한 것이 된다. 게임 이용자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헤아리던 회사가 감을 잃었다.

30일 오전 11시 기준 메타크리틱 기준 워크래프트3 리포지드 이용자 평점은 1.8점이다. 출시하자마자 ‘최악의 성적표’를 받아든 셈이다. / 메타크리틱 갈무리
30일 오전 11시 기준 메타크리틱 기준 워크래프트3 리포지드 이용자 평점은 1.8점이다. 출시하자마자 ‘최악의 성적표’를 받아든 셈이다. / 메타크리틱 갈무리
최근 게임 업계에서는 지식재산권(IP) 확보 전쟁이 한창이다. 리니지, A3, 블레스, 로한, 에오스, 블소, 아이온 등 영향력 있는 IP를 확보한 것이 곧 경쟁력인 시대다. 게임사 위메이드는 미르의전설 IP를 무단 도용하는 행위를 막고, IP의 가치를 향상하기 위한 회사 '전기아이피'를 세울 정도다.

그 중에서도 블리자드는 지식재산권(IP)하면 세계 게임 업체 중에서도 최고로 꼽을 정도로 좋은 IP를 다수 보유한 회사다. 비게임 이용자도 이름만 들으면 아는 워크래프트, 스타크래프트, 디아블로, 오버워치 등을 보유했다. 보석같은 IP의 가치를 제 손으로 떨어뜨리는 최근의 블리자드를 보면 기자로서도, 블리자드라는 게임사의 오랜 팬으로서도 아쉬운 기분이 든다.

블리자드는 스타크래프트 리마스터는 왜 이용자의 열띤 호응을 받았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아직 게임을 즐기고, 사랑해주는 이용자를 위한 콘텐츠를 선보였기 때문이다. 리포지드는 한발짝 더 나아가 새 게임같은 퀄리티를 보여준다고 자신있게 말했으면서도, 더 비싼 가격을 책정했으면서도 블리자드라는 이름에 부끄러운 퀄리티로 출시됐다.

아직 늦지 않았다. 하지만 보통 방법으로는 안된다. 회사는 지금이라도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을 고칠 수 있는지, 언제까지 어떤 순서로 개선할 것인지를 이용자에게 공개해야 한다. 이에 더해 개선 과정에서 이용자 의견을 들을 기회를 다수 마련해야할 것으로 보인다. 단지 게임 하나의 흥행을 위해서가 아니다. 블리자드 게임을 좋아하는 팬과, 보석같은 IP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