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구매를 검토중인 직장인 박모씨(35)는 최근 생각을 바꿨다. 전기차 충전시설이 부족하다는 지인의 말을 듣고 시기상조라는 결론을 내린 것. 명절이면 충전소에 차량이 몰려 시간이 오래걸리고, 대형마트나 관공서 등을 제외하면 마땅히 충전 장소를 찾기 어렵다는 점이 결정적 계기로 작용했다.

딜로이트글로벌이 2019년 9~10월 한국 소비자를 상대로 진행한 조사를 토대로 작성한 ‘2020 글로벌 자동차 소비자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전기차 구매를 주저하게 만드는 요인에 대해 한국 소비자 34%는 충전 인프라 부족을 꼽았다. 배터리 기술 관련 안전 문제·충전 시간(19%), 차값(16%), 충전 후 운전 가능 거리(12%) 등 답변이 뒤를 이었다.

전기차 보급 확대 정책에 따라 올해 국내 전기자동차 수는 15만대를 훌쩍 넘길 전망이다. 환경부와 국토부에 따르면 2019년 말 기준 전기차 등록 대수는 9만대에 육박한다. 2019년 한해에만 3만5000대 이상 늘었다. 정부는 2022년까지 43만대를 보급해 친환경차 대중화 시대를 열겠다는 목표다.

그럼에도 충전 인프라 고도화는 갈길이 멀다. 전기차 충전소는 물론 충전소 내 충전기 대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해 전기차 운전자 불만이 많다. 단순 충전소만 확장할 게 아니라 급속충전기 설치 대수를 늘리고, 차량 유동량에 따라 접근성과 편의성을 극대화한 인프라 구축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9년 10월 15일 경기 화성의 현대차 남양연구소를 찾아 전기차·수소차 및 자율주행차 등 미래차 분야에서 세계를 선도하겠다는 미래차 국가비전을 발표했다. 문 대통령은 2030년 국내 신차 판매 중 전기차 수소차 등 친환경차를 33%로 늘리고, 세계시장에서 한국 점유율은 10%로 올리겠다는 계획을 언급했다. 이를 위해 2025년까지 전기차 급속충전기는 1만5000개를 설치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하지만 이같은 숫자로는 급증하는 전기차 충전 수요를 감당하지 못할 것이란 우려가 있다.

환경부에 따르면 2019년 말 기준 공개 설치된 전기차 충전기는 1만7997개다. 완속이 1만2061개, 급속이 5936개다. 전기차 5대당 충전기가 1대에 불과한 셈이다. 미등록된 충전기 숫자를 감안해도 턱없이 부족한 숫자다. 산술적으로 보면 전기차 43만대 보급 예정인 2022년에도 급속충전기는 1만대에 미치지 못할 것으로 분석된다.

실제 충전기는 대형마트, 주유소, 고속도로 휴게소를 중심으로 1~2기 설치돼 있지만 다른 차량이 충전 중일 때 30분~1시간을 기다려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전기차 대수가 많아질수록 차량이 몰리는 장소에서 적체현상은 심화할 것으로 관측된다. 충전 인프라를 실질적으로 개선하려면 사용률이 높은 공용 충전소 마다 충전기 대수를 늘려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50㎾급이 다수인 급속충전기도 100㎾급 고용량 급속충전기로 설치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기차 주행거리가 늘어나면서 탑재되는 배터리 용량도 커졌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현재의 전기차 충전소 인프라는 충전기 설치 대수 대비 효율이 떨어진다"며 "차량 유동량 등을 파악한 후 실제 차량이 많은 곳에 충전기를 추가로 설치해야 한다"고 말했다.

환경부 관계자는 "2025년까지 급속충전기 1만5000개 설치 완료를 목표로 인프라 구축에 나서고 있다"며 "급속충전기는 설치에 시간이 걸리는 만큼 완속충전기도 곳곳에 효율적으로 설치해 전기차 운전자의 불편을 줄이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