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韓영화 도약 '기생충'이 시작이어야

입력 2020.02.14 14:50

보이그룹 BTS가 세계 음악 시장을 휘어잡은데 이어, 이번에는 한국 영화 ‘기생충’이 영화계 최고 권위의 상인 아카데미상을 받았다. 하나만 받아도 대단하다는 이 상을 기생충은 작품·감독·각본·국제영화상 등 4개 부문을 거머쥐었다. 유래 없는 이번 시상 결과에 세계 영화계가 놀랐다.

세계 영화 마니아들은 기생충을 보기 위해 앞다퉈 극장을 찾는다고 한다. 짜파구리 라면, 필라이트 맥주와 독도는 우리 땅 노래를 개사한 제시카송 등 영화 속 소품도 세계에서 인기다. 이쯤 되면 기생충이 한류 신드롬에 불을 지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은 매출 기준 세계 5위권 순위를 기록하는 영화 시장 선진국이다. 국민 한명이 연간 영화 4.18편을 보고, 2억명이 넘는 관객(2018년 영화진흥위원회 조사)이 극장을 찾는다. 4DX와 멀티플렉스 등 영화 기술을 먼저 받아들이고, 개량해 다른 나라에 수출한다.

기생충에 앞서 임권택 감독의 영화 ‘취화선’,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와 ‘박쥐’, 이창동 감독의 ‘밀양’과 ‘시’ 등 여러 작품이 칸을 비롯한 세계 명 영화제에서 상을 받았다. 한국 영화계의 토양이 세계의 인정을 받는 명작을 만들 만큼 튼튼하다는 증거다.

그럼에도 이제 처음 받은 아카데미상이다. 늦은 감도 들지만, 단숨에 4관왕에 오른데서 잠재력도 느꼈다. 이어 우려했다. 세계인의 극찬을 받은 한국 영화가 기생충이 시작이자 끝이 되지 않을까 하는. 이 비옥한 토양을 살려 또다른 명작 영화를 만들고 알리지 못하지 않을까 하는.

한국 영화를 세계에 알리려면, 기생충이 시작이자 끝이 되지 않으려면 영화계와 관객 모두 합심해 노력해야 한다.

우선 자본 및 투자가 필요하다. 영화는 맨손으로 만들 수 없다. 문화 산업 육성 차원에서 기업 투자가 많을 수록 좋겠다. 기생충을 만드는데 큰 역할을 한 이미경 CJ 부회장이 예시다. 수상 현장에 나서 소감을 말한 그녀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그럴 일이 아니다. 프로듀서 자격으로 충분히 소감을 발표할 수 있다. 그보다는 작품 투자와 배급, 로비에 힘쓴 이미경 부회장의 공로를 더 높이 칠 일이다.

자본과 투자를 등에 업었다면, 영화 제작계 및 배우는 과감하게 시도하고 모험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다양한 작품을 만들어 관객의 평가를 받아야 한다. 폭넓은 관객을 매료할 흥행 영화도 좋지만, 작품성과 메시지를 담은 다양성 영화와 사회를 비판하는 다큐멘터리 영화도 만들어져야 한다. 그 과정에서 영화계의 양과 질 모두 좋아진다.

극장 업계는 다양한 영화를 공평하게 상영해 관객이 찾을 기회를 줘야 한다. 한국 대형 극장은 그간 스크린 독점 문제로 꾸준히 비판 받았다. 흥행에만 눈이 멀어 작품성, 잠재력을 가진 중소형 영화를 외면한다면? 관객이 다양한 영화를 즐길 권리를 제한한다면? 기생충처럼 개성 있는 작품은 등장하지 못하거나 외면받을 것이다.

실력 있는 번역가를 양성하고, 이들을 제대로 예우하는 문화도 필수다. 기생충이 해외서 인정 받은 데에 한글의 묘미를 외국 평론가 및 관객에게 전달하려 애쓴 번역가 달시 파켓의 노고를 빼놓을 수 없다.

해외 명작 영화를 한글로 소개하는 숱한 한국 번역가도 있다. 영화라는 구슬은 번역가가 실로 꿴 후에야 보배가 된다. 우리는 과연 번역가에게 제대로 된 대우를, 관심을 주고 있는가.

정부 지원도 필수다. 정권이 바뀌어도 꾸준히 이어지도록, 장기적 관점에서의 문화 예술 산업 진흥책을 세워야 한다. 정부가 나서 예술가를 차별하고 핍박하는 데 쓴 블랙리스트는 불행한 역사다. 두번 다시 반복하지 않도록 두고두고 반면교사할 일이다.

쌀밥 두 그릇 먹으면 배부르다는 격이다. 하지만, 한국 영화계에서는 이 당연한 이야기들이 잘 지켜지지 않았다. 기생충을 계기로 영화 문화를 돌아볼 일이다. 한국 영화계의 토양을 더욱 비옥하게 할 일이다.

봉준호 감독, 그리고 그의 영화 기생충의 아카데미 4관왕 소식이 전해진 10일, 한국 헐리우드 키드들은 SNS로 축하 메시지를 주고받느라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냈다. 이 싫지 않은 소란이 내년에도, 나아가 매년 이맘때 열리는 연례 행사가 되는 상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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