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기획 AI는 내 친구] ⑥ AI 안 쓰는 의사만 자리 잃는다

입력 2020.03.02 06:00

이미 일상이 된 해외 의료XAI
진단부터 정신치료까지 급속 확산
의사 대체 없어도 축소는 불가피
데이터 숨통 튼 한국, 의료법 철벽 여전
코로나19 계기 논의 활성화

① AI 퍼스트 "늦었다. 지름길부터 찾자" ② 대통령이 앞장서라 ③ 가르칠 교수부터 키워라
④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데이터 ⑤ 4050 재교육 활용하라 ⑥ AI 안 쓰는 의사만 자리 잃는다

"열은 좀 내린 것 같은데 아직도 머리는 살짝 어지럽습니다."

한 환자가 로봇을 정면에 두고 의료진과 대화를 나눈다. 로봇 상단에 장착한 화면에는 의사 얼굴이 보인다. 스피커로는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환자는 증상을 묻는 의료진 질문에 답하고 주의 사항을 전해 듣는다.

미국 캘리포니아에 있는 프로비던스 세인트 요셉 메디컬 센터에서 매일같이 벌어지는 장면이다. 이 병원은 2019년 하반기부터 마이크로소프트 인공지능(AI) 도구 등을 활용해 일부 환자를 돌본다.

AI 활용을 확대하면서 의료계와 시장에 새 바람이 분다. 코로나19가 무서운 속도로 확산하는 시국을 맞아 원격 의료를 통해 의료진의 감염 확률을 줄이는 역할을 해낸다. 감염 환자 치료 뿐 아니라 진단과 정신건강 상담 등 의료진 수고를 덜어주는 사례가 급증하면서 의료용 AI 서비스가 새 트렌드로 자리매김할 전망이다.
로봇 화면에 나타난 의료진 얼굴. 환자는 화면 위에 장착된 카메라 렌즈를 통해 의료진과 소통한다./IT조선
진단·정신건강·감염 분야서 효과 톡톡

AI를 가장 활발히 활용하는 분야는 ‘진단’이다. 특정 질병과 환자 사례에 대한 막대한 데이터를 학습한, 새로운 환자를 더욱 객관적으로 진단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사례도 넘쳐난다. 구글이 2017년 당뇨병성 망막증 환자의 실명 여부를 예측할 수 있도록 개발한 AI가 대표적이다.

세계 성인 중 약 4억명 이상은 당뇨로 시력을 상실한다. 인도에서는 안과 의사 수가 부족해 전체 환자의 45%가 진단을 받기도 전에 실명한다.

구글은 인도 병원과 미국 검진기관으로부터 안구 이미지 13만개를 확보하고 88만건의 진단 데이터를 통해 AI를 반복 학습시켰다. 그 결과 환자 실명 가능성을 안과 전문의와 유사한 수준으로 예측하는 데 성공했다. 업계는 구글이 개발한 당뇨병성 망막증 진단 AI가 일반 안과의 수준에 도달했다고 평가한다.

AI는 신체건강은 물론 우울증을 비롯한 다양한 마음의 질병까지 치료한다. 환자들은 기계와 마주하는 만큼, ‘상담사가 나를 어떻게 평가할까’라는 걱정을 던다. 자신의 심리 상태를 더 솔직하고 편하게 털어놓는다. 이러한 장점에 AI 기반 심리상담 프로그램은 미국서 인기를 얻었다.

일례로 미국 스타트업 워봇(Woebot)은 타인보다 로봇에게 심리 증상을 털어놓는 것을 선호하는 환자들을 참고해 AI 심리상담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이 프로그램은 친구와 채팅창을 통해 대화하듯이 진행된다. 워봇이 "안녕, 오늘 기분은 어때?"라고 물으면 환자가 "무기력한 날이야. 직장에서 안 좋은 일이 있었거든"이라고 답변하는 질의응답 형식이다.
워봇 채팅창에서 AI가 환자를 대상으로 오늘의 감정을 묻고 상태에 따라 공감을 해준다./워봇 홈페이지 갈무리
우울감과 무기력함, 불안감을 잠재워준 덕분에 워봇은 130개국에서 수십만명의 이용자를 확보했다. 실제 워봇 연구진이 70명의 다양한 인력(18~28세 이하)을 데리고 스탠포드 대학교 연구실에서 진행한 한 연구에 따르면 약 2주간 워봇을 활용한 실험군이 비교군과 대비해 우울감과 불안감을 덜 느끼는 것으로 조사됐다. 워봇 측은 "AI 심리상담 프로그램이 전문 상담사를 대신할 수 없다"면서도 "심리상담 기회를 갖기 힘든 환자들에게 많은 도움이 되기 때문에 인기를 얻은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코로나19가 확산하는 현 시국에서도 AI는 각광받는다. 감염 병동에 AI 로봇을 도입하면서 의료진 감염 예방과 의료 소모품 절약 등에 있어 새로운 대안으로 떠올랐다는 평가가 뒤따른다.

의료용 로봇 수요가 가장 높은 국가는 중국이다. 중국은 AI로봇을 활용해 감염 병동에 격리된 코로나19 환자에게 의약품과 음식 등을 배송한다.

중국신문망에 따르면 광저우시 광둥성인민병원은 최근 의료용 로봇을 전염병 진료 부서 격리 병동에 도입했다. 중국 최초다. 자율주행 기능을 갖춘 이 로봇은 엘리베이터 탑승과 사물 회피, 약품과 음식물 배송, 자동 충전, 실시간 병동 영상 모니터링 등 기능을 수행한다. 3명 분의 작업을 수행하는 만큼 의료진 수고를 덜어줬다는 평가다. 의료 소모품이 부족한 시점에 방호복과 마스크 등 보호 장비 절약에도 상당한 도움을 준다.

광둥성인민병원 관계자는 "사람과 사람 사이 접촉 과정 중 침과 같은 신체 분비물로 인해 바이러스 전염이 쉽게 이뤄진다"며 "격리 병동 내 로봇을 도입해 의료진과 환자 접촉을 줄이면서 방역 효율이 높아졌다"고 말했다.

업계 "AI가 의사 대체 X, 역할 축소 O"

AI가 의료계 트렌드로 자리매김하자 일각에서는 의료 업종 일부를 사라지게 하거나 대체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실리콘밸리의 전설’로 꼽히는 미국 투자자 비노드 코슬라는 2012년 "AI가 의사 80%를 대체할 수 있다"고 말했다. 딥러닝 분야 최고권위자인 제프리 힌턴 토론토대학교 교수는 "영상의학과 전문의를 양성하는 것을 당장 그만둬야 한다. 5년 내 딥러닝이 영상의학과 전문의를 능가할 것은 자명하기 때문이다"라고 언급했다.

AI가 등장하면서 가장 흔히 거론되는 게 ‘진단’이 주 업무인 영상의학과와 방사선과다. AI가 인간보다 더 정확히 진단 영상을 분석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2019년 3월 미국 국립암연구소(NCI)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AI를 활용한 유방암 영상 검진 정확성은 방사선과 의사 101명의 평균 결과와 비슷한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업계 전문가들은 ‘대체’라는 표현보다 의료진 역할의 ‘축소’가 올바른 표현이라고 입을 모은다. 의료진은 진료 외에도 의료 기술과 신약 개발 등 다양한 역할을 수행한다. AI가 의료진의 ‘모든’ 역할을 대체한다는 표현이 틀렸다는 설명이다.

국내 유일 디지털헬스케어 스타트업 투자사 ‘디지털헬스케어파트너스(DHP)’를 운영 중인 최윤섭 대표는 개인 블로그를 통해 "AI는 모든 의사를 대체할 수 없다"고 밝혔다. 그는 "의사가 맡은 여러 세부적 역할에 변화가 생길 수 있다고 표현하는 게 옳다"며 "AI로 사라지는 역할이 있는가 하면 새롭게 피어나는 역할과 유지되는 역할도 있기 마련이다"라고 덧붙였다.

앨리슨 다아시 워봇 대표도 마찬가지 입장을 내놨다. 그는 공식 블로그를 통해 "워봇은 의료진을 대체하지 않을 것이며 그런 시도조차 하지 않을 것"이라며 "AI는 인간을 대체할 수 없기 때문이다"라고 표현했다. 그는 AI가 원격 의료 서비스의 매개라는 점을 강조하며 "상담사를 만나지 못하는 세계 수백만명 환자들에게 도움을 제공하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부연했다.

AI가 의료진을 대체할 수 없더라도 AI를 마냥 배제해서도 안 된다는 주장이 나온다. 예룬 타스 필립스(Philips) 혁신전략 총괄은 한 매체 인터뷰를 통해 "AI는 의사를 대체할 수 없지만, AI를 사용하지 않는 의사룰 대체할 것"이라며 "AI가 앞으로 병 진단에 있어 의사를 돕는 핵심적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라고 강조했다. 그 역시 업계 전문가들과 마찬가지로 "AI는 돕는 역할을 할 뿐"이라며 "최종 판단은 사람이 한다"고 덧붙였다.

갈길 먼 韓 의료 x AI

해외 의료 AI 활용 사례가 넘치지만 우리나라는 그렇지 못하다. 꽉 막힌 규제 탓이다. 관련 스타트업과 기업 등은 의료에 AI를 접목하는데 까진 성공했지만 막상 활용에는 첫 발도 내딛지 못했다.

데이터3법이 통과된 최근들어 분위기가 완화한 모양새다.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안과 정보통신망법 개정안, 신용정보법 개정안으로 구성된 데이터3법은 특정 개인을 알아볼 수 없도록 비식별화한 가명정보를 개인 동의 없이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골자다.

업계 한 관계자는 "우리나라 AI 기술력은 세계 상위권이지만, 정작 이 기술을 활용하기 위해 수집하는 데이터는 없다"며 "데이터3법 통과로 유전체 정보와 생활건강 데이터 등 양질의 데이터 확보가 가능해져 바이오산업이 더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픽사베이 갈무리
업계는 의료 분야에서 AI를 활발하게 활용하려면 완화해야 하는 규제가 수두룩하다고 지적한다. AI를 활용하기에 최적인 ‘원격의료’ 규제부터 풀어야 한다. 데이터3법 통과 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이다. 국내 의료계는 ▲의료서비스 퀄리티 저하 ▲오진 가능성 ▲대형병원 집중 현상에 따른 개인병원 경영난 ▲높은 의료 접근성 등을 이유로 원격의료를 반대한다.

업계 한 관계자는 "코로나19가 확산하면서 원격의료에 대한 필요성이 대두됐다"며 "우리나라는 1988년 원격의료 시범사업을 도입한 지 32년이 지났지만, 이에 대한 안전성과 유효성이 없다는 의료계 반대로 현실화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중국에서는 알리페이 앱 전문상담 서비스 ‘알리헬스’를 통해 수천명의 의사들이 매일 10만명 이상의 환자를 진료한다"며 "이미 세계 곳곳에서 유효성을 입증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정부는 2019년 7월 강원도를 디지털헬스케어 규제자유특구로 지정하고 특구 내 원격의료를 허용하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참여 의료기관이 전무하다. 규제를 풀지 못한 상태서 시범사업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는 현실을 낱낱이 보여준다.

원격의료를 허용하는 의료법 개정안도 2010년부터 제자리 걸음이다. 이 개정안은 2010년 이후 수 차례 발의됐지만, 매번 국회 상임위 벽을 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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