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진자 A씨는 발병 직후 동선이 공개되면서 논란에 시달렸다. 지인과 호텔, 성형외과에 방문한 사실이 드러나 네티즌 사이에 불륜과 성형 브로커 등 여러 추측이 쏟아진 탓이다.

#확진자 B씨는 노래방 도우미 의혹을 받았다. 공개된 동선에 노래방을 자주 방문한 기록이 나왔기 때문이다. B씨 관련 기사 댓글에는 불특정 다수가 ‘빼박’이라는 등 단어를 사용하며 확실하다는 식의 조롱을 보냈다. 확인 결과 B씨는 친구들과 노래방을 방문한 것으로 드러났다.

코로나19 확진자 정보 제공에 개인정보 침해 논란이 거세다. 질병관리본부(질본)와 지방자치단체(지자체)는 코로나19 확산세를 막고 국민 불안을 잠재우고자 해당 정보를 제공했다. 하지만 온라인 상에서 확진자를 향한 억측과 비난이 난무하면서 ‘디지털 낙인(디지털 상에서의 사회적 낙인)’이 사회 문제로 부각된다. 확진자 이름과 나이 등 정보를 비식별 처리해 개인정보를 최대한 보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 / 아이클릭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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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진자 이름 성씨와 거주지까지…"선 넘었다"

현재 질본은 감염병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감염병 예방법)에 의거 코로나19 관련 확진자 정보(확진자 현황과 상세 동선, 성별, 출생연도, 국적, 우한 방문 여부, 입국일, 확진일, 입원 기관 정보 등)를 홈페이지 등에 제공한다. 개인정보보호법은 예외 규정을 두고 이같은 정보 공개를 허용한다.

문제는 확진자 정보가 세세한 정보를 모두 담다 보니 개인정보와 사생활 침해가 벌어진다는 점이다. 확진자뿐 아니라 가족의 2차 감염 여부도 관심을 받다 보니 극단적인 억측이 난무한다.

한 확진자는 부인과 자녀가 음성으로 나타났지만 처제가 양성 판정을 받아 불륜 아니냐는 근거 없는 비난에 시달렸다.

지자체 역시 각 지역별 확진자 정보를 실시간 공유하면서 문제를 빚는다. 다수 지자체장이 지자체 홈페이지나 소셜미디어 계정이 아닌 개인 계정에 확진자 신상을 과도하게 노출한 탓이다.

장세용 구미시장은 2월 21일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우리 시에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했다"며 특정 확진자 나이와 성별, 성씨, 거주지를 공개했다. 해당 확진자의 남자친구가 신천지 교인이라는 사실도 밝혔다. 장덕천 부천시장도 3월 8일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특정 확진자의 실제 거주 아파트 이름을 공개했다. 질본 발표에 따르면 확진자 실명과 거주지는 공개 정보에 포함하지 않는다.

설상가상으로 공공기관 담당 공무원이 확진자 또는 감염 의심자 개인정보를 유출해 문제를 키웠다.

부산에서는 모 경찰서 경위가 감염 우려자 개인정보를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과 소셜미디어에 게시해 불구속 입건됐다. 전남 신안군에서는 공무원이 음성 판정을 받은 의심 환자의 구체적인 인적사항과 가족 직장명까지 담긴 공문서를 유출했다. 그는 이를 이유로 전남경찰청에 불구속 입건됐다. 청주시와 서귀포시 공무원 역시 해당 지역 확진자 개인정보를 외부에 유출해 논란을 빚었다.

과도한 정보 공개, 사회적 낙인 부메랑 돼

확진자들은 이같은 개인정보 노출로 인해 억측과 비난, 사회적 낙인을 겪는다고 심적 고통을 호소한다. 심민영 국립정신건강센터 국가트라우마사업부장은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확진자 심리 지원을 해보니) 전염 불안과 부담이 크다"며 "사람들에게 받는 비난과 혐오를 감당할 수 있을까 염려한다"고 밝혔다.

일례로 최근 구미에서 확진 판정을 받은 C씨는 여러 비난과 신상 털기가 지속되자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의도해서 걸린 게 아니다"라며 "제발 신상 정보를 퍼뜨리지 말아달라. 악플로 인해 많이 고통스럽다"고 토로했다.

코로나19 확진자 관련 온라인 기사에 달린 댓글. 확진자 동선을 두고 추측성 댓글과 신상 공개에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는 댓글이 각각 달렸다. / 네이버 뉴스 갈무리
코로나19 확진자 관련 온라인 기사에 달린 댓글. 확진자 동선을 두고 추측성 댓글과 신상 공개에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는 댓글이 각각 달렸다. / 네이버 뉴스 갈무리
최영애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은 이에 코로나19 확진자 동선 공개로 인한 인권침해 가능성을 우려했다. 최 위원장은 9일 성명서를 내고 "확진자 개인별로 필요 이상의 사생활 정보가 구체적으로 공개되다 보니 확진자 내밀한 사생활이 원치 않게 노출되는 인권침해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인터넷에서 해당 확진자가 비난이나 조롱, 혐오의 대상이 되는 등 2차적인 피해까지 확산하는 상황에 우려를 금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이준석 미래통합당 최고위원 역시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글을 올리고 "확진자 동선 공개 방식에 우려가 깊다"며 "감염 예방에 필요한 정보만 공개해야 하는데, 확진자 정보를 ‘얼마나 더 까발리느냐'가 지자체 행정력 척도인 양 비춰지고 있다"고 꼬집었다.

다수 외신도 이같은 문제에 주목했다. BBC는 너무 많은 확진자 정보가 공개되면서 온라인상에서 당사자 신원과 사진 등이 버젓이 나도는 등 사회적 낙인이 벌어졌다고 보도했다.

확진자 개인정보 보호 조치 마련해야

전문가들은 이같은 확진자 개인정보 노출과 사회적 낙인을 막기 위해 개선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방역에 문제가 되지 않는 선에서 확진자 개인정보는 최대한 보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환경 법무법인 광장 변호사는 "현재 공개된 확진자 정보를 다른 정보와 결합하면 누군지 특정할 수 있는 상태다"라며 "이름과 나이, 성별을 식별할 수 없도록 두터운 가명 처리나 익명 처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 차원에서 새롭게 가이드라인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최영애 위원장는 성명서에서 확진자 개인정보 피해를 막는 두 가지 방안을 제시했다. 한 가지는 개인을 특정하지 않고 시간 별로 방문 장소만 공개하는 방식이다. 다른 방안은 확진자가 거쳐 간 시설이나 업소에 대한 보건당국 소독과 방역 현황만 공개하는 방안이다.

질본은 이같은 문제제기에 동선 공개가 불가피했음을 알렸다. 다만 불필요한 동선 공개나 인권 침해가 없도록 관리하겠다는 개선의 여지를 남겼다.

정은경 중앙방역대책본부장은 6일 질본 브리핑에서 "감염병 문제는 개인 인권보다는 공익 요인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며 "지자체별로 확진자 정보 공개 수준 차이가 있는데 세부 기준 사항을 만들어 권고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동선 공개 필요성을 명확하게 마련해 불필요한 공개나 인권 침해가 없도록 최대한 관리하겠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