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로, 소품으로, 때로는 양념으로. 최신 및 흥행 영화에 등장한 ICT와 배경 지식, 녹아 있는 메시지를 살펴보는 코너입니다 [편집자주]

알리타 : 배틀 엔젤(Alita : Battle Angel, 2018) ★★★☆(7/10)

줄거리 : 낙원이라고 알려진 공중도시 ‘자렘’. 그 밑에는 폭력과 착취, 혼돈으로 가득한 빈민가 ‘고철도시’가 있다. 사이버네틱스(인조 신체)의사 이드는 고철도시 쓰레기장에서 기억을 잃고 산산히 부서져있는 사이보그 소녀를 만난다. 이드는 그녀를 고치고 ‘알리타’라는 이름을 준다.

이드, 남자친구 유고와 함께 조금씩 기억을 되찾는 알리타. 그녀는 자신의 과거 속에서 자렘과 고철도시의 미래를 송두리째 바꿀 수 있을만큼 위험한 비밀을 알게 된다. 이윽고 알리타는 그 비밀을 은폐하기 위해 자신을 제거하려는 흑막과 만나는데…...

"제가 누군지 모르겠어요. 저는 대체 누구였을까요?"

살아있다는 것을 어떻게 증명할까요? 사람이라는 것을, 실재한다는 것을 어떻게 확인할까요? 이 때 흔히 드는 유명한 명제가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입니다. 철학자 데카르트가 남긴 유명한 인식론이지만, 가상현실과 인공지능(AI)이 보편화된 오늘날에는 모호하다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생각, 나아가 그 생각으로 실존을 증명하는 인식론은 더 이상 사람만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AI 역시 수많은 데이터를 토대로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합니다. 옳은 것은 발전시키고, 틀린 것은 바로잡습니다. 수년 전, 세계를 뜨겁게 달군 이세돌 국수와 AI 알파고의 바둑 대결, 그리고 그 결과도 이를 증명합니다.

알리타 : 배틀 엔젤 포스터. /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제공
알리타 : 배틀 엔젤 포스터. /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제공
수백가지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는 이 매력적인 주제를 숱한 소설·만화·영화가 다뤘습니다. 이 가운데 아이디어, 재미 면에서 가장 추천할 만한 작품이 영화 ‘알리타 : 배틀 엔젤(Alita : Battle Angel, 2018)’입니다.

이 영화의 원작은 일본 만화가 키시로 유키토의 1990년 작품 ‘총몽(銃夢)’입니다. 원작 만화는 1부와 2부 완결 후 지금 3부가 연재되고 있습니다. 원작 만화 1부는 총 9권인데, 영화는 그 중 1권~3권까지의 내용을 담았습니다. 영화를 먼저 보고 만화를 봐도, 만화를 먼저 보고 영화와 비교해봐도 좋습니다.

"너보다 더 인간적인 사람을 본 적이 없어"

주인공 알리타는 기계로 된 몸과 사람의 두뇌(사실, 원작에서는 여기에 아주 큰 반전이 숨겨져 있습니다)를 가졌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누구인지 고민합니다. 분명 생각은 할 수 있는데, 과거는 기억나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몸은 기계입니다.

순간순간 떠오르는 기억은 처참할 뿐입니다. 맛을 알게 되고, 남자친구를 만나 설레는 감정도 느낍니다. 그러니 자신이 누구인지, 사람인지 기계인지 고민할 만도 합니다.

알리타에게 새 생명을 준 이드 박사, 삶의 의미를 준 남자친구 유고는 그녀에게 이야기합니다. 존재만큼 어떤 삶을 살아가는지도 중요하다고. 어떤 삶을 살았는지가 존재하는 이유라고. 스스로 생각하고 살아가는 사람은 스스로의 삶을 살아간다고.

그래서 알리타는 살아가기로 합니다. 자신을 아끼는 사람들과 함께. 그리고 싸우기로 합니다. 자신을 아끼는 사람과 그녀의 결심을 해치려는 흑막에 대항해. 그 흑막은 강대하고, 그녀의 과거는 생각했던 것보다 어둡고 무겁습니다. 알리타는 기억만큼 소중한 것을 잃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 그녀는 사람으로서의 의지를 다집니다. 강철로 된 몸과 심장에 온기가 돌게 됩니다. 그 온기는 사람의 감정인 분노로 덥혀지고, 그 분노로 벼린 칼 끝을 흑막에게 겨누는 것으로 영화는 끝납니다.

"열역학 제 2법칙을 증오해!"

영화 ‘타이타닉’, ‘아바타’ 등 세계 최고 흥행작을 만든 제임스 카메론 감독이 만화 총몽을 보고 매료돼 영화화를 자처했다는 사실은 헐리우드 키드 사이에서 유명합니다. 20여년만에 제임스 카메론 제작에 로버트 로드리게즈 감독으로 만들어진 이 영화는 손익분기점을 맞추는 정도의 흥행 성적을 냈습니다. 그래선지 후속작 소식도 아직은 들려오지 않습니다.

영화 알리타 : 배틀 엔젤은 원작 만화 총몽과 성격이며 소품, 메시지가 사뭇 다릅니다. 대중적 재미와 화려함은 영화가 앞섭니다. 만화는 재미도 있지만, 그 이상으로 독자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줍니다. 기술이 가져올 미래의 명암, 억압과 비극으로 가득찬 디스토피아를 그린 ‘사이버펑크’ 장르의 가장 훌륭한 예시라고도 불립니다.

영화 마지막 즈음 등장하는 ‘흑막’은 이 작품의 주제를 온몸으로 표현하고 또 부정하는 ‘제2의 주인공’이기도 합니다. 원작의 등장 인물 가운데 가장 개성적이고, 온갖 명대사로 독자를 매료한 인물입니다.

여기에 또 하나. 영화 속 주요 소품 ‘모터볼 스포츠’의 ‘챔피언’이 잠깐 등장하는데, 그 역시 또 하나의 주인공으로 불리울 만큼 원작에서 중요한 인물입니다. 흑막과 챔피언, 이 두 인물의 매력을 알 수 있다는 점만으로도 원작과 영화를 모두 추천할 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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