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층 잡겠다는 정의당, 류호정 후보 탓 등 돌린 젊은 게이머

입력 2020.03.21 06:00

‘대리게임’ 경력 논란에 빠진 류호정씨가 정의당의 재신임 결정이 나온 후 "절대 흔들리지 않겠다"는 뜻을 거듭 밝혔다. 자진 사퇴 대신 국회의원이 돼 IT 노동자를 위해 일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젊은 유권자들 사이에 류 후보와 정의당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여전하다. 차별 없는 세상, 정의로운 복지국가를 앞당기겠다는 이 당의 간판 비례대표 1번에 류호정씨를 배치한 영향이 크다.

류 씨는 ‘대리게임’ 논란에 거듭 사과하면서 해명했지만, 일부 게임 이용자는 여전히 의혹이 해소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대리게임이라는 중대한 잘못을 저지른 류호정 씨를 재신임한 정의당에 대해 ‘고작 게임이라서 넘어가는 것이냐’고 비판한다.

‘여성 게이머 편견 깨고 싶다’던 류 후보, 결과적으로 편견 더 부추겨

류호정 후보의 모습. / 류호정 후보 페이스북 갈무리
류호정 후보의 발목을 잡은 것은 과거 ‘대리게임’ 전력이다. 류 후보는 2014년 초 게임 영상 창작자로 활동하던 시절 ‘배치고사’ 단계이던 자신의 ‘리그 오브 레전드’ 게임 계정을 남자친구에게 빌려줬다. 류 후보는 "당시 ‘배치고사 10판 정도는 괜찮겠지’라는 마음으로 계정을 빌려줬고, 이는 분명한 잘못이다"라고 인정했다.

‘배치고사’는 말 그대로 계정을 실력에 알맞은 티어에 배치하는 시즌 초 게임 10판을 뜻한다. 남자친구는 10판보다 더 많은 게임을 했는데, 원래 ‘골드1’이어야 할 류 후보자 등급은 ‘다이아몬드5’로 상승했다. 티어(게임 등급)가 6등급이나 상승했다. 다이아몬드5는 전체 게이머 상위 2.4% 안에 들 정도의 상위 등급이다.

티어는 게이머의 실력을 직관적으로 나타내는 지표다. 일반적으로 매치 메이킹 점수(MMR)와 비슷한 수준으로 책정된다. 게임사는 이런 지표로 실력이 엇비슷한 이용자를 한 게임에서 맞붙게 만든다. ‘고수’가 낮은 등급 게임에 참여하게 될 경우 일방적으로 승리하는 형태가 되기 때문이다.

또 대리게임을 강력하게 제재한다. 라이엇게임즈는 대리게임 행위를 한 이용자에게 1차 적발 시 30일 계정 정지, 2차 적발 시 영구 게임이용제한 조치를 내린다.

류호정 후보는 평소 여성이 게임을 조금만 못하면 ‘대리게임’을 했다거나 ‘버스(잘 하는 게이머가 못하는 게이머와 팀을 맺고 이겨주는 행위)’를 탔다는 의혹을 받는 등 부당한 상황을 깨고 싶다고 자주 어필했다. 하지만 그의 대리게임 행위는 말과 행동이 다르다는 비판으로 이어진다. 결과적으로 류 후보 스스로 여성 게이머를 향한 그릇된 편견을 더욱 강화시킨 셈이다.

류호정측 "취업 과정서 대리 게임으로 이득 본 일 전혀 없다"
게이머 "상대적으로 높은 대리게임 계정 MMR 이용한 것 아니냐"

일각에서는 커리어 전반을 게임 업계에서 보낸 류 후보자가 대리 게임으로 올린 등급으로 취업 당시 이득을 봤다는 의혹을 쏟아낸다. 류 후보는 대리 게임 자체에 대해 거듭 사과하면서도 "2015년 12월 정규직 전환 과정에서 밝힌 ‘다이아몬드4’ 등급은 스스로의 힘으로 달성한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류 후보가 제 노력으로 다이아몬드4 등급을 달성한 것은 사실로 보인다. 류 씨는 대리게임을 한 계정이 아닌 별도 계정을 만들어 ‘플래티넘’ 등급을 달성한 후, 본 계정으로 돌아와 ‘플래티넘’부터 시작해 ‘다이아몬드4’ 등급까지 티어를 올렸다. 게임 전문 매체 ‘디스이즈게임’이 공개한 류 후보의 전적을 통해서도 이러한 사실을 쉽게 유추할 수 있다.

정의당 한 관계자는 "류 후보는 올곧은 성격을 지닌 인물로, 부정한 방법으로 등급을 올린 원래 계정만큼의 실력을 가지기 위해 노력한 것으로 보인다"며 "대리게임으로 어떤 이득을 본 것이 아니라 떳떳하게 등급을 올린 것이다"고 말했다.

소셜 미디어나 각종 매체, 커뮤니티에서는 류 후보와 정의당에 대한 분노를 드러내는 게이머를 손쉽게 찾아볼 수 있다. / 디스이즈게임 페이스북, 인벤 갈무리
하지만 적지 않은 게이머가 류 후보의 해명에 여전히 의혹을 제기했다. 부계정을 플래티넘까지 올려놓고 굳이 본 계정으로 돌아간 것이 부자연스럽다는 것이다.

리그 오브 레전드는 매 시즌 게이머가 배치 게임을 치러 등급을 다시 받도록 하지만, 적절한 게임을 매칭하기 위해 완전히 처음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이전 시즌 점수(MMR)를 다음 시즌에도 일부 반영한다. 류 후보가 이 점을 알고 이전 시즌을 다이아몬드 등급에서 마쳐 유리한 위치에 있는 본 계정을 다시 플레이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진다.

전 프로게이머 출신 황희두 더불어민주당 공천관리위원은 "게임을 한동안 하지 않아 MMR이 다소 줄었다고는 해도 상대적으로 높은 위치에 있었을 것으로 본다"며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부계정으로 게임을 계속 진행하면 될 것을 왜 굳이 대리게임 논란이 있었던 원래 계정으로 돌아왔는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정의당 관계자는 이런 의혹에 대해 "류 후보는 별도 계정을 따로 만들어서 본계정 티어나 MMR에 걸맞은 실력이 될 때까지 올린 뒤에야 본 계정을 플레이한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류 후보는 2014년 5월 대리게임 논란이 일자 잘못을 인정했으며, 이화여대 e스포츠 동아리 ‘klass’의 회장직을 사퇴하며 별도의 입장문을 냈다. 그는 "앞으로 제가 해야 할 일은, 문제가 된 아이디를 파기하고 새 아이디를 만들어 모두가 인정하는 정당한 방법으로 실력을 쌓아 오프라인 대회 등 여러 활동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류 씨는 문제가 된 계정을 파기하지 않고 계속 사용했다.

류 씨가 몸 담았던 게임 회사 관계자는 "게임 회사가 사람을 뽑을 때는 당연히 제품(게임)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사람을 선호할 수밖에 없다"며 "(취업 당시 등급을 직접 기재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게임 등급이 높아 BJ나 e스포츠 동아리 활동을 했던 것이 회사의 지원자 평가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볼 수 있다"고 밝혔다.

게이머, ‘고작 게임’ 취급에 더 분노
공정성 민감한 젊은층 정서 건드려

게이머가 류 후보와 관련한 대리 게임 사태와 관련해 가장 크게 분노한 것은 게임에 대한 사회의 평가다. 일부 네티즌은 ‘고작 게임일 뿐인데 왜이렇게 큰 난리냐’는 반응을 보였는데, ‘고작’이라는 말에 분개한다.

한국은 ‘e스포츠의 종주국’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젊은 게이머들은 게임을 건전한 취미 활동이자 문화이고, 스포츠라고 생각한다. 리그 오브 레전드는 세계에서 가장 인기있는 e스포츠로 꼽힌다. 게이머에게 공정한 규칙을 적용하고, 게이머는 스스로 갈고닦은 실력을 겨룬다. 스포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승패가 아니라 스포츠맨십이다.

한 게이머는 "류 후보는 게임·IT계를 대표하는 정치인이 되겠다는 마음으로 출마를 했는데, 과거 ‘대리게임’을했던 전력에 실망했다"며 "논란에도 불구하고 류호정 후보를 비례 1번으로 재신임한 정의당의 결정에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황희두 위원은 "게임을 잘 모르는 기성세대의 경우 이번 사태를 ‘고작 게임으로 이 정도 호들갑인가’라고 치부할 수도 있지만, e스포츠는 과거 RPG나 아케이드 게임과 다르다"라며 "한 사람의 게이머로서 기성세대의 게임에 대한 오해를 풀고 싶어 류 후보자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게 됐다" 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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