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주행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운전자가 조작하지 않아도 스스로 움직이는 자율주행차는 더이상 공상과학영화 속에서 나오는 상상 속 기술이 아니다. 우리의 현실이며 산업계 먹거리로 범국가적으로 고민해야 한다. 디젤시대 대한민국 성장축의 하나는 바로 자동차였다. 그리고 자동차가 정보통신기술(ICT)과 접목한 것이 자율주행이다. ICT강국인 우리에게는 절호의 기회다. IT조선은 자율주행시대를 앞둔 현재의 기술 현황과 앞으로의 과제를 정리하고 전문가 인터뷰를 통해 해법을 모색한다.

자율주행차, 2040년 3370만대로 급증…시장규모 1333조원 팽창
韓, 60조원 민간투자 기반 2027년 완전자율주행 상용화 도전

자율주행차는 21세기의 금광이다. 미래 모빌리티 혁신을 이끌고 인류의 생활과 문화, 경제 패러다임도 바꿀 것으로 기대된다. 미국 시장조사업체 네비건트리서치는 글로벌 자율주행차 시장 규모가 2020년 1890억달러(219조원)에서 2035년 1조1520억달러(1333조원)까지 커질 것으로 전망했다. IHS는 글로벌 자율주행차가 2021년 5만1000대에서 2040년 3370만대로 급증할 것으로 내다봤다.

자율주행차 시장 선점을 위한 글로벌 경쟁도 뜨겁다. 미국, 유럽, 중국, 일본 등 주요국 정부와 기업은 대규모 자원과 역량을 집중한다. 우리나라도 원천기술 확보, 관련 법령 및 제도 개선, 사회적 인프라 구축 등 노력을 기울인다.

문재인 대통령(가운데)이 10월 15일 경기도 화성시 현대자동차 남양연구소에서 열린 ‘미래차 산업 국가비전 선포식’에서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오른쪽)의 안내를 받는 모습. / 조선일보 DB
문재인 대통령(가운데)이 10월 15일 경기도 화성시 현대자동차 남양연구소에서 열린 ‘미래차 산업 국가비전 선포식’에서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오른쪽)의 안내를 받는 모습. / 조선일보 DB
우리나라는 2027년 자율주행차가 전국 주요도로를 달리는 것이 목표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운전자 개입이 필요 없는 완전자율주행(레벨 4)을 세계 최초 상용화하는 ‘2030 미래차산업 발전전략’을 내놨다.

미국 자동차공학회의 분류에 따르면 레벨 1~2는 ‘운전자 지원 기능’이 탑재된 차량이다. 레벨 3를 ‘부분 자율주행’, 레벨 4를 ‘조건부 완전 자율주행’, 레벨 5를 ‘완전 자율주행’으로 구분한다.

정부는 현대·기아자동차를 중심으로 한 60조원 규모의 민간투자를 기반으로 개방형 미래차 생태계로 신속 전환을 준비 중이다. 이를 위해 2024년까지 완전자율주행을 위한 성능검증·보험·운전자 의무 등 관련 제도를 도입하고 통신시설, 정밀지도, 교통관제, 도로 등 4대 인프라를 완비한다.

국토교통부는 1월 자율주행차의 안전한 제작·상용화를 위해 자동차 및 자동차부품의 성능과 기준에 관한 규칙을 개정해 세계 최초로 부분 자율주행차(레벨 3)의 안전기준을 도입했다고 밝혔다. 7월부터는 운전자가 운전대를 잡지 않아도 차선을 유지하며 긴급 상황에 대응하는 ‘자동 차로유지기능'을 탑재한 자율주행차의 출시·판매가 이뤄진다.

글로벌 자율주행기술 선점 경쟁, 누가 살아남나

자율주행 기술은 결국 빅데이터 싸움이다. 자율주행차와 외부 요소가 주고받는 데이터가 더 안전한 자율주행을 보장한다. 우리나라는 차량 스스로 주변을 인지하고 판단해 제어하는 데 필수인 차량용 반도체와 인공지능(AI) 기술에서 선진국 대비 5년 정도 뒤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를 토대로 가장 앞선 자율주행 기술을 보유한 것으로 평가받는 기업은 구글이 세운 웨이모다. 웨이모는 2009년부터 미국 25개 도시에서 자율주행차 테스트를 진행했다. 도로 주행거리는 3200만㎞를 돌파했다.

중국 바이두는 지난해 12월 베이징시 당국으로부터 승객을 태운 채 자율주행차를 시범 운행할 수 있는 허가를 받았다. 웨이모가 미국 일부 지역에서 운영 중인 자율주행 택시 시범 서비스를 바이두가 베이징에서 구현하게 된 것이다. 바이두의 자율주행 누적 주행거리는 300만㎞를 돌파했는데, 이는 한국에서 진행한 모든 자율주행차 누적 주행거리 총합(71만6000㎞)의 4배가 넘는다.

GM 자회사 크루즈 자율주행차. / GM 제공
GM 자회사 크루즈 자율주행차. / GM 제공
합종연횡을 중심으로 한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의 입김도 거세다.

미국 제너럴모터스(GM)는 최근 자율주행차 개발 전담 자회사인 크루즈 통해 완전자율주행 전기차 ‘오리진’을 최초 공개했다. 6인승 전기차인 오리진엔 운전자 개입이 필요 없는 레벨5의 완전 자율주행기술이 적용했다.

다임러는 2017년부터 보쉬와 협업을 시작했고 2019년부터 BMW와 손잡았다. BMW도 2016년부터 인텔과 협업을 선언한 이후 2019년에 중국 텐센트와 자율주행 플랫폼 공동 개발을 발표했다.

도요타는 2018년 자율주행 전문 연구소를 설립한 데 이어 우버에 투자를 단행했다. 소프트뱅크와는 모빌리티 전문 조인트벤처 모넷테크놀로지를 설립했다.

포드는 인공지능 자율주행 플랫폼 업체인 아르고에 1조달러를 투자한 뒤 자율주행 사업부를 독립 분사했다. 폭스바겐은 아르고AI에 26억달러를 투자하기로 합의했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자율주행차 기술 선도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개방과 협력"이라며 "자동차·통신 등 기반 산업이 잘 구축돼 있는 우리나라는 규제 완화와 과감한 투자가 이뤄지면 자율주행차 시대를 빠르게 앞당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차는 지난해 9월 세계적 자율주행업체 앱티브와 합작법인을 설립하며 자율주행 분야 추격자에서 개척자로 나설 태세를 갖췄다. 현대차의 완성차 설계·제조 역량과 앱티브의 전장분야 기술력 결합은 글로벌 자율주행 시장의 ‘태풍의 눈’이 될 전망이다.

현대차그룹과 앱티브는 자율주행 전문기업 설립을 통해 세계에서 운행이 가능한 레벨 4·5 수준의 완전 자율주행 소프트웨어 개발에 나선다.

현대차 한 관계자는 "합작법인 설립을 통해 운전자의 개입 없이 운행되는 레벨 4·5 수준의 완전 자율주행차를 공급하는 시기를 앞당길 수 있다"며 "자율주행 분야에서 더 이상 추격자가 아닌 기술 개발을 선도하는 개척자로서 입지를 굳힐 것"이라고 말했다.

. / IT조선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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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과 이상의 차이…韓 자율주행차 도입 준비 미흡

정부와 기업이 도전적인 계획을 내세웠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자율주행차 준비지수에서 우리나라는 세계 주요국 중 10위권 밖이다. 네트워크 인프라와 연구·개발(R&D) 능력은 상위권이지만, 법규 등 정부 규제 수준이 높다는 분석이다.

자율주행 회계·컨설팅 기업 KPMG가 자체 개발한 2019년 자율주행차 도입 준비 지수(AVRI) 자료에 따르면 한국은 조사 대상 국가 25개 가운데 13위로 2018년 대비 3단계 하락했다. AVRI는 자율주행차 도입 준비도에 대한 정책과 입법, 기술과 혁신, 인프라, 소비자 수용성에 따라 종합적으로 평가한 지수다.

세계에서 가장 자율주행차 도입 준비가 잘 된 국가는 네덜란드로 나타났다. 싱가포르, 노르웨이, 미국, 스웨덴 핀란드 등이 뒤를 이었다.

2년 연속 종합 1위를 차지한 네덜란드는 인프라와 소비자 수용성 부문에서 각각 1, 2위에 올랐다. 네덜란드 정부는 2018년 3월 인간이 아닌 자율주행차 소프트웨어를 대상으로 새로운 운전면허 시험을 개발하겠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싱가포르는 자율주행차 테스트 합법화로 자율주행 미니버스 서비스를 운영하는 등 소비자 수용성, 정책과 입법 분야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한국은 인프라 구축 분야(4위)와 기술·혁신 분야(7위)에서 비교적 준수한 성적을 냈으나 정책·입법(16위)과 국민 수용도(19위)에서 하위권을 기록했다.

전문가는 글로벌 자율주행 선도국과 비교해 한국의 규제 강도가 상대적으로 높다고 우려한다. 자율주행을 조건부 허용하는 포지티브 규제에서 가이드라인만 제시하는 네거티브 규제로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우리나라 자율주행 기술은 미국 등 자율주행 선진국보다 3~4년 뒤쳐졌지만 제도는 6년 이상 뒤져있다"며 "포지티브 규제에서 네거티브로 전환과 함께 개인의 인식과 사회적 합의가 절실하다"고 말했다.